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호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2
외젠 다비 지음, 원윤수 옮김 / 민음사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집 앞 헌책방에서 약간 누렇지만 상태 좋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여서 얼른 샀다. 듣도 보도 못한 작가에 제목이라 사놓고 한참을 안 읽다가 미국가기 전 남은 3일 사이 욕심없이 슥 읽을 아무 책을 고르다 보니 아무 애정없던 북호텔을 집게됐다.

북North호텔이라는 저렴한 호텔(민박이나 여인숙에 가까운 느낌)을 운영하는 한 가족이 투숙객들과 엉켜 보내는 하루하루를 일기장에 적어놓은 듯한 소설이다. 주인장 부부 역시 가난한 하층민으로 친척의 도움으로 지저분하고 낡은 호텔을 인수하게되어 갑이라할 수 있는 운영자와 을이라 할 수 있는 투숙객(반대도 가능)이 서로 위화감 없이 그저 이웃처럼 먼 가족처럼 어울리고 트러블이 생기고 위로하고 아낀다. 일과 도박 여자 밖에 모르는 남자, 사랑하는 남자만을 바라보고 파리에 왔다가 임신 후 버림 받아 미혼모가 된 여자, 매일 술에 취해 싸우는 노부부, 악취를 풍기며 노동을 마치고 돌아와 호텔 바에서 술 한잔으로 하루 피로를 푸는 노동자들 수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데 굳이 이름과 직업 특성을 기억하며 읽을 필요 없이 그들은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을 사람들이다. 그 많은 사람이지만 파리의 서민으로 묶일 수 있는 보통의 사람들의 보통의 하루들.

지저분하고 퀴퀴하고 무식하고 미래도 밝지 않지만 전혀 밉거나 불쾌하지 않다. 그리고 그들을 묘사하는 화자 역시 전혀 그들을 비하하거나 동정할 생각이 없다. 그들은 하나의 풍경이고 무더기로 역사이고 시간이다. 읽다보면 점점 마음이 따뜻해진다. 주인 내외의 불평없이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도 좋고 언젠 달랐냐는 듯 항상 퀴퀴한 투숙객들도 정이가. 인물이니 사건보단 풍경으로 읽히는 좋은 소설이었다.

외젠 다비라는 작가 난생 처음 들어봤는데 속표지를 읽어보니 앙드레지드의 절친이었대! 둘이 여행도 다니고. 듣고보니 참 어울리는 친구들이다 싶어. 모든 것은 아름답다는 맑고 어린애같은 호기심과 인류애를 가진 앙드레 지드와 수십명의 하층민을 미소를 머금고 바라보는 외젠 다비. 문득 그들의 대화가 궁금해진다. 표정은 어땠고 목소리는 어땠을까.

발췌

여자가 그의 앞을 지나간다. 그러면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나서는 길을 딱 막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이것 봐! 키스를 해야 지나갈 수 있어.˝
대개는 언제나 그가 이겼다. 이 복도에서 몇 번이고 이런 식으로 인연을 맺었던 것이다!
-벨 아미도 그렇고 대체 1900년대 파리는 왜 저따위인거야?


의외의 일이란 생길 수 없는 그런 생활이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9-16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indy.K 2016-09-21 10:52   좋아요 0 | URL
저도 호퍼의 그림은 좋아하는데 소설의 분위기와 영 안어울려서 아쉬웠어요. 그렇지만 최근 읽은 책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전 북호텔이 좋았답니다. 뭐 그리 다른 사건 사고가 나는 건 아니지만 그냥 그 시대에 잠시 속한 기분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