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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역사
데이비드 존스턴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부터 '정의'라는 주제에 대해 관심이 생겨 읽게 된 책이었는데, 생각보다는 약간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두 번 정도 읽어야 대부분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 본다면, 이 책은 세 번 정도는 읽어야 그와 비슷한 정도의 이해가 가능한 수준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세 가지 이론을 주로 다루면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설득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반면, 이 책은 여러 명의 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을 다루면서 논리적인 설명의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대중서로 쓰여진 책이라기 보다는 정치철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들을 위한 개론서와 같은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건조하고 딱딱하거나 지루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정의'라는 주제에 대해 학자들이 주장해 온 중요한 이론들의 역사를 소개해 주고 있었습니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과 히브리인들의 경전에 나타난 정의관에서부터 시작해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홉스, 흄, 스미스, 벤담, 칸트, 생시몽, 봐베프, 피히테, 마르크스, 존 롤스까지 수많은 학자들이 소개되어 있었는데, 이 중에 몇 몇은 전혀 들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고, 또 그 이름은 알고 있었다 해도 그가 어떤 '정의관'을 주장했는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제가 이 분야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던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이 책을 통해 그러한 학자들에 대해 알게 되고, 그들의 중요한 주장들에 대해 배우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정의관의 역사'를 다루는 방식은 역사적인 순서에 따라 중요한 학자들의 주장을 설명하는 방식인데, 이러한 흐름에 있어서 저자가 특별히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이러한 학자들의 주장들을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분류해 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정의관의 범주를 공리주의적 정의관, 목적론적 정의관, 상호주의적 정의관, 이렇게 셋으로 분류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마이클 샌델이 정의관의 종류를 '행복, 자유, 미덕'이라는 기준으로 분류한 것과 거의 유사한 분류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기준이 마이클 샌델이 말하는 기준보다 더 넓은 범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저자가 말하는 목적론적 정의관에는 '자유'를 정의의 목적으로 보았던 칸트의 견해 뿐만 아니라, '질서'를 정의의 목적으로 보았던 플라톤의 견해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정의관의 흐름을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최대한 간략하게 정리해서 설명하고 있는 마이클 샌델의 저작보다 더 풍성하고 다양한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의관'에 대한 더 깊이 있는 내용을 알고 싶어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상당한 만족감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조금 아쉽게 생각되는 점이 있다면, 저자가 이 책에서 자신의 관점을 좀 더 깊이있게 소개해 주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상호주의적 정의관'에 호의를 가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신이 왜 그러한 견해를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충분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적어도 한 장 정도를 할애해서 자신의 견해를 소개해 주었다면 많은 유익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각각의 학자들의 주장이 자신의 분류 기준에 따라 어떤 부류의 정의관에 속하는지 분명하게 이야기해 주었다면 독자들이 내용을 이해하기가 더 수월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정의관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이론들을 충실하게 소개하고 있는 책으로써, 마이클 샌델의 저작을 통해 지적인 만족감을 누렸던 분들이라면 한 번 쯤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