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폰의 비밀 중학년을 위한 한뼘도서관 21
장지혜 지음, 이민혜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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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표지그림 때문에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습니다. 대충 그려놓은 만화 같은 표지 때문에 만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만화는 아니더군요. 하지만 내용은 만화만큼이나 재미있었습니다. 주인공 민이는 우연히 길에서 핸드폰 하나를 줍게 됩니다. 그런데 그 핸드폰은 소원을 문자로 기입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신기한 핸드폰이었습니다. 그 핸드폰의 비밀을 알게 된 민이는 그 핸드폰으로 자기를 괴롭히는 태수 형을 혼내주는데, 나중에 태수 형에게 그 핸드폰을 빼앗기게 되고, 민이와 마찬가지로 그 핸드폰의 비밀을 알게 된 태수 형은 그 핸드폰을 이용해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핸드폰을 되찾은 민이는 그 핸드폰을 이용해 세상을 정상으로 돌려 놓습니다. 나중에 그 핸드폰이 외계에서 보낸 물건임이 밝혀지는데, 외계인들이 지구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만든 도구라는 이야기가 조금은 생뚱맞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는 무난하게 느껴졌습니다.

민이나 태수가 그 핸드폰에 자신의 소원을 문자로 기입하면 딩동하는 소리와 함께 한자로 된 사자성어가 답변으로 도착하는데, 그 사자성어를 보면 과연 그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소원을 이루어 주겠다는 것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독자의 그러한 궁금증에 대해 잘 알고 있기라도 하듯이 그 사자성어의 의미를 가르쳐 주는 내용이 곧바로 이어집니다. 책을 읽을 때는 몰랐는데, 부록으로 나온 '꼭 알아야 할 사자성어 100'이라는 책을 보니 이 책에 나온 사자성어가 100개나 되었더군요. 그다지 길지도 않은 동화에 사자성어를 100개나 포함시키려면 작가님도 꽤나 고생을 하셨겠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인 딸 아이가 읽으면서 너무 재미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사자성어는 얼마나 익혔는지 궁금했습니다. 쓰는 것까지 기대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여러 차례 읽어 보는 것만으로도 읽을 수는 있게 될 것 같은데, 부모님께서 부록을 이용해 제대로 가르쳐 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교육적인 측면과 재미라는 측면이 동시에 충족되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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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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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옛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 자신을 돌아볼 때 상당히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조금 더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살자'는 주장에 대해 대체로 호의적인 느낌을 가지고 반응해 왔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살자'는 주장이 지나치게 강조될 때에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본 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러던 중에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나친 긍정주의'가 오늘날 얼마나 끔찍한 폐해를 낳고 있는지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유방암에 걸려 투병 생활을 하는 동안 경험했던 한 가지 사건을 통해 이 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어떤 웹사이트의 게시판에 유방암 치료를 받는 동안 느꼈던 것들, 즉 '화학요법으로 받은 심신 약화, 말 많은 보험회사들, 환경적 발암물질에 대한 간략한 불평'과 함께 '감상적인 핑크 리본'에 대한 불만을 써 놓았더니, 이 글에 많은 사람들이 덧글을 달았는데, 그 댓글의 내용들이 거의 한결같이 '왜 그렇게 부정적이냐'는 비판이었다는 것입니다. 오직 한 사람만이 저자의 글에 공감하는 덧글을 올려 주었는데, 그 사람의 게시글을 찾아 보니 그 게시글에도 자신의 게시글에서와 같은 야유와 비난의 덧글이 붙어있었다고 하더군요. 이러한 충격적인 경험을 통해 저자는 '지나친 긍정주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영향으로 인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저자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암에서 치유받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또 그러한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긍정적인 생각이 암 치유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나친 긍정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긍정적인 생각이 암 치유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믿고 있으며, 암에서 치유되지 못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생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부정적인 생각을 토로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리석은 사람들이라 평가하며, 그들의 말로 인해 자신들까지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될 것을 두려워 하고 있는 나머지, 그 사람들을 비난하고 조롱하며 거리를 두려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지나친 긍정주의'가 데일 카네기의 '카네기 인간관계론'이라는 책에서부터 시작하여 '시크릿'이라는 책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데일 카네기의 '카네기 인간관계론'에서는 '긍정적인 태도를 '연기'함으로써 인간관계를 개선하면 모든 일에 성공하게 된다'고 조언하는 정도에 머물렀지만, '시크릿'에서는 '긍정적인 태도 자체에 강력한 힘이 있다'고 가르치는 데에까지 나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르침이 오늘날의 코칭 업계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메시지가 되었는지, 그리고 이러한 가르침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면서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이론적 설명이 시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지나친 긍정주의가 미국에 정착한 청교도들의 사상적 바탕이었던 칼뱅주의의 병적인 자기반성에 반발해 발생된 '신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신사상에는 에머슨의 초절주의, 스베덴보리 같은 유럽의 신비조의 조류에 힌두교의 흔적도 섞여 있었는데, 기본적인 틀은 칼뱅주의를 비판하는 것이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사상의 영향으로 탄생된 것이 바로 크리스챤 사이언스라는 새로운 종파였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놀랍게 생각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공감이 가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칼뱅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신사상에도 칼뱅주의와 똑같은 폐해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철저한 자기반성을 강압적으로 요구한다는 점으로써, 칼뱅주의는 죄에 대한 자기 반성을 강요한다면, 신사상은 부정적인 감정(죄책감)에 대한 자기 반성을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신사상의 '긍정적 사고방식'을 대중화시킨 인물로 나폴레온 힐과 노먼 빈센트 필을 들고 있습니다. 특히 노먼 빈센트 필의 '적극적인 사고방식'이라는 책이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저자는 이러한 책들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긍적적인 사고방식'이 선택이 아닌 의무의 수준에까지 이르렀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경제와 종교와 학문에 미친 영향을 차례로 다루어 가면서 그 폐단이 얼마나 심각한가 하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경제 분야에 있어서는 '동기유발산업'이 기업에 의해 어떻게 악용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이를 통해 인간의 이기적이고 악한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기업이 동기유발산업을 가장 필요로 하게 된 것은 바로 구조조정 때문인데, 구조조정을 했을 때 해고자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분노와 반발, 또한 비해고자들의 기업에 대한 불만과 자신의 위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해 주는데 동기유발산업만큼 유용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해고자들에게는 '해고는 나에게 주어진 또 다른 기회'라고 믿게 함으로써 기업에 대한 분노와 반발을 방지하고, 비해고자들에게는 '해고되지 않으려면 긍정적인 태도로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그리고 '해고되는 것은 회사의 책임이 아니라 나 자신의 책임'이라고 믿게 함으로써, 기업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 분야에 있어서는 '긍정 신학'이 가지고 있는 폐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질병이 생긴 것도, 가난이 생긴 것도 모두 부정적인 태도 때문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긍정의 힘'이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조엘 오스틴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소개하고 있었고, 또한 기업을 닮아가는 초대형교회들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학문 분야에 있어서는 '긍정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어떤 과정에 의해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그것이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긍정 심리학 전도사라 할 수 있는 마틴 셀레그만과의 인터뷰 과정에 대한 저자의 기록은 상당히 치밀한 분석이 돋보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긍정심리학'이 순수학문으로서보다는 '자기계발사업'의 이론적 기초를 마련해 주는 실용학문으로 옮겨 가고 있다는 지적에 공감이 갔습니다.

저자가 긍정주의의 폐해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로 제시하고 있었던 것은, 이 세 가지 분야 중에서 경제적인 분야에서 벌어진 2008년 말에 시작된 금융위기였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전망에 대해 의도적으로 눈을 감고 장미빛 미래만을 바라보다가 수렁에 빠져들었는데, 그것 또한 긍정주의의 강력한 영향이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양한 사례들을 보니 '지나친 긍정주의'가 세상에 미치고 있는 부정적인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이나 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생각과 태도가 자신이 처해있는 환경까지 쉽게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곤란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신념 때문에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생각들은 다 몰아내 버려야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지, 또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 있는지에 대해 또 이 책은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었습니다. 긍정주의를 통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자기계발강사들이나 코치들은 '긍정주의'에 대해, 그리고 '긍정주의가 자신에게 가져다 준 유익'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동일한 유익을 가져다 주고 있는지, 그리고 또 그럴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지나친 긍정주의'를 강조하는 책들이 너무나 많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그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헤쳐서 비판하고 있는 이 책의 출간이 반갑게 느껴집니다. 특히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써 '긍정 신학'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저자의 수고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조엘 오스틴과 그 아내의 모습, 특히 그들이 예배 중에 보여준 실망스러운 태도는 과연 그들이 기독교인인가 하는 것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습니다. 더불어 그들의 주장이 신사상의 영향에 깊이 물들어 있음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조엘 오스틴의 주장에 의하면 하나님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단지 지지자의 역할, 또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는 존재 밖에 되지 않으며, 만약 조엘 오스틴의 주장대로라면 우리야말로 전능한 존재가 아닌가 라고 반문하고 있었는데, 놀라울 정도로 예리한 지적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내용에 따르면 유니티 교단의 어떤 설교자는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지 않았다고 하나님을 호되게 꾸짖었다고까지 말했다는데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또한 저자는 기업형 초대형 교회가 '구도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기독교의 핵심 교리 대신 긍정적 사고를 설교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한편, 초대형 교회의 목회자들이 세속적인 경영 전문가들이나 컨설턴트에 의지하여 교회를 성장시키고자 하는 행태 역시 꼬집고 있습니다.

저자는 '긍정 신학'에 대한 논의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교회든, 회사든, 쇼핑몰이든) 어디로 가든 들리는 메시지는 똑같다. 당신은 멋진 집과 자동차는 물론 쇼핑몰에 있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당신에게 그런 힘이 있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숨죽인 목소리로 경고하는 어두운 메시지가 놓여 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한다면,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용기를 잃거나 패배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 책임이다. 긍정신학은 아름다움과 초월, 자비가 없는 세계를 완성하고 승인했다." 맨 마지막 구절에서 '자비'가 없다는 말에 깊은 공감을 느꼈습니다.

과거 얼마나 많은 기독교 치유사역자들이 환자를 위해 기도해 준다면서, 자신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차도가 나타나지 않을 때마다 "당신의 믿음이 적어서 그렇다"는 말로 환자들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모릅니다. "믿음이 있으면 낫지 못할 병이 없다"는 잘못된 신념이 문제였다고 하겠습니다. 긍정주의에서 말하는 '긍정에 대한 신념' 역시 이와 같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실패자들이 실패한 것은 그들이 긍정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실패는 오직 그들의 책임인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한 것도 고통스러운데 그 모든 책임을 혼자 걸머지라 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합니다. 저자의 말처럼 긍정주의에는 자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부해야만 하는 악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편적인 수준의 긍정적인 생각과 태도까지 악하다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 균형점을 찾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균형점을 찾는 데에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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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만 - 예수님을 증거하는 권능의 삶 김길 목사의 제자도 시리즈 3
김길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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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모든 페이지에 표시를 해 가면서 읽었습니다. 성령충만에 관한 성경적이고도 균형잡힌 교훈들을 계속해서 만날 수 있었고, 도전을 받았고,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성령충만의 결과를 '인격적인 변화'와 '권능있는 복음증거'로 제시하고 있었는데 매우 정확한 지적이라 생각되었습니. "진정한 성령의 역사는 인격의 변화를 가져오므로 인격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역사는 잘 분별하여야 한다(14쪽)."는 말씀이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을 효과적으로 증거하기 위해서다(16쪽). 계속해서 성령충만한 삶을 살고 싶다면 계속해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 예수님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21쪽)."는 말씀이 바로 성령충만에 관한 두 가지 중요한 측면을 잘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권능을 구하지 않는 사람은 복음 증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38쪽)."는 말씀을 통해서는 위로와 격려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는 더 이상 은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의 실체가 이 말씀 가운데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신자들을 전도하는 데에는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으면서, 교회 안에서 이미 신앙 생활 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교리를 주입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정확한 지적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저는 때때로 그들에게서 기성 교인들만을 대상으로 전도하는 다른 이단들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만일 저자의 이러한 표현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자신이 과연 불신자들을 전도하는 데에 대해 얼마나 커다란 부담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또 그 일에 얼마나 헌신적으로 참여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동거리에서 교인들과 함께 예배할 때 교인들의 쑥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정도 방해를 즐기지 못한다면 제자가 아니다. 누가 핍박하는 것도 아닌데 지나가는 사람들 눈치나 보면서 마음이 위축되면 무엇을 하겠는가(25쪽)?"라고 말해 주었다는 말씀을 통해서는 제자로서 가져야 할 담대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또 "그간의 경험을 통해 메시지가 진정으로 각성을 일으키려면 나의 삶이 각성되어 있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43쪽)."는 말씀을 통해서는 설교자로서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 안에는 자신의 깊은 죄까지도 나누고 같이 기도할 수 있는 연결과 회복된 후에도 자신의 죄를 감추지 않고 고백할 수 있는 투명함이 필요하다(198쪽). 세상이 돈으로 움직인다면 교회는 은혜와 성령의 역사로 움직인다(187쪽)."는 말씀을 통해서는 건강한 교회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생각해 볼 만한 수많은 교훈들을 통해 귀한 도전을 받았습니다. "은사가 나타나도 분열하면 어린아이다(52쪽).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은 권능이 나타난다(66쪽). 문제가 있는 권위자 밑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정말 감당하기 힘든 사람들,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배워야 제대로 훈련받았다고 할 수 있다(194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을 찾지 말고, 문제를 해결해 줄 공동체를 찾지 말고, 내가 속한 교회를 사랑하고 성령 안에서 연결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회복은 자연스레 일어난다(199쪽)."와 같은 말씀들이 특별히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특히 마지막 말씀에서 '어떤 집회나 세미나를 통해서가 아니라 내가 몸 담고 있는 교회를 통해 은혜를 공급받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앞의 말씀에서 '영적으로 성숙하는 데에 있어서 지도자의 탁월한 가르침보다 지도자의 권위에 순종하는 훈련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저 성령충만에 관한 이론적인 나열이 아니라 삶과 사역을 통해 경험한 내용들을 성경말씀에 근거해 소개해 주고 있었기 때문에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었고, 많은 도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제 자신에 대해 반성해야 할 부분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는데, 그저 반성으로만 끝나지 않았으면 싶습니다. 성령충만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 특히 성령론에 관한 딱딱한 이론서를 통해서는 결코 만족을 얻을 수 없었던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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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관한 불변의 진리 - 조쉬 맥도웰의
조쉬 맥도웰 & 션 맥도웰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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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들었을 때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 600페이지에 이르는 두툼한 두께, 겉표지를 벗기면 나타나는 갈색의 하드커버, 그리고 '불변의 진리'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장중함이 이 책이 어떤 종류의 책인지를 대번에 가르쳐 줍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은 결코 쉽게 읽을 수는 없지만, 상당히 중요하고 의미있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 책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읽고 이해하는데 수준 높은 신학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평소에 읽어 왔던 책들보다 조금은 이론적이라고 느껴지는 내용과 약간의 부담스러운 분량이 두려움을 줄 뿐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한 권 쯤은 소장하고 있어야만 하고, 자녀들의 나이가 고등학생 정도에 이르렀다면 반드시 읽어 보도록 권유해 주어야 할 만한 책입니다. (중학생이라면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고등학생 정도라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만한 수준입니다.)

 

이 책에 담겨져 있는 내용들은 '하나님에 관한 불변의 진리'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저로서는 '하나님에 관한'이라는 말이 적절하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저는 이 말이 앞에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이 책이 조직신학의 '신론'에 해당하는 내용들만을 다루고 있는 책일 것이라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그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진리'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관한' 이라는 말보다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이라는 말을 붙이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원제에서도 '하나님에 관한'이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원제는 그저 'The Unshakable Truth'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또는 '확고부동한' '진리'라는 의미입니다.

 

참으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흔들림없는, 확고부동한, 불변의 '진리'들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진리를 모두 세 가지 범주로 구분해 놓았습니다. '창조, 성육신, 재창조'가 바로 그것입니다. (저로서는 '창조와 타락, 구속, 회복'이라는 제목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세 가지 범주 밑으로 모두 12가지 진리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 12가지 진리들은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범죄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 그리스도께서 인간들을 대속하셨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의롭게 된 자들은 하나님을 닮아간다(또는 닮아가야 한다.). 그리스도는 육체적으로 부활하셨다. 성령님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세상 나라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존재한다. 교회는 살아있는 유기체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책에 기록되어 있는 12가지 진리의 제목은 제가 정리한 앞의 문장들과 다릅니다. 책에 기록된 12가지 진리의 제목은 몇 가지 제목을 제외하고는 문장이 아니라 단어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의 제목만 보아서는 그 내용이 무엇인지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책을 구입하셔서 읽게 되면 각각의 진리에 해당하는 제목을 개인적으로 다시 정리해 보시는 것이 내용을 기억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12가지 진리 중에서 앞의 세 가지(진리1,2,3)는 '창조'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리고 그 다음 네 가지(진리4,5,6,7)는 '성육신'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리고 나머지 다섯 가지(8,9,10,11,12)는 '재창조'에 해당하는 것으로 분류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진리7(변화된 삶)은 '성육신'의 범주에도 포함될 수 있지만,  '재창조'의 범주에 포함될 수도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리고 이 12가지의 진리 하나 하나를 각각 네 개의 장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네 개의 장에 있어, 첫 번째 장에서는 그 진리가 무엇을 의미하는 내용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고, 두 번째 장에서는 그 진리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는지, 믿을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고, 세 번째 장에서는 그 진리가 우리 인간들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고, 네 번째 장에서는 그 진리를 어떻게 우리의 삶과 연결시켜 실제로 살아낼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다루어 주고 있는 이 열 두 개의 진리가 '니케아 신조'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을 더 신뢰할 만한 책이 되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실제로 '니케아 신조'가 책의 내용 중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사도신경의 내용과 거의 비슷한 내용이었습니다. 책의 골격이 이 믿을만한 신조에 의해 잡혀졌다고 생각하니 책에 대한 신뢰가 더 커지더군요. 내용 전개도 무난하고 지루하지 않게 잘 짜여져 있었습니다. 저자가 둘이다 보니 저자 중의 한 사람이 자기의 경험을 예로 들어 놓았을 경우에는 그 말이 누가 한 말인지를 의식하면서 읽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기는 했지만, 덕분에 이러한 종류의 책이 가져다 주는 단조로움과 지루함을 피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돋보였던 부분은 아무래도 변증과 관련된 내용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각 진리를 소개하는 네 개의 장 중에서 두 번째 장에는 언제나 변증과 관련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각각의 진리들을 믿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다양한 근거들이 제시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변증의 내용 가운데에서 '변화된 삶(진리7)'에 관한 변증의 내용은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극적인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의 간증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다양한 사람들이 경험한 놀라운 변화에 대한 간증을 읽으면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이러한 극적인 변화가 나 자신의 경우를 비롯해서 왜 이렇게 드물게 나타나는지에 대한 안타까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는 대부분 논리적인 철학적인 변증 방식이었는데, 탁월한 통찰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았습니다.

 

각 진리가 우리의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그리고 그 진리를 어떻게 삶으로 살아낼 것인지에 대한 저자들의 통찰력도 상당히 돋보이는 부분이었습니다. 부활절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진리8)'에 대한 내용을 특별히 눈여겨 보았는데, 이 진리에 대한 세 번째 장에서 저자는 부활이라는 진리가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사실에 대해 지적하고 있었고, 네 번째 장에서는 천국(부활 후의 영원한 삶)에 마음의 중심을 두고 살아가는 것으로 이 진리를 살아내라고 권면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세 번째 장의 내용이야 누구라도 쉽게 이끌어 낼 수 있는 적용이라고 생각되었지만, 네 번째 장의 내용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깊은 묵상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네 번째 장에서 저자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위의 것을 찾으라고 권면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영적인 눈을 고정하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부활을 다루면서, 내세의 소망 뿐만 아니라, 그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함께 말해 주고 있었던 것이 제게는 의미있게 느껴졌습니다.

 

목회자로서 이 책에 소개 된 각각의 진리를 매 주마다 한편의 설교로 성도들에게 소개해 주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도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진리들인데 혹시라도 지금까지 소홀하게 다루어 오지 않았는가 하는 것도 점검하고, 성도들에게도 큰 유익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리의 근거가 되는 성경 구절들도 모두 제시되어 있겠다, 논리적인 믿음의 근거도 충분하게 제시되어 있겠다, 거기에다 삶의 적용점까지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으니 설교로 재구성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목적이 이끄는 삶 40일 세미나'처럼 '불변의 진리 40일 세미나'를 만들어 운영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두란노에서 직접 기획해서 추진해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책의 내용이 충실하게 느껴졌습니다. 책의 맨 마지막에는 유대교의 세 절기를 기초로 하는 세 번의 축제 시나리오도 제시되어 있었는데, 이 또한 40일 세미나를 운영하는 데에 포함시켜 볼 만한 행사로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지 않은 시일 내에 교회에서 한 번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좋은 결과 있으면 다른 분들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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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나에게 말을 걸다 - 두란노 30주년 문학상 공모 우수 당선작
기민석 지음 / 두란노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수요예배 시간과 새벽예배 시간에 예언서를 본문으로 설교하고 있기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된 책입니다. 두란노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로 인해 과연 얼마나 괜찮은 수준의 책인가 라는 궁금증도 없지 않았습니다. 읽어 가면서 그렇게 뛰어난 글솜씨는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수님들 특유의 지루하고 딱딱한 글도 아니었습니다. 특별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미없거나 건조한 스타일도 아닌, 평균적인 수준의 무난한 글솜씨라 느꼈습니다.

그러나 책에 담겨 있는 내용은 상당히 좋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또한 그들에게 있어서 예언이란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예언자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상당히 넓혀 주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예언'이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예언'과는 달리 '율법에 대한 조명'을 의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유대인들의 구약성경 분류 방식과 연결해서 설명해 주었던 부분이 유익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예언자들의 모습과 오늘날의 무속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한 객관적이면서도 공정한 비교 역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예언자들과 예언의 의미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 뒤에는 성경의 예언서를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개관해 주고 있었는데, 자잘한 가지들은 쳐내고 굵은 줄기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어 전체적인 맥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학개, 스가랴, 다니엘의 순서로 소개되고 있는 가운데 특별히 주목할만했던 것은 이사야서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사실 보수적인 교단에서는 이러한 구분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록 시기가 아니라 예언의 대상이 되는 시기를 근거로 분류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부감이 크지는 않았습니다. 각각의 예언서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그 예언을 선포한 예언자들의 특징과 함께 잘 설명해 주고 있었던 점도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것은 포로기 이후에 예언자들 사이에도 두 가지 흐름이 있어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해서 제사를 중시하고 이방인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지지하던 사람들(학개, 스가랴, 에스라, 느헤미야 등)과 성전보다는 거룩한 삶을 중시하고 이방인들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를 지지하던 사람들(이사야)이라는 서로 상반된 입장이 성경 안에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와 비슷한 예로 신명기적 역사관과 역대기적 역사관의 서로 상반되는 주장을 들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처럼 성경이 우리에게 두 가지 목소리 모두를 들려 주고 있는 것은, 역사의 발전 속에서 벌어진 어떠한 사건이나 어떤 이념적 행위도 '옳다' 혹은 '옳지 않다'로 단순히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일원적 세계가 아닌 다원적 세계를 복합적으로 제시하여, 어느 특정 이념이나 신학만을 특권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로서는 저자의 이러한 설명이 성경 이해에 관한 중요한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에게는 저자의 이러한 주장이 불편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가 몸담고 있던 대학으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도 어쩌면 저자의 이러한(어느 한 쪽 편을 들기보다는 균형을 잡으려 하는) 태도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책의 내용을 보면 강의 실력도 다른 교수들에 비해 뒤뒤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데, 학생들도 원하고 총회에서도 재임용을 권하고 있는 실력있는 교수를 왜 학교에서 거부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그 대학에는 구약 교수도 많지 않은 상황이라고 하니 정치적인 측면이 개입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더군요. 저로서는 이 책과 함께 저자의 어려운 사정이 널리 알려져 그 문제가 잘 해결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성경을 읽으며 막연히 어렵다거나 두렵다는 마음 때문에 예언서를 회피해 온 분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예언서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언서의 큰 줄기를 잡는데 상당히 유용하고도 유익한 책입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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