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부터 1986년 2월 사이에 하루키가 썼던 에세이들인데 태어나기 전 일이지만 익숙한 듯한 문화여서 내가 한창이던 시대를 함께 추억한다는 말도 안되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의 잡지의 칼럼들을 리뷰하거나 인용하고 있어서 일본의 문화가 아닌 미국의 80년대 문화를 이야기하고 있고, 스콧 피츠제럴드, 아서 밀러, 무라카미 류 등 익숙한 작가들과 앤디 워홀, 키스 해링, 우디 앨런 그리고 온갖 헐리웃 배우들 등 누구나 아는 그 이름들이 등장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포크송 가수 보니 베어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처음 듣는 이름인데 그의 히트송을 보니 5 hundred miles가 있었다. 한참 잊고 있던 인사이드 르윈!! 수록곡의 감성이 더 스크랩과 잘 어울리는 듯 해서 유투브에서 인사이드 르윈 ost를 틀어놓고 읽었다. (모든 곡이 좋지만 특히 좋아하는 캐리 멀리건과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500 miles. 음악도 좋지만 영상의 분위기가 특히 좋아서 생각날 때면 영상으로 함께 본다. 괜히 고개를 살랑 살랑 흔들면서 듣게 되는)다시 책 이야기로. 읽고 나니 하루키스럽단 생각이 들지만 처음 읽을 때는 좀 놀랐다. 잡담을 대충 찌끄려 놓은 툭툭한 느낌이 예상보다 훨씬 가벼웠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평소 하듯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감각의 비유로 일상의 생각을 써냈다면 공감도 어렵고 그 잘난체에 질렸을텐데. 물론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 남을 내용은 없겠지만 최근 읽은 하루키 소설들보다 훨씬 더 좋았다. 다른 에세이집도 가볍게 읽어보고 싶다. 아 그리고 이거 좀 꼴값이긴 한데 에세이 속 하루키 스타일이랑 내가 허투루 찌끄리는 글이랑 좀 비슷한 것 같다. 마지막 문장이 포인트인 그 느낌 아나 몰라. 워낙 다방면에 조예가 깊고 트랜드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세상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같이 수다 떠는 느낌이었다. 테라스에서 시원한 커피 마시며 읽으면 산뜻한 휴식이 될 가볍고 재치있는 에세이였다.발췌˝내가 죽은 뒤에는 내가 연주하는 식의 재주는 사라져버리겠지.˝하고 덕은 말했다. ˝다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이런 것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말겠지.˝ /덕 치샘의 인생˝마음에 들지 않는 노래는 절대로 레코딩하지 않아요.안그러먼 그 노래가 크게 히트할 경우 죽을 때까지 불러야 하니까. 그런 건 싫습니다.˝ /그 사람은 지금 이렇게 지내고 있다 보니 베어 편한번은 사장인 루이스 메이어가 ˝자네는 언제나 다른 사람보다 출근이 늦군.˝하고 면박했다. 그러자 디츠는 ˝대신 다른 사람보다 일찍 퇴근합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대단하다. / 하워드 디츠의 생애(리처드 브라우티건 처럼) 데뷔 때 인상이 너무 강렬하면 작가는 뒷감당이 힘들어진다. 나 같은 사람은 적당히 팔리니 적당히 즐겁게 지낼 수 있지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군.-이런 식의 자기 비하식 농담이 자주 나오는데 재치있고 겸손한 듯 하지만 사실은 본인 스스로 그 이상의 후한 칭찬과 평가를 듣고 있음을 아는 사람의 것이라 조금 코웃음이 나오긴 했다. 상당히 자주 나오는 재치 패턴이었다. 30대의 하루키이니 지금은 안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