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7월에 시작한 책은 7월에 끝내고 싶은 이상한 강박 때문에 앞에 몇 페이지만 봤던 체실 비치에서를 들고 출근. 출근길에 1/3 점심시간에 1/3 근무중에 1/3 읽고 리뷰쓰며 완벽히 마무리한다. 아 개운해.

이 책은 어디서 알게 되었는지 정말 기억이 안나네. 책을 굉장히 많이 읽는 어떤 사람의 SNS(인스타나 북플)혹은 블로그에서 한 해 최고의 소설이었다고 추천되어있었는데 다른 책 리뷰를 보니 나랑 취향이 비슷한 것 같아서 바로 주문했어. yes24에서 그 외 몇 권도 주문했고 최근에 흙서점에서도 두 권 사고 기존에 사놓거나 빌려놓은 책도 있고 적어도 8월을 책을 안사도 될 것 같아. 있는 책 읽고 빌려나봐야지.

체실 비치에서는 우선 제목도, 커버 디자인도, 폰트도 참 마음에 든다. 제목으로는 전혀 내용을 가늠할 수 없었는데 체실 비치에서 벌어진 일이구나. 이렇게 직관적인 제목 좋아. 간단히 줄거리를 정리할건데 살짝 나중에 내가 한참 후에 읽었을 때 아 이랬지 할 정도로만 적고싶다. 워낙 얇은 책(198p)이고 빨리 읽혀서 리뷰 몇 줄로 감히 쉽게 정리할 것 같아. 독자 주제에 그러면 안되지.

서로를 위하고 존중하는 매너있는 두 남녀가 1년간 교제를 하다가 결혼을 하게 돼. 식이 끝난 직 후 체실비치로 신혼여행을 생긴 그 날 밤 벌어진 일이야. 아주 짧게 말하면 보통의 성욕을 가진 남자와 섹스 공포증이 있는 여자의 첫날 밤 이야기.

그 기막힌 눈치 싸움이 오갈 때 이 책 골 때린다 생각했고, 상황이 벌어질 때 내 감각까지 동요되어 꼴릿했고, 상황이 끝나고서의 남녀의 행동과 그 심리 묘사가 알랭 드보통의 것 같았고 드보통이 나서서 치욕스럽게 그 심리를 논리정연하게 더 헤집어줬음 좋겠다 생각했어. 그리고 중요한 마지막 장에서는 앞에 읽은 모든 소란이 의미없다 하는 해탈의 느낌을 나이가 들어버린 남자주인공과 동시에 느낄 수 있었어. 내가 만약 지금 40-50대 였다면 앞의 소란에서도 이미 저게 다 무슨 의미냐 젊은 것들아... 하고 있었을 것 같아.

이언 매큐언. 유명한 작가인 것 같은데 나는 처음 들어봐. 이름이 좋다. 영국인인 것도 좋고. 그리고 읽어보니 굉장히 내 스타일이다. 이 분 글 굉장히 잘 쓰시네. 감각을 묘사하는 데는 도사같고(난 누가 내 몸 만지는 줄) 남녀 심리에서는 마치 자웅동체 같은 느낌이야. 대표작 몇 권은 앞으로 찾아 읽을 예정. 맞춤법 띄어쓰기 틀린 부분이 좀 보였지만 원래 쥐잡듯 찾아내면 더 안보이는 법이라 몇 개의 실수는 이해해. 이해해요 문학동네.

발췌

핵심은 사랑이고 서로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그 감각에 몰입하고 있고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어가는 걸 느꼈지만 그럴 리 없다고 의심하며 부인했다. 어떻게 한 가닥 털의 뿌리가 자신의 온몸을 잡아끌 수 있단 말인가? 하나의 점과 같은 그 감각은 애무하는 그의 손의 리듬에 맞춰, 고른 박자로 피부 표면을 가로질러 복부를 지나 진동하며 저 아래 회음부로 번져갔다. 아주 낯선 느낌만은 아니었다. 통증과 가렴움의 중간쯤 되는 것 같으면서도 더 부드럽고 더 따뜻하고 어딘가 모르게 더 공허한 느낌이었다.
-이 부분은 훨씬 더 길게 다 옮기고 싶었는데 이 정도로만 옮김

그는 플로렌스와의 섹스에 대해서뿐만이 아니라 결혼과 가족, 그들이 낳게 될 딸에 관해서도 꿈꾸었다.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분명 성숙함의 증거였다. 어쩌면 한 사람 이상의 여자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다는 오랜 꿈이 품위 있게 변형된 것일지도 몰랐다.

서로 팔짱을 끼고 찬란한 가로수 길을 천천히 거슬러 올라가면서 ...... 그때는 그들의 풋풋한 사랑이 극치에 달했던 순간들 중 하나였다
-내 그거 잘 알지. 한강, 손, 향기, 바람, 발걸음

그녀는 자신뿐만 아니라 그에게도 뭔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에 아주 약간 안심했다고 감히 인정할 용기가 있었을까?
-여기서 알랭 드 보통이 튀어나와야 했다.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그렇게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 이 책의 하이라이트이자 오랜만에 팍 꽂히는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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