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에게 물을 (양장)
새러 그루언 지음, 김정아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참.. 내가 책을 고르게되는 이유는 50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서 그리고 나머지 50이 헌책방에서 새책이 눈에 띄어서. 앞의 50은 굉장히 안전하지만(90% 확률) 뒤의 50은 복불복이어서 열 페이지를 못넘기고 책장의 비주얼만을 담당하기도 한다. `코끼리에게 물을`이 그럴뻔했다. 책방에서 살짝만 보면 알수있던 `캐나다작가의 미국 소설`... 내가 참 약한 부분인데.. 보통은 시도도 하지 않는데 거기다 제목도 당최 장르를 예측하기도 힘들고 정보도 없고. 순전히 표지와 컨디션만으로 선택된 책이었다. 그래서 반년 간 책장에 박아뒀다가 읽을 책이 없어서, 또 일본/추리소설에서 좀 벗어나고 싶어서 큰 마음 먹고 읽기 시작했다.

간단히

코넬대 수의학과생이던 장래가 촉망되던 주인공의 부모님이 사고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 혼자가 됨은 물론 부모님의 빚까지 떠안게 된다. 공부는 사치이며 당장 밥 한끼 먹을 돈도 없이 하루 아침에 거지꼴이 된 주인공은 반쯤 정신나간 상태로 이타카(코넬대학이 위치한 동네인데 영 일본지명같다)를 떠나야한다는 마음 하나로 지나가던 기차에 몰래 몸을 숨긴다. 곧 발각되지만 그 기차는 여행객을 위한 기차가 아닌 서커스단의 기차였지. 운영진과 배우와 동물들이 적절한 방에 배치되어있는 (이 부분은 뭔가 설국열차같다. 각자 맞는 칸이 있는 점. 배우가 어떻게 청소부와 잘 수 있냐고 항의하는 부분 등) 한 세계와도 같은 기차에서 주인공의 인생은 새롭게 시작된다. 마침 동물을 챙겨줄 의사가 필요했던 것. 서커스단 일꾼들과의 우정, 처음 찾아온 사랑, 동물과의 교감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보면 알겠지만 줄거리가 중요하지 않다. 미국 서커스의 역사가 들어있고, 1900년대 미국사가 들어있다. 중간중간 나오는 참고 이미지도 있고 정말 의외로 아주 많이 흥미롭다. `오스카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을 읽으면서 처음 느꼈던 것 같은데 재밌는 책은 작가의 능력이지만 좋은 책, 대단한 책은 작가의 능력은 기본에 그에 못지 않는 성의가 더해져야, 즉 철저하고 정확한 자료조사가 뒷받침되어야 오래 회자될 수 있는 좋은 책이 나오는 것 같다. 그런면에서 보통 소설을 읽고 나면 즐거움 외 얻는 게 없다는 허탈한 느낌이 이번엔 덜했다.

미국을 좋아하고 문화에 그나마 익숙한 것, 친구가 코넬대생이라 이타카에 대해 아는 것 등이 소설을 더 재밌게 느끼게 만든 것 같다.

라고 감상을 끝낼 것 같았는데 마지막 몇 페이지를 남겨두고 충격적인 장면이 하나 나온다ㅋㅋㅋㅋㅋ 이건 아무리 혼자 하는 블로그라고 하더라도 너무 결정적인 재미를 만들어내는 부분이라 쓸 수가 없다. 책 표지에 보면 2009년 영화화 결정! 이라고 되어있는데 영화화 하는 데에 결정적 쐐기를 박은 장면일꺼라고 1200% 확신한다. 푸하하. 머릿속으로도 이렇게 헉 하는데 영화에서 보면 어떨까? 지금 찾아보니 2011년도에 진짜 개봉을 했네 . 리즈위더 스푼과 로버튼 패틴슨이 연기했구나 떠올린 이미지와 꽤 다르다. 내가 생각한 이미지로 맘대로 캐스팅을 하자면 남자는 제임스 맥어보이나 토비 맥과이어 정도? 약간 소년같고 순수한 모범생인데 매력있는 얼굴인데 왠 뱀파이어? 책 평점은 9점이 넘는데 영화 평점은 7점이네. 다 됐고 `그 장면`만 찾아서 딱 보고 끄고 싶당. 뻑!!!!

요즘 책을 보면 줄거리보다 문장들에 더 애착이 가서 보다가 사진을 찍어두곤 하는데 그게 다시 블로그를 보며 책을 떠올릴 때 상당히 흥미롭더라. 이 책도 찍은 부분이 있나 해서 핸드폰 사진첩을 뒤져봤더니 있다. 읽어보니 역시 좋다. 써야겠다.

언제부터인가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사람들이 내게 술병을 건네준다. 나는 주는 대로 받아 마시는 것 같다.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나는 세상 모든 사람들과 세상 모든 만물에게 한껏 따뜻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사람들은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나는 사람들 어깨에 팔을 두른다. 우리는 큰 소리로 웃는다. 왜 웃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에는 웃을 일뿐이다.

마치 내가 술 마시고 쓴 글이다. 바로 이거다. 이 기분이야

로즈메리가 시계를 본다. 바늘이 있는 진짜 시계다. 디지털 시계는 한때 유행했다 사라졌다. 천만다행이다. 뭔가를 만들 줄 안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언제나 깨달을까?

공감 공감 공감. 책은 직접 침 발라 넘기자(실제 침을 바르며 책장은 넘기진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누렇게 바래도록 내버려두자. `구매` `삭제` `이전 페이지보기` 가 왠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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