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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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타인에게 말걸기의 은희경 작가 장편소설이다. 대학교 전공수업 때 `새의 선물`을 읽는게 과제였는데 그렇게 책을 많이 읽던 시절에 소설 한권 더 읽는게 뭐가 어렵다고 안읽고 학점도 뭐 C나 D 받았을거다. 굳이 졸업한 후 같은 작가의 `타인에게 말걸기` 읽곤 꽤 마음에 들어서 아 `새의 선물`도 괜찮은 소설이었겠다 읽으랄 때 읽어볼껄 생각했었다. 난 성실하지 못할 뿐더러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아주 치명적인 특성이 있다. 이건 죽을 때까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이혼한 엄마와 함께 살고있는 고등학교 1학년 강연우가 새 동네에 이사하고 새로운 학교에 입학해서 태수, 마리, 채영이라는 친구들과 알게되고 시간을 보내며 사건들을 겪는 청소년 성장소설이다. 남 눈에 띄길 싫어하고 언제나 심드렁한 태수의 침착하고 분석적인 시선으로 그 주변의 사람과 시간을 해석해가는데 ... 뭐 저 나이가 다 그렇지 하면서도 자잘한 것까지 포착하며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게 유치하고 오글거렸다. 중간 중간 나오는 힙합 가사들도. 연우가 좋아하는 채영이라는 아이를 되게 남과 다른 궁금한 구석이 많은 아이로 계속 묘사하는데 언제나 큼직한 후디를 뒤집어쓰고 얼굴도 보일랑말랑하는 채영이가 내 눈엔 그저 중2병으로 보일 뿐이고. 그렇지만 서른한살이 보기에 뭐 저리 심각한가 뭐 저리 중요한가 하는 게 사실 저 나이 애들의 삶이니까 `유치한 책`이라고 평가하는 게 아니고 `십대의 시선에 충실한 책`이라고 평가한다.

연우의 상처와 채영의 상처가 얼마나 담겼든 그 줄거리는 뭐 하나 중요치 않았다. 사실 소설에서 치명적인 부분이지만 읽는 내내 등장인물이 진짜 존재하고 있다는 착각이 한번도 안들었다. 그냥 소설 속 사람들. 뭐 대단한 `소설같은` 이야기가 진행된 것도 아닌데 그냥 그랬다. 어차피 픽션이라 감정이 휩쓸릴 필요가 없다고.

읽으면서 줄거리보단 계속 내 과거의 감정에 집중하게 됐다. 강연우의 엄마 신민아씨의 말들이 학생과 어른의 온도 차를 느껴지게 만들면서 아 저땐 그랬고 지금은 이렇지.하며 10대의 나와 30대의 나를 각기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줬던 것 같다. 얼마전 일기에 중학교1학년 때 있었던 작은 사건을 쓴 것도 이 책을 읽다가 떠올라서였다. 사이가 멀어진 진슬기 때문에 울고, 선생님의 오해를 사게 만들어서 화난 박은비랑 싸워서 울고, 갑자기 장기 무단 결석을 하던 양혜령 때문에 속상해서 울고 뭐 반은 울고 반은 배꼽잡고 웃고 있었던 것 같다. 어찌나 지금의 나와 다른지 청소년기 강현주는 그냥 내가 아는 사람 중 하나인 다른 강현주로 느껴진다. 지금의 나는 어쩜 이렇게 타인에 시큰둥한지.

발췌

며칠 사이에 꽤나 늙어버린 기분이 든다. 과연. 방향은 일정하지만, 시간이란, 밀도와 속도에서는 절대로 균일하지 않은 것.


열일곱 살 우리가 폭발물이면서도 그다지 위험하지 않은 것은, 도화선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모든 것을 실천에 옮길 만한 기회와 행동력과 돈과 시간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분노와 불안을 극한까지 상상할 수 있는 안전장치다.

재욱 형이 왜 자기를 좋아하는지 아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내가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 연우야, 이거 중요한 문제야. 약간 멀리 있는 존재라야 매력적인 거야. 뜨겁게 얽히면 터져. 알았지?

나라는 녀석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대체 어디까지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소유하기 어렵다고 생각되면 지레 포기하면서 마치 원하지 않는 척 허세를 부려온 건 아닐까.

은행잎이 이주일 전 처음 이 거리를 뛰었을 때처럼 마냥 푸르게 보이지는 않는다. 아주 조금이지만 시간이 지나쳐갔구나.

자신이 없어지면 되나 안 되나 한번 물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짐부터 싸는 게 신민아씨 스타일이다. 그렇게 해서 자존심만 지키면 뭘 해. 원하던 것은 평생 못 가져볼텐데.
-옮기다가 눈물났다. 나도 이성보다 갈망이 앞설 수 있는 사람이었음 좋겠다. 이미 되긴 글렀지만.

서로 사이가 좋아서 가족이 행복한 게 아니라, 각기 제 인생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가족이 사이가 좋아지는 법이야.
-맞는 말이고 친구 사이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남녀까지는 모르겠지만. 음. 남녀관계에서 예외같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성장이란 자신이 서 있는 시간과 공간을 자각하는 거야. 자신이 위치한 좌표를 읽게 되면 그때 비로소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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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윗듀 2016-09-07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히려 가족보다 남녀관계가 더 그런 것같아요... 각기 제 인생이 행복하다고 느끼면 정말 가족의 사이가 좋아질까요?...ㅠㅠ

Cindy.K 2016-09-07 21:11   좋아요 0 | URL
오잉 저랑 반대로네요? 가족은 그야말로 공동체이니까 1순위인 개개인의 만족이 그 다음 순위인 공동체에 긍정적으로 협조, 이해, 배려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주지 않을까 싶어요

Cindy.K 2016-09-12 17:43   좋아요 0 | URL
반대로 연인관계는 순전히 개인의 행복을 위해 택한 관계이기 때문에 상대인 남자친구가 그만의 삶에 만족한다고 해서 저의 행복까지 영향을 줄 것 같지 않아요.

Cindy.K 2016-09-07 21:13   좋아요 0 | URL
런닝머신위에서 운동하며 써서 내가 뭔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알아들어주실테죠

스윗듀 2016-09-07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현주씨 런닝머신 위에서도 엄청 이성적으로 생각하시네요. 전 그냥 제 상황만 생각해보고 성급하게 댓글썼어요. 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가족이랑 사이가 좋지 않아서 ㅋㅋㅋ 근데 생각해보니 지금 행복하지 않아서 여유가 없는 게 맞네요. 젠장. 두번째 댓글은 완전 공감해요. 남친이 그만의 삶에 만족하면 짜증만 날듯요. 아 이 짦은 생각er

2016-09-16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indy.K 2016-09-21 10:53   좋아요 0 | URL
저는 딱 두권만 읽어봐서 소설 속 주인공과 은희경씨를 일치시키진 못했어요. 저 역시 잎으로 딱히 은희경 작품을 찾아 읽을 것 같진 않아요.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