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읽은 일본소설 거기다가 김난주 번역. 제일 책을 많이 읽던 대학생 시절 땐 읽는 책의 80%가 일본 소설이었는데 그 중에 최소 10%는 김난주님 번역이 아니었나 싶다. 믿고 읽는 김난주였는데 오랜만에 읽어도 역시 .... 맛이 산달까. 정말 반가웠다. 무색무취의 한 평범한 교사가 취미생활인 곤충채집을 하러 인적이 드문 모래마을에 갔다가 납치되는 이야기. 탈출을 꿈꾸며 지독한 모래의 공격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얼토당토않은 설정 같지만 하나도 안 웃기다. 정말이지 너무 심각하다. 모래지옥에 대한 표현이나 더위와 습기로 인해 망가진 피부와 그 감각을 묘사하는 부분이 나올 땐 정말 오만상을 찌푸리며 끙끙대며(속으로) 읽었다. 처음 남자가 덫에 걸리는 부분에 오! 설정 신선해! 했는데 어흐 상황이 진행될수록 이거 정말 끔찍하고 괴로운 이야기야. 어머 나 리뷰 쓰면서 나도 모르게 미간 완전 찌푸리고 있었네. 읽는 내내 사막에서 몇 박 며칠 야영한 기분. 간접체험의 끝을 보여주는 묘사다. 그렇게 디테일하고 신선한 비유를 함에도 불구하고 모호한 부분이 없고 문장은 짤막한 것이 ... 읽는 내내 그 재능에 감탄이 계속 나왔다. 아베 코보. 실제 곤충 채집이 취미라는 아베 코보의 덕후스러운 지식과 상상력이 만들어 낸 걸작. 처음 곤란에 빠지게되는 설정은 비현실적이었지만 거기까지 픽션같았고 그 이후 주인공의 대처, 감정변화, 여인과의 관계에 대한 진행이 그 상황의 누구라도 그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한에 처한 동물의 관찰기 같은 인상을 받았다. 영화화 됐다고 하던데 영화화 되지 않았다고 하면 황당할 정도의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감각적 디테일이 살아있는 정말 정말 잘 쓰인, 소설의 몫을 다한 작품이었다. 앗! 리뷰를 다 쓰고 부제목을 달려고 생각하다가 문득 소설 속에 나오는 곤충 이야기가 떠올랐다. 바껴진 환경에 적응하려 변화한 곤충. 변종을 찾으려 떠난 주인공이 결국 급작하게 바뀐 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자의는 아니지만) 어느덧 변종되었구나. 와..... 발췌버린 성냥을 거스르면서 시계의 초바늘 같은 속도로 모래의 물결이 이동하고 있다.-비유의 왕, 표현력의 왕으로 임명합니다.작지 싶어서 별 생각 없이 밟은 뱀의 꼬리가 뜻밖에 커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뱀의 머리가 자기 목덜미에 있더라는 식의 당혹감이다.-필요이상으로 멀리간 비유인데 뭔지 되게 잘 알 것 같다. 창의적인 비유의 왕으로 임명합니다.없다고 곤란해질 일은 전혀 없다. 환상의 벽돌을 듬성듬성 쌓아올린 환상의 탑이다. 하기야 없어서는 안 될 것들 뿐이라면, 현실은 슬쩍 손도 댈 수 없는 위험한 유리 세공품이 되어버린다. 요컨대 일상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모두들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집에 컴퍼스의 중심을 두는 것이다.과연 시간이 말처럼 뛰어가는 일은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손수레만큼 늦지도 않은 듯하다.-더 옛날에 계셨다면 이 분 입에서 나온 속담도 수두룩했을 듯하다.반복은 현재를 채색하고, 그 감촉을 확실한 것으로 만들어준다.아무런 기약 없이 그저 기다림에 길들어, 드디어 겨울잠의 계절이 끝났는데도 눈이 부셔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구걸도 사흘을 계속하면 그만두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 내부로부터의 부식은 의외로 빨리 진행되는 것인 모양이다.-나도 모르는 새 나 역시 부식되고 있다. 얼른 5월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