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알마 / 201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The man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

꽤 오래 전에 흙서점에서 샀던 책인데 책에 대한 정보 아예 없이 제목이랑 일러스트가 좋아서 집었었어. 그런데 이렇게나 유명하고 의미있는 책이었네. 나의 무의식중에 빛나는 안목인건가 찍기 운인건가. 어릴 때부터 찍기는 참 잘했지. 8학군 애들이 모이는 핫한 영어학원에서 진심 `찍기`만으로 제일 높은 반에 배정되어서 엄마가 원장에게 낮은 반으로 조정해달라고 했을 정도. 어쨌든 두께 때문에 괜히 쫄아서 그간 미뤄두다가 읽었는데 오!

신경학자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가 그동안 만났던 환자들 중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사례를 마치 소설처럼 풀어낸 책이야. 의료는 과학과 기술, 원리 같은 다소 딱딱하고 이성적이고 얄짤없는 이미지인데 신경학이라는 분야의 특성인지 아니면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의 태도인지 환자와의 대화도 관찰도 환자에 대한 평가도 참 따뜻하고 인간적이고 너그러워.

제목에서 보듯 안면인식 장애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20여 가지의 실제 환자의 질환과 그로 인해 벌어진 헤프닝 등이 소개돼. 그 당시 컴퓨터로도 할 수 없던 8~20자리 소수를 특별한 계산 없이 거침없이 내 놓던 자폐 쌍둥이 형제, 귓가에서 어릴 때 듣던 가곡이 멈추지 않고 들려 대화도 할 수 없는 할머니, 거울을 보지 않으면 몸을 20도 가까이 기울어지는 아저씨, 200곡의 오페라 곡을 외우는 저능아 등이 나오는데 소설 속 만들어진 캐릭터라도 해도 놀라울만큼 개성있고 별난 사람들의 삶을 단편 소설 읽듯 읽었어. 읽으면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고 안쓰러워서 코가 찡해지기도 했지만 읽고 나니 따뜻한 동화를 읽은 훈훈한 기분이다.

불운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환자의 삶에서 긍정적인 면모를 끌어내는(혹은 발견하는) 올리버 색스의 자세도 감동적이고 환자 가족들의 헌신도 참 따뜻하지만 무엇보다 환자 본인들의 순수함과 긍정적인 태도 유쾌하고 단순한 대화법 등이 읽는 나를 정화하는 느낌이었달까(오글오글 죄송). 신경질환을 겪는 환자에 대한 선입견에도 영향을 많이 줬을거고 그들의 부모와 친구에게 기운을 줬겠다. 참 좋은 의사선생님이다.

신경, 정신학에는 철학이 바탕인게 참 마음에 들어. 근데 결국 결정적인 것은 뇌 손상이더라. 신기해. 과학과 철학의 콜라보레이션.

읽으면서 내심 무서웠던 건 나도 언젠가 아니면 지금도 그들과 같은 증상을 가진 환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오래 건강하게 무리없이 살고싶다.

발췌

기억을 조금이라도 잃어버려봐야만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억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라고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언어상실증 환자들은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진실인가 아닌가를 이해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언어는 상실했지만 감수성이 특히 뛰어난 그들은 찡그린 얼굴, 꾸민 표정, 지나친 몸짓, 특히 부자연스러운 말투와 박자를 보고 그 말이 거짓이라는 걸 알아차린다. 그래서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면서 폭소를 터뜨렸던 것이다.

중독이나 병에 의해 해방과 각성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정신과 상상력은 무뎌진 상태로 잠들어 있다는 사실, 그 얼마나 역설적이고 잔인하며 아이러니한 일인가!(중략) 병리상태가 곧 행복한 상태이며, 정상 상태가 곧 병리 상태일 수도 있는 세계이자, 흥분 상태가 속박인 공시에 해방일 수도 있는 세계, 깨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몽롱하게 취해 있는 상태 속에 진실이 존재하는 세계 말이다.

생물학적으로나 생리학적으로 우리는 서로 그다지 다를 것이 없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그리고 이야기의 화자로서 우리 모두는 각각 고유한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필요하다면 되살려서라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뇌는 그 사람의 전 생애에 걸친 기억을 완전하다고 말해도 좋은 정도로 보관하고 있다. 모든 의식의 흐름은 뇌에 보존되며, 생활 속에서 필요할 때마다 언제라도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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