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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기술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프리랜서가 된 요즘, 논현에서 미팅하고 월요일 대낮 교보문고에 가서 책 구경하다가 제목과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침묵의 기술. 요즘 내가 가장 갖고 싶은 능력 중 하나인 `입 좀 다물고 있기`에 도움이 될까 싶어 자리 잡고 앉아서 읽었다. 서점에서 책 한 권을 다 읽은 건 처음이었다. 아 애초에 조금이라도 읽은 적이 없는 것 같기도. 문장 간격이 넓고 폰트도 커서 요즘 읽는 책들에 비해 눈과 머리가 훨씬 편해서 서점에서 슥슥 읽기 좋았다.
처음 두 챕터는 침묵의 종류를 임팩트있게 구분지어놓았고 각각의 긍,부정적 자세와 영향을 와닿게 설명해놓아 흥미가 확 왔다. 그리고 이어서 쓸데없이 말을 많이하거나 필요 이상의 침묵에 대해 이야기는데 어라 싶었다. 이건 침묵의 중요성을 말하는 게 아니라 종교를(에서 시작해서 점점 노골적으로 기독교를) 부정하거나 무관심한 자들의 행동을 비난하고 있었다. 황당할 지경이라 저자 소개를 찾아봤더니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1716~1786) 나 태어나기 200년 전에 죽은 사람이었어. 그 땐 그랬나보지. 정치가 종교고 종교가 문화였으니 말로 종교에 대해 섣불리 비난하는 것이 `말`의 가장 나쁜 짓이었나보지.
필요한 말만 적당히 하고 확실히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언급은 신중하게 하라는 이야기는 뭐 당연한 소리임에도 나포함 많은 사람들이 따르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라 읽으면서 내 언행들을 되짚어보기도 하고 반성하기도 했다. 종교와 같이 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이슈에 대해 감정적으로 극단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경솔하고 편협한 태도인지 세삼 느끼며 부끄러워지도 했다. 그렇지만 결국 말조심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저자 역시 무신론자에 대한 이해 따위 없이 종교를 부정하는 모든 자를 무지하고 경솔하다 말하고 있으니 ˝너부터 말 조심해.˝가 나오며 뒤로 갈수록 길거리 예수천국 불신지옥 전도쟁이 새끼들이랑 뭐가 다르냐 싶어 짜증내며 독서를 마쳤다. 발췌보면 알겠지만 상당히 보수적이고 꼰대롭다.
분명 중요한 가르침을 담고 있으니 200년 전 죽어 이제는 하느님 품에 안겨 천사님의 하프 소리 들으며 행복할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랑 싸울 생각 말고 필요한 것만 발라내서 기억하면 되겠다.
아 그리고 1부는 말하기에 대해 2부에는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입에서 나오냐 손에서 나오냐 차이 빼곤 1, 2부에 완전 같은 이야기 반복이라 황당했다. 성의가 없는건지 오리지널에 충실한 건지 모르겠다.
발췌
말을 해야 할 때 입을 닫는 것은 나약하거나 생각이 모자라기 때문이고, 입을 닫아야 할 때 말을 하는 것은 경솔하고도 무례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침묵 속에 거함으로써 스스로를 가장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침묵을 벗어나는 순간 사람은 자기 밖으로 넘쳐나게 되고 말을 통해 흩어져, 결국에는 자기 자신보다 남에게 의존하는 존재가 되고 만다.
젊은이들은 어떤 불가해한 광기에 갑작스레 휩싸이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튀어나오는 말은 제멋대로이기 일쑤고, 그 의도는 모호하고 부실한 데다 관심사 역시 가소로운 수준이다. 아마도 자기 주제를 망각한 나머지 격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창피만 키울 뿐인 세계 속의 어떤 역할에 무작정 매달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기들 집단에 속하지 않은 모든 것이 무시의 대상으로 보이고, 비난과 차가운 야유를 유발한다.
종교의 보편타당한 문제, 특히 풍속에 직결되는 진리를 거론할 경우 젊은이들은 자신의 연륜과 식견을 먼저 자성한 뒤 발언의 수위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좋다.
신을 가벼이 여기고서 무사한 이 없음을 명심하라. 그분께선 그대가 망동하는 바로 그 자리에 벌을 내리시리니, 딴에는 재기 부린답시고 허튼소리를 지껄이는 순간 그대의 권위는 빛을 잃고, 평상시 그대를 우러르던 이들이 한꺼번에 고개를 돌릴 것이다.
-협박하냐?
말을 하기 위해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글을 쓰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침묵보다 나은 쓸거리가 있을 때에만 펜을 움직인다.
자고로 사람의 마음이란 본능적 성향을 만족시켜주는 것이면 무엇이든 취하려고 안달이어서 온갖 타락의 지침들로 스스로를 부풀리기 일쑤다. 게다가 마음의 기능이란 본래 합리적 추론이 아닌 무조건적 애정에 있는 만큼, 구미에 맞고 안락해 보이는 모든 대상에 무작정 경도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