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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ㅣ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박정희의 유신정권을 겪은 20대 젊은이의 부모세대이기도 한 유신세대, 그리고 베이비 붐 세대이자 정치적 단결성이 높은 386세대는 현대의 10대와 20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정의내릴까? '집단적 성향보다는 개인적 성향이 강하고, 자기만의 색깔이 뚜렷한, 남보다 나에 집중하는 세대'라고 바라본다면,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잘못 짚으셔도 한참 잘못 짚으셨습니다' 하고 말이다. 물론 세대간의 차이와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세대간서로 자라온 성장배경과 역사경험이 다르기 때문이고, 또한 이러한 서로의 경험들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윗세대는 아랫세대에 대해 그저 막연히 '유추'할 뿐이다. 그들이 처해있는 진짜 상황이 어떤 것인지, 이러한 지경이 되도록 한 것에 자신의 세대들이 상당 부분 일조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에겐 낭만이란 것이 없다'고 진단한다면, 그나마 앞선 대답보다는 훨씬 정답에 근접하다고 말할 수 있다. 낭만이 없다는 것이 단순히 제멋대로인 삶을 사는 재미를 말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간의 만남이 줄어들고 다양한 생각들간의 교류가 원활하지 않게 되는 것에서 '낭만이 없어졌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명제의 물음에서 이 책은 출발하게 되지 않았을까. 성실하게 살기를 강요받으면서 꼼짝할 수 없이 공부라는 틀에 묶여있는 지금의 10대, 20대와, 젊은 시절에 낭만을 한껏 누렸던 사람들 -소위 유신세대와 386세대-이 같은 사회, 같은 국민경제 속에 살면서 발생하게 되는 '불균형'에 대해 이 책은 말하고 있다. 10대, 20대가 처해있는 상황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으로 해석하고 이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 사회적 배경을 낱낱이 해부하는 책의 저자는 지금의 10대, 20대에게 어울릴 만한 이름으로 '88만원 세대'를 붙여준다.
88만원 세대-전체 비정규직의 평균 인금과 전체 임금에 대한 20대의 임금 비율을 곱한 숫자인 88만원이라는 이름은 그 숫자가 의미하는 급여의 높고 낮음을 떠나, 아무리 노력해도 한국사회에서 계속되는 악순환의 굴레 속에 얽매여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음울한 현실상을 적나라하게 들추어내고 있다. 지금의 10대는 바로 옆에 앉은 친구를 가까운 적으로 두고서 공부로, 시험점수와 등급으로 경쟁해야 하는 배틀 로얄에 처해있고, 그러한 과정을 이미 겪어온 20대는 곧 그들이 직접 맞부딪히게 될 사회가 강압하는 살벌하고 무자비함 속에서 그 전보다 더한 경쟁을 겪게 된다. 더욱 무서운 것은 표면적으로 이것이 세대 내의 경쟁으로 보이지만 더 깊게 파고들어 보면 세대 간의 경쟁, 그것도 경쟁이라 일컫기도 무색한 승자독식의 게임으로 변질돼 있다는 것이다. 경쟁이라 함은 동위상에 놓여진 수많은 남들과의 선의의 교류 속에서 더 나은, 더 좋은 무언가를 도출할 수 있도록 해야함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적어도 지금의 한국사회에서는 긍정적 의미의 경쟁은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이것이 당분간 지속되다 그칠 현상이라면, 이것이 이 사회가 선진국으로 나아갈 마지막 난관이라면 다행이지만 지금의 10, 20대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10, 20대에게도 이 현상이 되물림되고 10, 20대를 칭하는 용어로 88만원 세대가 굳어져 버린다면 이 사회에 과연 앞으로의 미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적자생존이 아닌 강자생존의 사회는 젊음과 패기로 뭉친 젊은이를 떠들어대지만 실상 그러한 젊은이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조차도 마련해두지 않고 있다. 아니, 이 사회를 주름잡고 있는 윗세대들은 아랫세대에 대한 관심이 부재하다. 관심을 기울일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예의를 문제해결의 첫 단추로 삼아 모든 사회의 구성원이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해결의 의지와 행동을 보인다면 대한민국의 10대와 20대는 그저 살아남기 위한 비정상적인 획일적 반복에서 벗어나 말그대로 젊은이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0대의 첫 섹스가 슬프지 않은 다른 여느 나라의 젊은이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