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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0년 1월
평점 :
지금은 아니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알랭 드 보통이라고 하던 때가 있었다. 낭만을 품고 분석을 하는 사람이라 내 취향과 잘 맞았었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입만 산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좋아할 문장을 잘 쓰는 사람. 관찰력과 표현력은 뛰어나지만 점점 깊이랄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더라고. 여전히 좋아하는 축에 드는 작가이긴 하지만 이제 그의 책이 유치하게 느껴졌고 한참을 안 읽다가 출장 중 읽을 책을 역시나 yes24중고에서 고르던 중 안 읽은 `공항에서 일주일을`이 있길래 해외 출장과 잘 어울리네 하며 샀다.
세상에서 제일 불편한 미국행비행기 유나이티드에어라인과 아리아호텔 만달레이베이 로비에서 읽었다. 폰트 크고 줄간격도 넓고 사진도 2페이지 한장 꼴로 나와서 사실 저렇게 이곳 저곳 갖고다니며 읽을 책도 아니었는데. 사진이 세 장이나 쌓였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알랭 드 보통에게 일주일간 공항에서 지내며 글을 써달라고 요청을 했다. 공항 측의 `돈 안되는` 문화 사업 아이디어에 감동을 받은 드 보통이 승낙했고 공항에서 지내며 공항 내 직원들, 오고가는 승객들, 비행기, 기내식 뭐 공항에 보이는 모든 걸 닥치는대로 이야기 하고 있다.
솔직히 너무 많이 실망했다. 히드로 공항과 작가의 주거니 받거니, 그들만의 감동 그들만의 찬사 시간이었다. 얼마나 밑도 끝도 없이 감상적인지 읽으면서 내가 지금 TV동화 행복한 세상을 보고 있나 했다. 단락이 많이 나뉘는데 꼭 그 마지막 문장마다 이 상황에선 이러 이러한 감동을 느껴야해! 하는 강요하는 식의 감동 문구가 등장했다. 예로들면 기내식을 준비하는 26살 루마니아 출신 리사를 식사 중 먹는 중 떠올리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식의 쓸데 없는 감정이입. 유치하고 괜히 불쾌하다. 보통이 얘 완전 배렸네... 하며 읽었어. 공항이라는 명확한 투자자가 있어서일까 이건 뭐 헌사 수준. 읽으면서 생각한 건데 히드로공항에서 처음 요청한 작가는 알랭 드 보통이 아닐 것 같다. 상업작가 말고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특별함을 뽑아내는 그 날카로운 시선과 감정 포착은 여전히 뛰어나고 문장에 재치가 있어 적어도 읽으면서 지루할 일은 없다.
-발췌
우리는 지나치게 낙관하여, 존재에 풍토병처럼 따라다니는 좌절에 충분히 대비하니 못하기 때문에 분노한다.
연료 펌프가 작동을 멈추거나 엔진이 폭발하여 하늘에서 떨어지곤 하던 때에는 조직화된 종교의 주장들을 물리치고 과학에 대한 신뢰를 택하는 것이 지혜롭게 느껴졌다.다급한 과제는 기도를 하기보다는 오작동의 근본 원인을 연구하고 이성을 통하여 오류를 박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비행이 점점 꼼꼼한 정밀조사를 받게 되고 모든 부품이 위기에 대처할 장치를 별도로 갖추게 되자, 역설적으로 미신에 의존해야 할 이유도 늘어났다. 참사가 일어날 확률이 줄어들면서 오히려 우리는 과학의 장담을 외면하고 우리의 약한 정신이 억누르려고 애쓰는 위험의 가능성을 향하여 더 겸손한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그들 모두는 힘겨운 1년간의 훈련 과정을 거쳐 이곳에 온 사람들로, 훈련의 기본적인 목표는 모든 인간을 항공기 폭파범 후보자로 보는 것이었다. 새로 알게 되는 사람과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으려고 하는 우리의 관례적인 충동을 완전히 뒤집는 셈이다.
카버가 글로 쓰기 전에는 미국 서부의 고립된 작은 도시들의 적막과 슬픔이 그렇게 분명하게 드러난 적이 없지 않았을까.
죽음을 생각하면 우리는 무엇이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향하게 됩니다. 죽음이 우리에게 우리가 마음속에서 귀중하게 여기는 삶의 길을 따라가도록 용기를 주는 거죠.
우리는 모든 것을 잊는다. 우리가 읽은 책, 일본의 절, 룩소르의 무덤, 비행기를 타려고 섰던 줄,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 등 모두 다. 그래서 우리는 점차 행복을 이곳이 아닌 다른 곳과 동일시하는 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