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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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 찾았다.. 책을 덮는 순간 나도 모르게 와.... 우와..... 했네. 가끔 시원찮은 책 열 권을 연달아 읽고 지금 뭐하는 건가 싶을 때가 있어도 이런 말도 안되는 책이 준비도 안된 나에게 불쑥 튀어나오니까 새로운 책 읽기를 멈출 수 없다. 헉헉. 진짜 좋다....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가 제목 속의 그 노인이다. 산간 지방에서 살던 이 남자는 아이가 안 생기는 탓에 동네 사람들의 입방아에 지쳐 아내와 마을을 떠났다가 우연히 문명이 닿지 않은 인디오들의 밀림에 오게돼. 원주민들과 자연을 통해 밀림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우게 된 노인에게 힘든 건 외로움이었는데 느즈막히 본인이 글을 쓰진 못해도 읽을 줄 안다는 걸 알곤 아주 가끔씩 밀림에 들어오는 의사를 통해 책을 얻어 독서를 하게 돼. 소설 속에 나오는 단어, 장면, 감정을 아주 작은 단서까지 파고들며 독서를 즐기는 노인에게 귀찮은 사건이 생겨. 밀림을 모르는 외지인에게 죽임을 당한 살쾡이의 어미가 인간들에게 복수를 시작한거야. 그 살쾡이에게 희생되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읍장의 지시에 노인이 앞장을 서 암살쾡이를 추적해.

밀림, 원주민, 야생동물 내가 호기심도 관심도 전혀 가지지 못한 배경 속에 티안나게 내내 흐르고 있는 낭만의 의뢰의 밸런스가 사람을 황홀하게 만드네. 험한 자연 속에서 살고 있는 거친 노인이 연애 소설 구절을 읽으며 미소 짓고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당최 섞일 수 없는 두 가지 장르가 보란듯이 섞여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낸 것 같은 느낌이었어. 군더더기 없이 질질 끄는 것 없이 속도감 있게 이야기가 진행되고 문장은 모호한 부분 없이 간결하고 말끔해.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이 전혀 애쓰지 않아도 영화처럼 보이고 그 장면 하나하나가 아름다워 계속 감탄하며 읽게 돼. 그 와중에 피식피식 웃게되는 포인트를 제대로 알고 적재적소에 슬쩍 흘리는 위트도 정말 좋아(웃음의 9할은 읍장이었다.). 마지막 살쾡이과 노인의 일대일 대치, 그 부분이 나오기 전까진 그저 참 재밌고 잘 읽히는 마음에 드는 소설이었는데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는 읽으면서도 얼떨떨했어. 내가 대체 뭘 읽고 있는 거지?하며.

모든 것이 좋았지만 더 좋았던 건 노인을 통해 독서 중 얻는 다양한 감정을 새삼 깨닫고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던 느낌을 글로 만났다는 거였어. 그래! 그 느낌이야!하며 독서를 하는 노인을 보며 그가 말하는 `독서의 즐거움`에 공감하다 문득 스스로를 보니 그 노인과 다를 바 없이 그 `독서의 즐거움`을 주는 책을 읽으며 흥분하고 있더라고. 상상을 자아내고 감정을 동요시키는 책을 읽는 노인의 이야기를 읽으며 상상을 하고 감정이 동요되고 있는 나를 만난, 문득 되게 놀라운 체험.

`연애 소설 읽는 노인` 중에서 아쉬운 점은 딱 하나였다. 169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다.

발췌

그는 도대체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깨달을 때까지, 마침내 그 구절의 필요성이 스스로 존중될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나는 글을 읽을 줄 알아. 그것은 그의 평생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었다.

직각삼각형에서 빗변은 직각의 맞은편에 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읍장 각하.˝
일행은 모두 실탄을 장전했다. 그러나 시늉뿐이었다.

두 구의 시신이 깜짝 놀란 두꺼비들와 수풀을 끌고 늪 속으로 천천히 빨려 들어가며 뽀얀 거품을 뿜어 올리는 광경을 지켜본 뒤에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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