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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김영하라고 말을 하곤 했는데 정작 내가 호감을 가진 김영하의 작품은 대부분 단편들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였나 우연히 읽게 된(의외로 언니가 사서 역시나 책장에서 썩히고 있던) `오빠가 돌아왔다`를 읽고 속도감, 기발함, 괴기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백함에 빠져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로 좋아하는 작가 굳히기에 들어갔고 세번째로 읽었던 책이 김영하 작가의 대표대표대표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였다. 그때가 형신오빠를 사귀고 있었으니 스물한두 살이었겠다. 읽기 시작했고 당황했다. 굉장히 얇은 소설이고 좋아한다고 떠들어대던 작가의 대표작인데 재미가 없는거야. 아니 재미를 떠나서 뭐라는건가 싶은거야. 이해도 안되고 속도도 안나고 중간중간은 19금 등장으로 거부감까지 들었어. 그래서 어떤 내용이었는지 대충 어떤 분위기였는지 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가볍디 가벼운 일본 소설에 빠져 책 읽기를 중단했지.
스물한 살은 스물아홉 살이 되었고, 다시 한번 읽어보기로 했어.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정말 재밌게 순식간에 읽었네. 그리고 심지어 정말 김영하스럽고 김영하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이었구나 느끼기까지 했어. 나이가 들면서 올리브와 도라지, 양배추찜이 맛있어지듯 소설을 읽는 내 취향이라든 지 받아들이는 느낌이 달라졌겠구나 싶어. 예전엔 19금이라면 무조건 싫었어. 더럽고 습습하고 굳이 남의 것 구경하고 상상하고 싶지 않은 마음. 근데 이제는 즐긴다기보단 그러한 묘사나 설정이 반드시 필요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된 것 같아. 자극을 위해서가 아니고 단순 에피소드로도 아니고.. 등장인물 간의 교감이라든지 감정 변화라든 지 영향을 주는 게 어쩌면 섹스만한 게 없거든.
읽은 지 두달 정도 되었기 때문에 내용은 아주 간단히 이야기할 수 밖에 없어.
혼란스러운 사람들에게 자살을 권하고 인생 마감의 끝까지 케어해주는 남자가 주인공이야. 엄연한 직업이고 프로이며 고객들은 만족해. 그리고 그 고객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변태이거나 똘똘한 어른인데. 그 고객들의 이야기로 세개였나 네개 정도 챕터가 바껴.
기억나는 이야기는 행위예술을 하는 여자. 알몸으로 머리에 물감을 묻혀 흰 종이에 춤을 추며 그림을 그리는 그 여자. 난 행위예술을 예술이라 생각하지 않고 미친사람의 미친몸부림이거나 중2병 걸린 예술가의 자기합리화라고 느끼는 편이었는데 그 여자가 실존하지도 않을 뿐더러 책이기 때문에 그 모습과 작품을 볼 수도 없는데 그냥 읽으면서 아 이래서 행위 예.술이 되는거고 그들은 예.술.가가 되는구나 느꼈어. 혼이 담기고 감정이 담길 수 있겠구나 처음 느꼈네.
쓸 말이 없다 너무 오래 되었나봐. 적어도 내가 느낀 건 김영하는 역시 튀는 작가이고. 이 소설은 정말 튀는 소설이라는 것.
죽고싶을 수 있고 죽어도 괜찮고. 누군가는 그 죽음을 도와줄 수 있고. 개개인의 사정에 하나하나 껴들 수는 없고. 이러나 저러나 그들의 인생이고 그들만의 결정이고, 까놓고 죽든 살든 뭐 그리 이 세계에 큰 사건이냐.
파괴할 권리 있어 그런데 당사자게에나 파괴지 그들 외에게는 증발이지 않을까. 퐁 하고 사라지는. 여기 퐁 저기 퐁 퐁퐁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