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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정의사회의 조건 - 정의·도덕·생명윤리·자유주의·민주주의, 그의 모든 철학을 한 권으로 만나다
고바야시 마사야 지음, 홍성민.양혜윤 옮김, 김봉진 감수 / 황금물고기 / 2011년 6월
평점 :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오랜만에 느껴 본 지적인 만족감으로 인해 마이클 샌델 교수의 다른 저작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던 차에 샌델 교수의 주요 저서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이 책을 만나게 되어서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책에는 제가 읽어 보았던 '정의란 무엇인가'를 비롯해서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는 '왜 도덕인가(2010)'와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2010)', 그리고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다른 두 권의 책(한국어 직역 제목: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1982), 민주정에 대한 불만(1996))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자가 일본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성격이 원래 꼼꼼해서 그런지 각 책을 소개함에 있어서 원서를 장 별로 한 장 한 장 요약해서 소개하고 있는 것이 마치 원서의 요약본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더군요. 게다가 저자의 친절한 설명까지 더해져 있어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장에서 다루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는 '하버드 강의'의 내용과 함께 다루고 있어서 더욱 풍성한 내용으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한국어로 번역되었음에도 아직 읽어 보지 못한 책들과,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책들까지 요약 정리된 형태로 읽어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고마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한 아쉬움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정의란 무엇인가'를 이미 읽어 보았기 때문에 1장의 내용을 읽으면서 과거에 읽었던 책의 내용과 대조해 가면서 심도 있게 살펴보았는데 두 책의 용어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이 발견되더군요. 영어에서 한국어로 번역한 용어와, 영어에서 일본어를 거쳐 한국어로 번역한 용어가 서로 다른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생소한 일본식 표현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아서 읽는 데에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대표적인 용어가 '격차원리'이라고 번역된 용어인데,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는 이 용어를 '차등원칙'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로서는 '격차원리'라는 용어에 비해 '차등원칙'이라는 말이 더 적절한 번역으로 느껴집니다. 아마 이 책의 번역자는 일본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단어를 그대로 직역한 것 같은데, 만약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어 보았다면 아마 '차등원칙'으로 번역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한 '도덕적으로 자의적'이라는 표현도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는 '자의적'이라는 용어 대신에 '임의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저로서는 '우연'이라는 측면을 강조하는데에 있어서 '자의적'이라는 용어보다는 '임의적'이라는 용어가 훨씬 더 정확한 번역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무지의 장막'이라고 번역한 것을, 본서에서는 '무지의 베일'로 번역하고 있었는데, 이것도 읽어 가다 보니 '베일'이라는 용어보다는 '장막'이라는 용어가 더 낫게 느껴지더군요.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게 번역된 부분도 없지 않았는데, 81쪽의 "롤스의 격차원리에 대해 원초상태에서 계약할 때에 사람들이 도박을 하듯 격차원리를 선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라는 문장이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샌델은 사람들이 막연한 승리를 기대하면서 도박에 뛰어드는 것처럼, 막연한 상대적 이익을 위해 차등원리를 거부하는 모험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위에서 지적한 문장은 그러한 의미를 충분히 전달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저자의 성향인지 아니면 역자의 성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용된 내용을 소개하는 문장에서 작은 따옴표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어서 지적해 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책의 내용은 참 좋은데 독자들에 대한 역자들이나 감수자의 배려가 조금은 부족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감수자가 일본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또 지금까지 일본의 대학에 재직중인 분이 아니었다면 이러한 점들을 미리 발견하고 수정을 요구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역자는 물론이거니와 감수자까지 일어적인 표현에 익숙한 분들이다 보니 일어적인 표현에 문외한인 독자들이 읽기에 어색하게 느껴지는 용어와 문장이 간간이 눈에 뜨이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거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중요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쳤던 부분들을 이 책을 통해 다시 짚어 볼 수 있었던 점은 이 책을 통해 얻은 커다란 유익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 독자들은 정치철학이라는 영역에 대해 그리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샌델이 자신의 저서에서 인용하고 있는 인물이 얼마나 학계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인지 제대로 모를 수밖에 없고, 또 샌델이 사용하고 있는 용어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용어와 어떻게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모를 수밖에 없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러한 사실들을 하나 하나 새롭게 알게 되면서 샌델의 주장의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공동체주의'에 대한 설명이라든지, 샌델이 사용하고 있는 '자유주의'의 의미가 유럽에서와는 다른 미국적인 의미에서의 자유주의라는 설명이라든지, '정의란 무엇인가'에는 나오지 않지만 하버드 강의에서 언급된 내용들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소개해 준 샌델의 다른 저서들도 함께 읽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과 비교하면서 읽어 보면 그 책들을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책들을 읽지 않은 지금에도 샌델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전체적인 윤곽은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에서 지적했던 아쉬움 때문에 한국인이 직접 쓴 책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샌델의 저서들을 읽기에 앞서 한 번 쯤 읽어볼 만한 가치를 지닌 개론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저와 같이 샌델의 저서와 강의에 매료되어 그의 철학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진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