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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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정의'라는 것에 대해 '철학'적으로 접근해 본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저 신앙인으로써 내가 섬기는 신이 정해 놓은 기준에 합치되게 살면 그것이 바로 '정의'롭게 사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정의'라는 주제에 대해 '철학'적인 고민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유익한 경험이었습니다.

저자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다루어져온 '정의'에 관한 철학적 담론을 역사적인 순서가 아니라  '행복, 자유, 미덕'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 따라 순서대로 소개해 나가면서 그 장, 단점을 꼼꼼하게 짚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이론에 관한 저자의 설명은 독자들로 하여금 '정의'에 관한 이론 중 그 어떤 이론도 하나로써는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결론에 가서 저자는 자신이 소개 해 온 세 가지 관점 중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한 가지 관점을 밝히고,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이전의 다양한 논의 속에서 드러난 각각의 이론들이 가지고 있는 단점들로 인해 저자의 주장은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저자가 자신의 논리를 풀어가는 데 있어 탁월하게 느껴졌던 점은, 어떤 예에 있어서 '정의'롭다고 여겨졌던 결론이, 다른 예에 있어서는 전혀 '정의'롭지 못한 결론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어떤 결론이 정의롭다는 주장을 도출하는데 사용된 근거가, 과연 그러한 결론을 도출하는 데에 '적합한' 근거인가를 고민하게 해 주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러한 저자의 방식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다양한 이론들의 정당성을 확인해 보는 데에 있어서 참으로 의미있는 수단이 되고 있었으며, 그런 점에서 '정의'에 관한 견해에서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다양한 견해에 있어서도 자신의 주장이 참으로 정당한가를 시험해 보는 데에 유용하게 사용해 볼 수 있는 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철학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녹슬어 있던 뇌를 청소하고 새롭게 운전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명쾌하게 정리된 논리들을 하나씩 짚어 가는 동안 아주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다양한 철학적 담론들을 접하면서 때로는 처음 접하는 입장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을, 때로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지만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책의 내용이 깊이 있는 만큼 번역의 질이 중요한데 나무랄 데 없이 깔끔했고, 내용 이해에도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그저 아쉬움 몇 가지를 지적해 본다면 첫째로, 옮긴이의 말을 책의 맨 뒤에 실어 놓았다는 점입니다. 옮긴이의 말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 이 책의 역자가 원서의 내용을 충실히 숙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런 점에서 책의 내용을 읽기에 앞서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었다면 책을 읽어 가면서 더 쉽고 즐겁게 읽어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째로,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에 비해 쉼표를 많이 아껴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가끔씩 문장을 어디에서 끊어 읽어야 하는지 순간적으로 혼동이 올 때가 있었습니다. 번역의 문제라기 보다는 쉼표의 부재로 인한 혼동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재판을 찍을 때에는 혼동이 될만한 문장에 쉼표를 많이 기입해서 문장의 의미를 더 분명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자 한 곳, 탈자 한 곳, 어색한 곳 한 곳이 발견되었습니다. 173쪽 맨 아래로부터 다섯 째 줄에 '필요해 의헤'는 '필요에 의해'로 고쳐야 합니다. 그리고, 331쪽 맨 위에서부터 여덟째 줄에 '형에 관한 를'에서 '를' 앞에 무슨 글자인지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마 '정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또, 306쪽 맨 위에서부터 네째 줄에 '정의는 좋은 삶을 단정하지 않고'는 '정의는 좋은 삶을 단정하지 말고'로 바꾸었으면 싶습니다. 약간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을 읽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정치적인 입장에서든, 사회적인 입장에서든, 경제적인 입장에서든, 세상에는 '정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읽고 고민해 보아야 할 책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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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의 아트 스피치 - 대한민국 말하기 교과서
김미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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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강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습니다. 강사라고 하면 대학에서 강의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지, 이처럼 여러 기업이나 단체에 불려가서 강의를 통해 사람들에게 도전과 희망을 주는 또 다른 종류의 강사가 있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민방위 훈련을 받으러 갔을 때 몇 몇 강사들을 통해 이러 저러한 강의를 들은 기억은 있지만, 그들은 직업적인 강사라기보다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로서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전문 지식을 가르쳐 주기 위해 온 것이었기에 그들의 강의를 통해 어떤 감동이나 도전을 받아본 기억은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전공 분야도 아닌 부분에 대해서 깊이 연구함으로써 오히려 그쪽 세계의 전문가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에게 소망을 주고, 도전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또한 저자가 자신의 강의 준비 방법에 대해 기록해 놓은 것을 보면서, 어떻게 그러한 일들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아무런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자가 강의 원고 하나를 준비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 거의 한 권의 책을 쓰는 것과 같은 노력에 방불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은 저에게 너무나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러한 준비라면 강사라는 이름이 결코 부끄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목회자로서 설교를 준비하는 데에 제가 기울이고 있는 노력의 부족함에 대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한국의 목회자들이 매 주마다 설교 원고를 들고 강단에 올라가는 횟수는 강사들의 강연 횟수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매 주일 예배로부터 주일 오후 예배, 수요 저녁 예배, 금요 저녁 예배, 그리고 매일 새벽마다 드리는 예배를 모두 합치면 거의 매주 10여회에 이르는 설교를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 번의 설교를 준비하는데 저자가 말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준비를 하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고의 강의를 위해 저자가 얼마나 공을 들이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적어도 지금의 모습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스피치 원고를 거의 다 외워 둔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설교 역시 그러한 수준에 이르도록 준비되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반성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예전에 어떤 집사님으로부터 음성의 변화가 거의 없는 단조로운 스피치 스타일 때문에 설교가 지루하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스피치 학원에 대해 알아 본 적이 있었는데, 엄청난 수강료에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 저자의 스피치 강의 역시 만만치 않은 수강료를 지불해야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상당히 위험한 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읽는 내내 저자에게 스피치를 꼭 배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자에게 직접 스피치를 배우지 않더라도,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익은 상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가 음대 출신으로써 음악 부호들을 스피치 원고에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소개해 놓은 ‘뮤직 스피치’라는 제목의 챕터는 그 중에서도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강의 원고에 음악 기호를 가지고 각각의 음절을 어떤 길이와 어떤 강세로 말할 것인지 표시해 두고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방법은 실제로 시도해 볼만한 유용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 전에 어떤 목사님이 설교 원고에 형광펜으로 다양한 표시를 해 놓고 그 표시에 따라 원고를 읽어가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때에는 별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만, 이 책을 읽다 보니 설교의 질을 높이려면 반드시 필요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대로 해 보려고 하니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저자로부터 그러한 방법들을 직접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마음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러나 콘텐츠를 구성하는 방법은 그러한 직접적인 지도 없이도 쉽게 따라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이미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설교 원고를 작성해 오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스피치를 준비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거나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는 분들에게도 이 방법은 매우 새롭고도 유용한 방법이 되리라 생각되었습니다.

스스로 말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든 스스로 말에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든 이 책을 읽는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언변의 소유자가 되리라고 믿어집니다. 물론 자신의 부단한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조건에 따를 경우에만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동일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조건으로 본다면, 이 책의 도움을 받고 안 받고 하는 것은 그 진보에 있어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 줄 것입니다. 그러한 진보를 원하는 분이라는 반드시 읽어 보아야 할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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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 오스왈드 챔버스의 성령론 오스왈드 챔버스 시리즈 11
오스왈드 챔버스 지음, 스데반 황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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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가 오스왈드 챔버스의 ‘성령론’이라고 되어 있기에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진술 위주의 책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러한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책이었습니다. 오히려 이전에 읽었던 ‘주님의 나의 최고봉’이나 ‘산상수훈’과 같이 깊은 묵상에서 나온,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게 해 주는 저자 특유의 저술 방식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성령님에 대해 다룬 부분은 주로 1부에 국한되어 있었고, 2부는 주님의 능력과 그로 말미암은 승리에 대해, 그리고 3부는 주님의 제자로서의 순종하는 삶에 대해 묵상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성령론에 대해 다루고 있는 분량이 생각보다 적어서 조금은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분량이 적은 만큼 저자의 성령론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성령세례를 거듭남과 동일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라는 니고데모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것은 성령님을 선물로 받음으로 가능하다(20쪽).“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성령세례를 통해 거듭나게 되고, 중생의 씻음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과 연합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성령세례를 통한 개인적 체험의 결과는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53쪽).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바로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성령을 그 속에 모신 자들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주장과 더불어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펼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53쪽).”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령세례를 받으려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주님만 붙들어야 한다(53쪽).”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지금 이 시대는 성령의 세대이니 성령을 구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성령을 개인적으로 받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29쪽).

그런데 이러한 저자의 앞의 주장과 조금 상충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기도는 이미 거듭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로서는 저자의 이러한 주장들을 서로 조화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결론은 ‘간절한 기도를 통해 성령세례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거듭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결론에 따르면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라는 고백을 하는 것만으로는 거듭났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오늘날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 중에 간절한 기도를 통해 성령세례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거듭났다고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명목상의 기독교인일 뿐 거듭난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말이 됩니다.

따라서 그 모든 명목상의 기독교인들은 간절한 기도를 통해 성령세례를 받아야만 하고, 그래서 거듭나야만 하고, 예수님과 연합해야만 하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으로써 살아가기 위힌 성령님의 능력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라는 결론이 내려지게 됩니다.

사실 한 번 정도 읽어 본 것만으로 저자의 주장을 정확하게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자로서는 이렇게 정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저의 정리가 저자의 주장을 바르게 정리한 것이라고 할 때, 사영리와 같은 전도 방법을 통해 자신이 믿음의 결단을 했기 때문에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과연 이러한 저자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거부하고 반발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목회자들 중에도 이러한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이러한 주장은 현대 교회의 안일한 가르침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저자가 성령세례에 대해 어떤 체험적인 부분이나 신비스러운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자는 성령세례를 통해 얻는 체험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러한 체험은 영적 여정의 초기 단계에서 누리는 것으로써, 신앙이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가게 되면 그러한 체험을 중요시 하지 않게 되며, 오직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더 깊은 관심을 두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32쪽). 그런 점에서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성령세례가 오늘날의 신비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말하여지는 성령세례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소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할 때, 앞서 정리한 저자의 주장은 우리가 결코 가볍게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성령세례의 필요성은 결국 거듭남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며,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선택해야만 하는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저자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진실로 거듭났는가?’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돌아볼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해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세례에 대한 신비주의적인 주장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세례에 대한 바른 이해와 체험을 통해 신앙의 진보를 경험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만한 책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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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내 아이 마음 읽기
홍민기 지음 / 두란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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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님이라면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내용들을 간략하게 잘 설명해 주고 있는 책이었습니다. 크지도 않고 두껍지도 않아 금세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청소년 사역 전문가로서의 경험이 제대로 녹아있는 책이었습니다. 잦은 인용문이 조금 거슬렸는데, 불필요하거나 의미 없는 내용을 저자가 억지로 끌어다 넣었을 리가 없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 또한 열심히 읽었습니다. 

사춘기 청소년들의 문제 행동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었고, 그에 대한 해결책 역시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실천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언뜻 보기에도 그러한 대답 외에 다른 대답이 있겠나 싶을 정도로 설득력 있는 주장들이었습니다.

사춘기 청소년에 관한 깊이 있는 책들을 읽어 보신 분들에게는 조금은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을 지 모르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분들에게는 청소년을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책이며, 특히 과거에 쓰여진 책들과 달리 요즘 청소년들만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어볼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을 통해 부모로써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내 자녀를 살피며, 그들과 더불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원론적인 결론에 더 깊은 공감을 가지고 다가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이 책을 통해 자녀들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자녀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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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으로 승부하라 - 기도의 성층권으로 가는 21일 무릎기도 무릎으로 승부하라
김은호 지음 / 두란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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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많은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습니다. 저자가 오륜교회를 개척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기도를 통해 경험했던 일들을 조금 더 풍성하게 소개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생각했던 것에 비애 그 이야기가 적게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성경을 근거로 해서 저자가 소개해 주고 있는 기도에 관한 내용들도 이미 다른 책들을 통해 여러 차례 접해 본 바 있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자가 기도의 목적을 하나님과의 친밀감에 있다고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기도의 목적이 문제해결이나 인생성공에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한 장에 이르는 분량을 할애해서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 내용을 그대로 옮겨 소개하고 있었던 것은 무척이나 실망스러운 부분이었습니다. 인용이라고 보기에는 과하다 생각될 정도로 그 책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와 저자의 말로 바꾸어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신선하게 느껴졌던 내용은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라는 말씀에 대해 저자가 설명해 놓은 부분이었습니다. 저자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게 된 계기가 바로 므두셀라를 낳은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아마도 그 아이를 낳고서 대홍수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을 들은 것이 아닐까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보면서 더 거룩하게 살고자 노력했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라 생각되었고 도전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므두셀라’라는 말이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된 이름이라고 설명하면서, ‘그 아이가 죽으면 홍수를 보내어 세상을 심판하겠다.’는 메시지가 그 이름 안에 담겨 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통해 불필요한 실망을 던져 주었습니다. 저자의 주장이 참으로 그런가 하여 성경 사전을 찾아보니 ‘므두셀라’라는 이름은 ‘창의 사람’, 또는 ‘창을 던지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을 뿐 ‘하나님의 심판’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명성에 어울리는 탁월한 글솜씨가 돋보이는 책이었고, 성도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주제와 적절한 예화가 돋보이는 책이었지만,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성공주의적인 냄새를 짙게 풍기고 있음으로 인해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 자신의 개인적인 신앙 성향과 맞지 않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인생에 찾아온 심한 고난으로 말미암아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만큼 절박한 분들에게는 이 책이 많은 위로와 격려를 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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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이엄마 2010-09-26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이동원목사님의 설교에서 들은 건데요..'창을 던지는 사람'이 마을의 파수꾼 같은 존재를 말한다고 해요. 창을 들고 마을을 지키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죽으면 그 마을의 안전도 끝이라는 거죠. 그래서 므두셀라가 죽으면 세상의 심판(끝)이 온다는 것이고요..므두셀라가 최장수한 사람이라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께서 인내하고 기다리셨다는 거라고 하시네요. 저도 책에서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되어있지 않은 게 아쉬웠어요.

미라남편 2010-09-26 17:10   좋아요 0 | URL
이 부분에 대한 궁금증으로 인해 몇몇 분들께 여쭈어 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답변을 해 주시더군요. 참고가 되셨으면 합니다.

히브리 단어를 보면 [무트 - 죽음 & 셀라 - 보낸다]라는 의미가 있는데, '무드셀라'라는 이름에 이 두가지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바이블웍스 열어서 '무드셀라'라는 이름 안에 들어있는 단어를 나눠서 검색해보니까 실제로 두 가지 의미가 성경에서 '죽음'(창7:22 등등...)과 '보낸다'(창8:10등등...)로 쓰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름 안에 들어가있는 단어들을 가지고 어떤 인물에 대한 충분한 설명의 근거를 삼을 수 있느냐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 같네요~ (황준철님의 설명)

므두셀라는 문자적으로 '사람'의 뜻을 가진 '마트(히브리어)'와 '창, 무기'라는 뜻을 가진 '쉘라흐(히브리어)'의 합성어로, '무기의 사람(무기를 든 사람)' 또는 '창의 사람(창을 던지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 어원을 따라 살펴보면 '죽다, 죽이다'라는 뜻의 '무트(히브리어)'와 '보내다. 내어쫓다'라는 뜻의 '샬라흐(히브리어)'의 합성어로, '그가 죽으면 (끝이) 보내진다'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당시 설화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각 동네마다 창을 들고 수호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죽으면 마음이 끝장났기 때문에 그러한 뜻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 '창세기의 족보'를 참고 했습니다. ^^ (박문수님의 설명)

므두셀라를 '죽으면 보내리라'로 해석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헨리모리스(Henry Morrism,The Genesis Record,p160)이구, 성경이름에 대한 사전(Cornwall and Smith,Exhaustive Dictionary of Bible Names)에서도 이를 지지한답니다. 그리고 주석으로는 크루던스 성경주석, 알프레드 존스의 구약시대 이름이 있으며 워런 위어스비 목사의 구약 핵심성경연구에서도이러한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고 하네요.. (유재량님의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