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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만을 보았다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음, 이선민 옮김 / 문학테라피 / 2015년 3월
평점 :
현이 블로그에서 보고 읽어봐야지 했던 책이 마침 yes24 중고서점에 최상급으로 있길래 사봤다. 나는 주로 책을 중고로 사는데 손이 탄 중고책에는 영혼이 담겨있을지 모른다는 이상한 두려움이 있어서(그래서 도서관에서 빌린 조금이라도 낡은 책은 침대 머리맡에 두는 것도 께름칙하다.) 최상에서만 고른다. 그럼 정말 새책인데 가격만 중고가격인 중고책을 살 수 있다.
책 덮자마자 나도 모르게 ˝와.....˝ 했다.
가격, 시간, 수치 등 수로 나열되는 기억들을 따라 2대에 걸친 두 사람 두 부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삶은 고통이고 비극 속에 행복이 있다. 1,2부에서 아버지가 레옹과 조세핀에게 들려주는 행복만이 남은 그의 인생이야기를, 3부에서는 조세핀이 아버지에게 들려주는 행복만이 남은 그녀의 인생이야기를 들려준다.
유년기, 죽음, 가출, 첫 만남, 출산, 외도, 실직, 이혼, 죽음, 그 사건, 치료, 희망, 죽음, 용서, 결국 행복만을 보았다.
작가가 유명 카피라이터 출신이라고 하는데 확실히 문장이 남달랐다. 대단히 복잡하고 예민하고 아름다운 문장은 분명 아니었지만 군더더기가 없었고 (마치 버릇처럼 반복하던데)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무형의 대상을 형상화한게 좋았다. 나도 평소에 말이나 글이나 생각을 할 때 습관적으로 하는 짓이어서 어려운 문장보다 훨씬 담백하고 진실되게 이해가 됐다.
극적인 요소가 분명 있지만 소설같은 이야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더하면 더할지 모를 앞으로의 삶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시 행복만을 보게 될 거라는 희망에 따뜻하고 기분 좋게 읽었다.
중요한 건 사건이 아니고 사람인 것 같다. 나와 내 주변 사람. 이해하는 마음과 이해 받는 즐거움.
발췌
인생이 우리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왔어.
유년기는 너무도 짧았어. 우리가 양팔을 벌려 안으려는 순간, 저절로 품 안으로 되돌아올 것이라 오산한 바로 그 순간에 눈앞에서 지나가 버리고 말았지. 유년기의 일부를 간직하는 게 그나마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끈이었거늘.
세상 모든 사람은 백지 상태를 꿈꾸지만, 불행히도 결국엔 하얀 종이 위에 뭐라고 써 있는 글자를 발견하고 말지.
지속되지 않는 순간을 원했으니까. 수차례의 처음과 마지막을 원했지. 우리 부부 사이는 지속과 확신을 향해가야 했는데, 나탈리는 계속 뜨거운 열과 독을 꿈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