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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 왜 국가와 사회는 인권침해를 부인하는가
스탠리 코언 지음, 조효제 옮김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검은 표지의 앞뒤에 그려진 두 손은 무엇인가를 가리고 혹은 막고 있다. 번역된 제목에서는 잘 읽어낼 수 없는 책의 주제와 가려져있는 그 무언가는 바로 부정, 'States of Denial'이다. 원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국가의 잔인함과 외면하는 대중을 '부정'이라는 핵심 틀로 풀어나간다. 진실을 보려하지 않는 국가와 대중은 자신과 서로의 눈을 가리고, 혹여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을 막은 채 말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건 간에 따뜻하고 좋은 것, 선한 것에 마음이 끌린다. 반대로 차갑거나 무서운 것, 악한 것은 멀리 한다. 그것이 인간 본성에 의한 것이든, 이분법적 기준을 학습하고 체득한 것이든 간에 '권선징악'을 따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이 타인과 함께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곳에서의 특정한 객관적인 사실, 진실로서 옮겨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가난하고 불안정하고 폭력으로 찌든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삶의 조건이 유난히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곳에서 군대와 난민, 암살대와 기근을 매일 대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명백한 사실들을 접하게 되면 사람들은 나와 상관없는 그들로 타자화해 먼 거리에서 지켜볼 뿐이다. 그들의 삶이 안타깝고 딱하더라도 그러한 사실을 눈감아버리고 외면한다. 관점과 해석의 차이로 묘사되는 사회적 고통은 의식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 자체로 악한 것은 피해야 한다. 하지만 악한 누군가의 행위로 인해 고통받는 인간과 삶마저 악한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진실을 외면해버리기 일쑤다. 이런 행동이 오히려 더욱 큰 악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채로 말이다.
이 책은 인간이 외면하고 싶은 고통스런 행위와 그로 인한 현상을 인권침해로 간주하고, 인권침해의 가해자이면서도 그러한 행위를 부인하는 국가와 가해자, 그리고 인간의 사회적 고통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부인하는 일반대중의 경향을 사회심리학적 분석과 역사적 진실 속에서 파헤치고 있다. 일반대중의 부인, 무관심, 소극성에 대해 비써르트 호프트는 '아는 것 knowing'과 '모르는 것not knowing' 사이의 어스름한 상태로 규정한다. 이에 저자는 우리가 이런 일을 '알려고만' 했다면 모든 일을 이해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부정이 아닌 시인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골치아픈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현실을 직시해야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폭로하고 도전하고 허물어뜨려야 할 어떤 것에 있어 일종의 정도를 벗어난 부인의 상태를 허물 수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고통을 대변하는 표현들을 많이 접할수록 이 문제에 접근하는 올바른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부인이 일으킬 수 있는 정말 위험한 상태는 바로 '소통의 부재'가 아닐까 한다. 무지의 상태에서의 부인이 아니라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의 부인은 어떠한 변화도 이끌어낼 수 없다. 말하지 않고 외치지 않는 것은 불통을 넘어선 소통 자체의 부재를 뜻한다. 외면하고픈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를 고쳐나가기 위한 움직임을 이끌어가기 위해선 시인을 통한 소통의 트임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그러한 일들은 개개인의 의식에 등재되고 소화될 수 있으며 정책이나 여론을 만들어내고 바꾸어나갈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눈감아버리지 않고 떳떳하게 인정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더 나아가 이에 대해 끊임없이 소통하고 갈등하면서 변화의 움직임을 만들어가려는 관심과 태도를 국가와 대중 모두가 가진다면 외면하고픈 진실 속 존재들-어쩌면 나 자신이 되어있을지도 모르는-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눈을 가린 손을 떼어내어 사실을 직시하고 입을 열어 사실을 이야기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