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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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여행을 가면 꼭 책을 가져가기 시작했는데, 여행지에서 독서하는 그 순간도 좋지만 다녀와서 그 책과 여행지가 함께 어우러지는 그 느낌이 더 좋았다. 가장 잘 나온 단체사진처럼 나와 여행지와 그 책이 함께 기억된다. 이번엔 어떤 책을 읽을까...... 집에 사놓고 안 읽은 책이 산더미임에도 불구하고 확 끌리는 책이 없었고 그래서 여행가는 전 주에 책 8권을 주문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이번 여행에 가져가고 싶은 책이 한 권도 없었다. 그러다가 이미 작년 이맘 쯤 읽었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손이 갔다. 분명 이상한 일이다. 난 같은 소설을 두 번 읽어 본 적이 없고, 한 권 한 권 읽은 책의 수가 늘어나는 게 내 즐거움 중의 하나인데 여행지에 읽었던 책이라니. 그리고 처음 읽을 당시 그리 엄청나게 좋아한 책도 아니었다는 게 더 이상하다. 희승언니와 함께 여행하는 동안은 1페이지도 읽지 않았고 Suprina네 집에서 잠들기 전에, 혼자 남은 이틀 간 숙소와 예쁜 카페에서 읽었다. 이 책을 택했던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결과는 요즘의 내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철학적 고민을 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드네. 이미 답 안나오는 고민을 많이하는 사람은 오히려 체한 기분 드니까 멀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난 후자이지만 이게 또 즐거움이라는 아이러니.

테레자와 토마시, 토마시와 사비나, 사비나와 프란츠. 이렇게 세 커플, 네 인물이 등장한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어느 누구이고 미묘한 감정까지 다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네 인물 각자의 사정과 감정, 감각까지 충실히 묘사하기 때문에 네 인물 모두 주인공이고 1인칭 시점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전지적 시점으로 진행된다.

넷이 모두 아주 다른 캐릭터인데 `알고보면 나쁜 사람 없다.`고 여성편력도 지루함도 외도도 방어기제도 그 넷의 각각의 사정이 다 내 것인 양 하나같이 이해가 된다. 그게 완전 대치되는 반대 성질의 것이라고 해도 이건 이거대로 그건 그거대로 이해가 돼(납득이 아니고 공감이다.).

아주 흥미로운 질문거리가 끝없이 나오는데 500페이지 내내 그 모든 질문에 `결국` 답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진중함과 경솔함 중 무엇이 더 진실된 것일까. 운명은 있을까 어쩌면 우연이 만들어낸 착각은 아닐까. 지금 내 감정은 사랑일까 망상일까.

러시아에 점령당한 프라하를 배경으로 무엇도 옳다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신념은 무너지고 존재는 불투명해진다. 시대적 혼란 때문인지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연인에게 감정적으로 많은걸 기대하고 실망하고 좌절한다. 누구하나 만족스럽지 않다. 묘사되는 모든 감정이 모두 내 것 같다. 갑자기 웃기다ㅋㅋ 이래서 사주보면 점쟁이가 다 맞춘 것 같고 형액형 별자리 성향이 다 맞는 것 같았구나. 유난히 눈에 띄고 안 띄고의 차이지 내면의 감정은 이 세상 모두가 공유하고 있나보다. 너 외향적이지? 어! / 너 혹시 겉으론 웃어고 속으론 힘들지? 어머어머 어어! / 너 남자친구한테 헌신적이지? 소오름! 나 간쓸게 다줘. / 남자친구 있는데 다른 남자한테 끌릴 때 있지? 오 시발 어떻게 알았어. / 음....... 모두가 모든 성향을 갖고 있어서 간파당할 수 밖에 없구나.

나이가 들수록 의문은 많아지고 해결이 되는 것은 한 가지도 없다. 진리는 알겠는데 그 진리를 내 인생에 어떻게 적용해야한 지는 모른다. 그래. 한 사람의 인생이 그렇게 한낮 먼지처럼 있다 없어지는 거라고 하자. 그래서 우리의 어떤 행위도 실은 아무 것도 아니며 결국 중요하고 심각하게 여기는 것도 실은 전혀 의미없는 거고. 그래서?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내 삶이기에 더더욱 내 고집을 부려서 내가 원하는대로 쟁취해서 즐기다 가야 한다고? 아니면 결국 별 것도 아닐 것이기에 욕심 부리지 말고 흘러흘러 적당히 보내다 기억할만한 것도 없이 기념할만한 것도 없이 때되면 죽으라고? 가벼우라고 무거우라고?

네 주인공이 모두 너무 외롭다. 나를 포함한 이 세상 모두가 너무 외롭다. 그래서 그렇게 상대를 통해 나를 채우려하고 나를 확인하려 한다. 근데 모두가 딱 나만큼 이기적이어서 상대를 채워주려하기보단 본인을 채워줄 누군가를 찾아 헤맨다. 참...... 이 쯤에서 또 안물어볼 수가 없다. 왜 태어나서 이렇게 답 안나오는 삶을 살아내야만 하나.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비관적이 되는 것 같다. 특히 고전에 집중한 최근 2년 그냥 모든 것이 다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이 씁쓸하거나 쓸쓸한 감정도 기억할 필요도 의미도 없는 것이라니 이렇게 끄적이는 것도 다 무언가 싶고. 근데 참 아이러니한 게 ˝우리 존재는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적당히 살다 가라.˝고 말하는 과거 작가들은 그들의 인생동안 그렇게 글을 쓰고 남겼다. 남의 생은 적당히 하면 되는 거라고 쉽게 말해놓고 본인들의 생에선 울고 화내고 욕심 부렸다. 인간은 문제가 없어도 문제를 만들어 사서 고민하는 이상한 동물이다. 이 것도 예외는 없다. 모든 인간이 그렇다. 오늘따라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술 안마셨다. 그냥 핸드폰으로 쓰니까 큰 그림이 안보여서 말도 안되는 소리, 앞뒤 안맞는 소리 하고 있나보다.

대만에서의 마지막 밤이 되었다. 책 때문인지 혼자 보낸 시간이 쓸쓸했다. 얼른 지우 보고싶다. 쌍둥이도 보고싶고. 당분간 여행 안가야지. 나 지금 수중에 70TWD(2500원)있다. 귀여운 기분이다.

발췌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 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랑은 정사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이 욕망은 수많은 여자에게 적용된다.) 동반 수면의 욕망으로 발현되는 것이다.(이 욕망은 오로지 한 여자에게만 관련된다.)

동정심보다 무거운 것은 없다. 우리 자신의 고통조차도, 상상력으로 증폭되고 수천 번 메아리치면서 깊어진, 타인과 함께, 타인을 위해, 타인을 대신해 느끼는 고통만큼 무겁지는 않다.

˝Es muss sein! 그래야만 한다!˝라고 되뇌었지만 금세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정말 그래야만 할까?

그녀는 여자들 중 가장 평범한 여자들이 하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나를 버리지 마세요. 당신 곁에 있게 해 주세요. 나를 노예로 만들고 당신은 강해지세요!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할 수 없고 할 줄도 몰랐던 말들이었다.

삶이 잔인했기에 공동묘지에는 항상 평화가 감돌았다.

그에게 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명령할 힘이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폭력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있다. 육체적 사랑이란, 폭력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행위의 목격자가 있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좋건 싫건 간에 우리를 관찰하는 눈에 자신을 맞추며, 우리가 하는 그 무엇도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군중이 있다는 것, 군중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거짓 속에 사는 것이다.

우리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항상 철저한 미지의 그 무엇이다. 사비나 역시 배신의 욕망 뒤에 숨어 있는 목표가 무엇인지 모른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목표일까?

영혼을 흥분시키는 것은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행동하는 육체에 배신당하는 것, 그리고 그 배신을 목도하는 것이다.

범죄적 정치 체제는 범죄자가 아니라,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을 발견했다고 확신하는 광신자들이 만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비굴함의 인플레이션이 그들 자신의 행동도 평범한 것으로 만들며 그 실추된 명예를 돌려주기 때문에 즐거워했다.

도무지 논리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는 사람이 그들의 판단에 그토록 매달릴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을 여러 범주로 나누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인간이 일생 동안 종사하는 이런저런 직업으로 그들을 인도한 이러한 깊은 욕구에 입각한 것이리라.
-그 방법 별롤세.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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