풀잎은 노래한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7
도리스 레싱 지음, 이태동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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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책꽂이에 꽂아놓은 순서대로 책을 읽고 있다. 읽고 싶은 것 먼저 읽으면 덜 당기는 것들이 뒤에 무더기로 남을까봐. 처음 써보는 선택방법인데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시간은 많고 읽을 책은 한정적인걸. 이렇게 한국에서 들고온 책 중 두번째 읽힐 운명이 된 도리스 레싱의 풀잎은 노래한다. 이 작가 책 세 권을 갖고 있는데 풀잎, 다섯째 아이, 런던 스케치. 읽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줄도 몰랐고 여자인줄도 몰랐다.

살인 사건의 발생부터 소설은 시작한다. 제목이랑 되게 안어울리는 첫장에 당황했다. 감성 쩌는 흐느적대는 소설일 줄 알았는데 시작부터 두둥 흑인 노예에게 살해당한 백인 여주인. 그렇게 살인 사건의 현장과 상황만 알려주곤 2장부터 살해당한 메리의 젊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처녀시절, 결혼생활 차근차근 죽임을 당하는 때까지를 보여주는 구조의 소설이다.

소설에서 다루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주제가 인종차별과 결혼생활인데 나는 결혼한지 4개월 된 새댁이라 그런지 결혼생활이 엄청나게 재밌고 무섭고 남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여러분 결혼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미혼 여성들이 이 책을 읽고 간접 결혼생활 체험을 해본 후 신중히 남편을 골랐으면 좋겠다. 당장 읽으세욧!

메리가 처녀적에 성격과 외모도 괜찮고 직장도 적당해서 꽤 즐거운 싱글라이프를 살던 여자인데 혼기 넘기고 주변인들의 수군댐에 눈치보며 급작스럽게 결혼을 하게 되거든. 남편 리차드는 좋은 사람이지만 메리의 짝으로는 맞지 않는 사람이고. 둘의 케미를 보면 아주 그냥 내 속이 턱턱 막히고 둘다 이해되는데 둘다 졸라 싫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존중도 없고 그 상태에서 상대에 대한 한계를 단호하게 정해놓고 사니 이게 살아지냐. 살인자가 누구든 메리는 리차드와 결혼을 했기 때문에 죽었다.

가족 3대, 4대가 등장하는 소설에서 대부분의 나이 많은 여인의 캐릭터는 괴팍하고 소통이 힘들고 일방적이어서(이게 호감 비호감을 가르진 않는다) 젊을 적 곱고 여렸을 사람이 왜 나이가 들어선 저렇게들 변하지? 아님 변하는 것처럼 묘사하지?했는데 풀잎은 노래한다에서 평범한 여자가 괴팍한 중년으로 변하는 과정이 자세히 나온다. 아 곱게 늙고싶다. 못난 중년의 유혹에서 나라고 안전하진 않겠다는 생각을 살짝 했다.

소설의 주제와 전개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쉽게 쓰여서 참 좋았다. 번역을 잘 하신건지 도리스 레싱이 글을 쉽게 쉽게 잘 쓰는지 모르겠다만 술술 읽히고 군더더기가 없다. 어찌나 문장이 짧고 쉬운지 읽는 내내 가상의 나레이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마치 구전소설같은 인상까지. 장편 소설이 이러기 쉽지 않을텐데.

여성작가의 소설을 특별히 선호하는 건 아니지만 가끔 유명한 소설이라 하여 읽게되면 등장인물 상호간의 감정 교류에 대한 해석이 흥미롭고 날카로워 참 재미있다.

아주 재밌는 소설이니 그저 추천합니다!

발췌

국가의 위기도 그렇겠지만 한 개인의 위기 또한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런 위기가 있었음을 깨닫는다.

공상을 하면서 만족을 느끼려면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린아이가 반드시 하나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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