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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번역의 역사
래리 스톤 지음, 홍병룡 옮김 / 포이에마 / 2011년 7월
평점 :
신학대학원에 다닐 때 본문비평에 대해 공부하면서 메쯔거의 '사본학'이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그때까지 전혀 접해본 적이 없었던 놀라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는데, 그러한 내용들 중에서 '킹 제임스 성경만이 올바른 성경'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어떠한 오류가 있는지를 알게 되었던 것이 특별히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은 너무나 학문적인 분위기의 서술에다 자료 사진도 흐릿한 흑백사진이었기 때문에 건조하고 딱딱한 느낌이 들어 읽기가 만만치 않았더랬습니다.
그런데 이 책(성경 번역의 역사)은는 그 책에 담겨 있던 내용 가운데 중요하고 의미있는 내용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데다가 수많은 사본들의 사진들을 함께 실어 놓았더군요. 본문 비평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성경 사본에 관한 중요한 사실들에 대해 거의 빠짐없이 소개하고 있었고, 중요한 사본들의 사진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에 참으로 흥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부록으로 첨부된 실제 크기의 사본 조각 사진들은 실제 사본이 어떤 크기인지 가르쳐 줄 뿐 아니라 그 한 장 한 장을 필사했던 서기관들의 정성을 느끼게 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 사본 자료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졌는지 그 모든 자료를 한 장 한 장 액자에 담아 교회 벽에 걸어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사본들을 서로 비교 대조해 볼 때 성경의 필사가 얼마나 정확하게 이루어져 왔는지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고, 또한 히브리어 성경과 그리스어 성경이 각각 어떤 시대에 어떤 사람들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번역되어 왔는지, 그리고 그 번역의 의의는 무엇이며 또 그 가치는 어떠한지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 중에서 종교개혁 시대에 카톨릭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하려 노력했던 여러 인물들의 수고와 열정, 그리고 그들의 순교에 대한 이야기는 특별히 제 마음에 깊은 감동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영어 번역본들의 번역 기준과 특징에 대한 소개는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궁금증을 완벽하게 해결해 주었습니다. 게다가 책의 말미에는 고신대의 이상규 교수가 쓴 '한글 성경 번역의 역사'가 소개되어 있었는데, 이 땅에 성경이 전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이 또한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주목해서 보았으면 싶은 것은 킹 제임스 성경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140쪽,146쪽)에 대한 내용들입니다. 에라스무스가 그리스어와 라틴어 대조 성경을 만들 때에 누락된 부분을 어떤 식으로 채워 넣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텍스투스 리셉투스를 거쳐 킹 제임스 성경으로 번역되기까지의 과정을 볼 때 과연 킹 제임스 성경을 전혀 오류가 없는 성경이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 보았으면 싶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킹 제임스 성경 이후로 '야고보서'의 제목을 'James'라고 붙이기 시작했다는 점을 생각할 때, 킹 제임스 성경이야말로 '인간의 명예욕'으로 더럽혀진(혹은 변개된) 최초의 성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여호와의 증인'들이 번역한 신세계 번역판에 대한 설명(198쪽)도 살펴 볼 가치가 있디고 생각됩니다. 사실 이 책에서는 요한복음 1장 1절을 번역함에 있어 정통 교단이 사용하는 번역본과 신세계 번역본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약간의 언급만 해 놓았을 뿐이라 아쉬움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에 대한 연구과제를 던져주었다는 점에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 어떤 '여호와의 증인' 교단의 신학생과 논쟁하던 중에 그가 이 문제를 들고 나온 적이 있었는데,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어 쩔쩔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는 네슬 알란트 27판의 본문(카이 데오스 헨 호 로고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을 저에게 들이대며 이 구문의 '데오스'에 관사가 없다는 이유로 이 단어를 '하나님'이 아닌 '신'으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이 구절에 대한 마음의 짐을 가지고 지내왔었는데, WBC 요한복음 주석을 보니 이렇게 설명하고 있더군요. "관사를 가지지 않은 '데오스'는 관사를 가진 '호 데오스'보다 덜 중요한 의미를 나타낸다. 그러나 관사 없는 '데오스'는 '로고스'가 마치 가장 높으신 하나님 옆에 위치하신 보다 낮은 신인 듯한 의미를 지닌 '한 신'으로 이해될 수 없으며, 또한 단순히 '신적인'이라는 뜻으로 이해될 수 없는데, '신적인'에 해당하는 용어로 '데이오스'가 잘 알려져 있었다.. 더욱이 그것(데오스)은 신적 성품은 소유하지 않은 채 신적인 기능만을 발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본질을 아직 상실하지 않은 본질상의 하나님, 즉 말씀이 함께 '계셨던' 바로 그 하나님을 나타낸다. (요한복음서 기자가 '카이 로고스 헨 호 데오스', 곧 '이 하나님은 곧 말씀이시니라'고 기록하지 않은 점에 유의하라.)"
이 외에 다른 주석들을 참고해서 정리해 보면 이 구절은 삼위일체의 근거를 제공하는 구절이며,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여호와의 증인'들로서는 이 구절은 그런 식으로(시초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은 신이셨다 -한글신세계역) 번역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 성도들이 이러한 사실에 대해 이런 저런 주석들까지 참고해가며 공부하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기에, 목회자들이 먼저 잘 정리해서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혹시 다른 분들이 저의 이러한 설명을 보면서 이 책의 내용이 무척이나 어려울 것이라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 책의 내용은 일반 성도들이 보기에 결코 어려운 수준의 책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성경을 통해 많은 깨달음과 변화를 경험해 온 저로서는 이 책이 모든 성도들에게 읽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모든 성도들이 이 책을 통해 성경의 소중함을 깨닫고 성경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고, 성경을 더 열심히 읽고 묵상하게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