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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 오스왈드 챔버스의 성령론 ㅣ 오스왈드 챔버스 시리즈 11
오스왈드 챔버스 지음, 스데반 황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부제가 오스왈드 챔버스의 ‘성령론’이라고 되어 있기에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진술 위주의 책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러한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책이었습니다. 오히려 이전에 읽었던 ‘주님의 나의 최고봉’이나 ‘산상수훈’과 같이 깊은 묵상에서 나온,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게 해 주는 저자 특유의 저술 방식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성령님에 대해 다룬 부분은 주로 1부에 국한되어 있었고, 2부는 주님의 능력과 그로 말미암은 승리에 대해, 그리고 3부는 주님의 제자로서의 순종하는 삶에 대해 묵상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성령론에 대해 다루고 있는 분량이 생각보다 적어서 조금은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분량이 적은 만큼 저자의 성령론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성령세례를 거듭남과 동일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라는 니고데모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것은 성령님을 선물로 받음으로 가능하다(20쪽).“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성령세례를 통해 거듭나게 되고, 중생의 씻음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과 연합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성령세례를 통한 개인적 체험의 결과는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53쪽).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바로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성령을 그 속에 모신 자들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주장과 더불어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펼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53쪽).”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령세례를 받으려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주님만 붙들어야 한다(53쪽).”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지금 이 시대는 성령의 세대이니 성령을 구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성령을 개인적으로 받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29쪽).
그런데 이러한 저자의 앞의 주장과 조금 상충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기도는 이미 거듭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로서는 저자의 이러한 주장들을 서로 조화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결론은 ‘간절한 기도를 통해 성령세례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거듭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결론에 따르면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라는 고백을 하는 것만으로는 거듭났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오늘날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 중에 간절한 기도를 통해 성령세례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거듭났다고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명목상의 기독교인일 뿐 거듭난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말이 됩니다.
따라서 그 모든 명목상의 기독교인들은 간절한 기도를 통해 성령세례를 받아야만 하고, 그래서 거듭나야만 하고, 예수님과 연합해야만 하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으로써 살아가기 위힌 성령님의 능력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라는 결론이 내려지게 됩니다.
사실 한 번 정도 읽어 본 것만으로 저자의 주장을 정확하게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자로서는 이렇게 정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저의 정리가 저자의 주장을 바르게 정리한 것이라고 할 때, 사영리와 같은 전도 방법을 통해 자신이 믿음의 결단을 했기 때문에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과연 이러한 저자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거부하고 반발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목회자들 중에도 이러한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이러한 주장은 현대 교회의 안일한 가르침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저자가 성령세례에 대해 어떤 체험적인 부분이나 신비스러운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자는 성령세례를 통해 얻는 체험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러한 체험은 영적 여정의 초기 단계에서 누리는 것으로써, 신앙이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가게 되면 그러한 체험을 중요시 하지 않게 되며, 오직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더 깊은 관심을 두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32쪽). 그런 점에서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성령세례가 오늘날의 신비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말하여지는 성령세례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소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할 때, 앞서 정리한 저자의 주장은 우리가 결코 가볍게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성령세례의 필요성은 결국 거듭남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며,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선택해야만 하는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저자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진실로 거듭났는가?’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돌아볼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해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세례에 대한 신비주의적인 주장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세례에 대한 바른 이해와 체험을 통해 신앙의 진보를 경험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만한 책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