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이민 전 이웃님이 선물해준 책이다. 난 맛있는 반찬은 먼저 집어먹고 새 옷은 바로 개시하지만 희안하게 읽고 싶은 책은 나중에 독서의 즐거움이 가장 필요한 때를 위해 아껴두는 책이다. 그래서 캐나다에 옮겨놓은 백여권의 책 중 가장 먼저 선택되는 것은 가장 관심 없는 책이라는 아이러니. 물론 그러다가 뜻 밖의 월척을 하는 경우도 무계획 도서 선정의 묘미!평생 읽는 희곡이 열 권 이하이니 특히 선호하는 장르는 아닌 것이 분명한데 지금까지 읽은 회곡은 전부 다 좋았다. 특히 시련을 읽으면서 앞으로는 일부러 희곡 카테고리 내에서 책을 구매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승전결과 말 그대로 극적인 요소 그리고 대부분 짧은 호흡의 대사로 이루어 진다는 것이 내 취향과 맞는 것 같다.아서 밀러는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처음 접했는데 읽는 내 몰입도가 엄청났고 그 여운이 꽤 길어 몇 차례 더 읽었고 예술의 전당에서 했던 연극도 찾아 봤었다. 그리고 이건 나의 두번 째 아서밀러 작품이고 앞으로 밀린 작품도 다 챙겨 읽고 싶다.시련은 1700대 미국 매사추세츠의 한 마을에서 실제 수많은 희생자를 만든 마녀사냥을 각색 재연한 극으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을 시작으로 번지는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읽는 내 참 남일 같지 않단 찝찝함이 극 전체를 감싸는 감정인 것 같다.엄격한 기독교 사회에서 어린 소녀들의 호기심과 장난으로 늦은 밤 벌어진 악마 숭배 의식. 마을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행동에 책임자와 법적 처벌이 필요한 상황에 겁 먹은 소녀들은 본인들이 실제 이 의식을 통해 악마를 경험했고 뉘우치며 하느님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며 온갖 이웃들을 아직 악마를 곁에 하고 있다며 밑도 끝도 없이 저격하기 시작한다.어떤 고급 정보든 원하는 대로 얻을 수 있고 합리적인 판단을 과학과 정재된 지성에 맡길 수 있는 요즘에도 어처구니 없는 결론 도출 상황이 벌어지는데 300년 전 보수적인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하니 그 충격적인 전개고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다. 법과 종교가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개인의 각기 다른 이해관계가 충돌하니 결론은 와장창 날 수 밖에. 다 깨지고 부숴진 잔해 위에서 슬퍼할 겨를도 없이 모두가 어리둥절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응. 다 잘 못 됐어.연극으로 보고 싶다. 답답하고 슬퍼서 눈물이 주륵주륵 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