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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말걸기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은희경의 타인에게 말 걸기, 꼭 읽고 싶은 책이었는데 마침 중고책방에 있어서 약간 손때가 탔지만 득템. 9개의 단편. 과장없이 포장없이 처절한 우리네들의 사랑과 상처라 보는 내내 울컥했다. 상처받은 여자 받을 여자 안받은 척 하려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지난 연애(관계보다는 그 당시의 처절한 감정이)와 닮아있는 구석이 종종 나와 몇 번이고 문장을 곱씹기도 하고 눈물도 짜고 코도 풀며 재밌게 읽었다. 읽은지 두달 됐는데 이제 쓴다.
(아마) 좋아서 캡처해둔 부분을 옮겼는데 대체 왜 좋았던 구절이었는 지 전혀 모르겠다. 스토리도 생각나지 않는다. 이런 저런 장편 중 기억나는 건 두가지, 몸을 함부로 굴리는 여기자의 이야기와 세컨드로 살다 산 속 절로 도망친 여자 이야기. 제목이 뭐 였는지 모르겠다. 음.. 이책은 너무 재밌어서라기 보다는 더 많은 사랑과 더 많은 감정을 느끼고 더 많은 상처를 받은 후 다시 읽고 싶은 책이었다. 내 방 문을 잠구고 바닥에 앉아서 옆엔 소주에 멍게를 두고 주워 먹으며 따라 마시며 읽어도 참 좋겠다.
개는 주인이 매일같이 귀여워하다가 갑자기 걷어차더라도 오랫동안 슬퍼하거나 노하지 않는다. 그 일의 심각성에 대해 10분 이상 고민할 만큼 진지하지도 않다. 다음날이면 또 와서 꼬리를 친다. 왜 부당하게 걷어차여야 하냐고 항변하거나 이렇게 살아서 뭐하냐고 자기연민에 빠지지도 않으며, 걷어차이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태업을 하거나 단식을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런 일들로 상처받기에는 그녀의 성격은 좀 건조했다. 그녀는 삶을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무엇이든 깊이 생각하지 않았으며 특히 가지지 못할 것에 대한 무모한 열정 따위는 일찍 폐기시키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등뒤에서 남자가 휘이익, 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 소리는 꼬리라도 달려 있는지 그녀의 뒷모습을 결박하듯 휘감았으며 길고 천박했다.
별다른 일은 생각지도 않게 일어나는 것이지만 또 이상하게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여간해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위대한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해왔던 그들은 한순간이라도 상대의 존재가 피곤하게 느껴진다는데에 모욕을 느꼈으며 피곤의 여지가 끼어들 수 있다면 그렇다면 혹 그들의 사랑은 다음 기회에 다시 올 수도 있는 평범한 사랑 중의 하나가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 의심은 과민함으로, 그렇다, 지나친 과민함의 미로 속으로 그들을 질질 끌고다녔다. 미로를 빠져나왔을 때 그들은 자기들이 도달한 곳이이별의 지점이라는 데에 어리둥절했지만,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헤어져 돌아가며 그들은 각자 위대한 사랑의 장렬한 파국을 애도하면서 울었다.
자기의 얼굴이 `젊다`가 아닌 `젊어 보인다`고 표현되고 있음을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