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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 - 우리는 나보다 똑똑하다
찰스 리드비터 지음, 이순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내'가 생각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지금까지 내가 받아왔던 교육은 7차교육과정에 입각한 교육이었고, 그 교육과정이 표방하던 다양한 인재상 중에서 가장 강조되었던 것은 바로 '창의성'이었다. 어떤 과목에서든, 어떤 문제에서든 학생에게 요구하는 것은 창의적인 사고와 대답이었고,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발표할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하는 교육은 구시대적 사고가 아직 만연한, 주입식 교육의 경직된 분위기가 채 가시지 않은 시대에서 이뤄졌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왜 우리가 '창의적'이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가르쳐 주지 않았다. 자기 내면으로만 창의성을 옭아매고 누가 더 창의적인가를 저울질하는, 한마디로 '창의성'으로 서로 경쟁하던 그 때의 교육은 창의성을 공유하지 못했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그러한 생각들이 모여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집단지성. 바로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생각과 공유함'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던 것이다.
그 시대에는 왜 창의성을 공유하지 못했는가에 대해 이 책은 비교적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모든 사회현상을 '사적 소유'라는 경제관념의 논리를 잣대로 해석하려했기 때문이다. 자산이 사적 소유 형태가 되지 못하면 끊임없이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지 못한다는 경제논리가 교육과 문화, 예술 등의 영역에까지도 확장되어 적용되어 온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아이디어 경제에서는 경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자본 대부분이 공유된다고 반박한다. 단순히 어떤 생산품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던 구매·소비자는 이제 '객체'라는 범주의 틀에서 벗어나 생산품을 이용하고 피드백을 주고 더 나아가 생산품을 만들어내는 prosumer, 생비자로서 '주체'화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 웹 커뮤니티를 중점으로 이 책은 집단지성을 말하고 있다. 웹 커뮤니티를 흔히 가상공간이라 일컫는 것도 점차 어색해지고 있다. 현 시대의 인류는 컴퓨터라는 개인통신기기로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의 삶을 확장시키고 연결시켜 나가며, 아고라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누리며 다양한 사람들과 토론의 장을 실현시켜 나가고 온라인 게임을 통해 자신과 전혀 다른 아바타로 또 다른 삶을 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웹 커뮤니티의 기반을 구축해나가는 이들은 이것이 바로 자신의 삶 전부일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공간은 더 이상 가상이 아니라 또 다른 진짜 세상인 것이다.
책에서는 이렇듯 급진적이고 전혀 새로워 보이는 웹 커뮤니티를 통한 집단지성의 발현이 사실 더 오랜 연륜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집단지성을 이루는 핵심 근간인 공유와 상호의존은 사적 소유와 마찬가지로 생산 활동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자원의 공동 저장고를 이용하던 마을과 공동체에서 이미 오래전에 확립된 전통을 부흥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시대의 웹 커뮤니티의 시초를 이룩한 이들은 시대에서 한참을 뒤처져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시대를 앞서간 셈이 된다. 또한 집단지성의 미래에 대해 건전한 비판을 수용하면서도 그로부터 비롯되는 우려를 극복해나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이 책의 저자는 집단지성이 민주주의와 평등, 자유에 이익이 되도록 스스로와 더불어 확장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것에 빛과 그림자가 존재하듯 보이지 않는 '웹' 현실에서 부정적인 결과가 초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그러나 지성을 이룩하는 집단은 더 이상 주어진 현실을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객체가 아니라 생각을 말하고 공유함으로써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나가는 능동적인 주체로 본다는 것이 이 책이 시사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나아가 지금의 현 시대와 미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의 교실은 어떨까. 그 곳에서 창의성을 생각해내기 위해 '혼자서' 끙끙대며 마치 시험을 풀 듯 창의성을 풀고 있는 그 때의 내 모습이 아니라 스스로 혹은 다르게 생각하는 학생들이 모여 '함께' 생각을 나누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