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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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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호와 조국. 아는 사람은 너무도 선명한 이름. 앞의 분 이름에 반드시 유시민이 오게 된다. 뒤의 분 이름 앞에는 '박노해'라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뒤의 분 이름과 함께, '이정로'라는 이름이 있었다. 이정로는 나이 들어 '백태웅'이 되었다. 박노해는 '박기평'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냥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뭐가 남았는가? 정말 '가혹한 신자유주의' 사회가 남았다. 그리고 비록, '리뷰' 형식이지만, 이런 류의 글은 일종의 후일담도 못된다. 

나는 왜 오연호나 유시민 이런 분들이 기어코, '진보'와 '개혁'을 붙이고자 하는지 이해가 안간다. 왜 그럴까? 왜 '진보개혁'이라고 붙이고자 할까? 아주 간단한데, '개혁'인 민주당(국참당)에 '진보'가 반드시 따라 붙어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진보'를 '개혁'과 붙이고자 하는 분들의 특징은, '어제' 이전의 일을 전부 기억상실이라도 한 것처럼, 잊어버린다는데 있다. 꺼내기 쑥스러운 일이라서? 입만 열면 국가를 되뇌이면서 군대는 자신도 자식도 안보내는 어떤 사람들처럼, 입만 열면 애국을 외쳤는데 지난 10년간 한 일이 '애국'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그나마 알기에 챙피해서?  

오연호 이 분이 '진보집권플랜'이라고 할때 그 '진보'는 실상 리버럴이다. 그런데 이 '미국식 리버럴'에 해당하는 정치세력은 한국에서 무러, '10년'을 집권했었다. '어제' 이전 그러니까, 2007년이전, 1997년까지 무려 10년이나 집권했으면서 무슨 또 '전망'을 세워서 '집권'씩이나 한다는 것일까?  

10년 집권했으면, 적어도 미국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했던 일 정도는 해 놔야 하지 않나?  

 기억의 '회복'을 돕기 위해 다음과 같은 '링크'를 해 보고자 한다.  

 " 기초노령연금은 유시민 전 장관이 오히려 협소화시켰다고 본다. 당시 한나라당이 하자는 대로 했어야 했다. 한나라당은 '보편주의' 기초연금제로 가자고 주장했었다. 그런데 청와대 사회수석실과 국무총리실의 이견과 진보적 시민사회의 반대를 뚫고 지금의 방식대로 유 전 장관이 해 놓은 것이다."

복지국가 단일정당 못만들면 한나라당에 필패한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10110150717&section=01 

 

유시민 이 분은 '전 보건복지부장관'이었다. 그 이전에는 김근태 이분이 하셨다. 전부, '민주화 운동'의 '맹장'이면서 '상징'이었다. 10년씩이나! 했는데! 아직도 '친환경 무상급식' 문제 하나! 해결 못하고! 선거 때마다! 공약이 되어야 한다니!  게다가 노령연금은 시민단체의 반대를 뚫고 '보편주의'를 저버린채 강행했다. 이래놓고 포지선을 바꿔 친환경무상급식에서는 새삼 '보편주의'를 내세우며 한나라당을 비판하고 있으니 이런!

조국 이 분이 이 책에서, 유일하게 의미있는 말을 한다면, '민중민주'를 '민생민주'로 바꿔야 한다는 문제제기이다. 그 오래된 '엔엘과 피디'얘기를 하면서 말이다. 이제 완전하게 포맷하게 치워버리지 않으면 한국을 어디로 끌고 갈지 모를 두 이론을! 조국 이 분이 언급했다.  

노무현 정부의 핵심 정책은, '반칙' 위반자를 치워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적립식 펀드를 조성하고 2005년 8.31 부동산 대책으로 '부동산'자금을 꽁꽁 묶은 다음, 주식시장으로 돈줄을 몰아서 '지수 2063'을 2007년 11월에 기록했다. 그런데 1년후 지수 980이었다! 그리고 2년 2개월 경과한 지금 지수 2100이라고 한다!! 이것뿐 아니라, '4대강 사업'은 저리가라 할 정도의 지방 공사판을 조성했다. 1년 10조씩 '토지 보상금'을 지불하면서 100조대의 공사판을 만들었고 지방 토호들을 세금으로 엄청나게 키워냈다. 왜 이런 얘기는 안할까?  

왜 '그분의 소박한 인품'만 이야기 할까? 그저께 이전의 일을 이야기 할 수 없으니 대통령이 얼마나 인간적이었는가만 얘기해야 하나?

'기억상실증 리버럴'의 가장 나쁜 '버릇'중 하나는, 뻑 하면 참여정부의 '지표'가 어땠느니 하면서 '주식지수'를 들먹이는 것이었다. 2007년 11월의 '지수2063'은 참여정부의 치적처럼 얘기됬다. 그리고 2008년 11월 지수 980은 엠비 정부가 경제를 말아먹을 지표로 제시되었다. 그럼 2011년 1월의 지표 2100은 엠비 정부의 엄청난 경제위기 극복과 '대도약'의 치적으로 상찬되어야 하는가?  이 엉터리에 기억상실증의 '개혁'들이어! 사실 부터 단단히 챙기시오! 지난 여름에 뭘 했는지 국민들이 다 모른다고 여기면 정말 곤란하다.  

나는 그래서 이 책에 대하여 더 이상 쓸 말이 없다. '플랜'이고 뭐고 이상이 그분이 말씀 하시듯, 그냥 단일 복지국가정당 만드는게 가장 낫다. 이게 '집권플랜'으로 가장 적절한 것이다. 단지, '그저께' 이전의 일은 발본색원하여 철저한 평가와 반성을 거쳐야 한다는 것.  

이 대담집은 조국 이 분의 '민중민주'를 '민생민주'로 바꾸고 때없이 통일 들먹거리는 것을 그만두라는 얘기만 의미 있다. 엔엘은 때없이 통일 들먹이기를 중단하고 피디는 민중민줴서 민생민주로 진화하자고!  

'나머지'는 '그저께 이전' 10년간 '개혁' 진영이 뭘 했는지 제대로 안보고 전혀 해결 난망이다. 그야말로 '신자유주의'를 급진적으로 수용하여 '개혁'이라고 치장했으면서 '반신자유주의'를 표병하는 진보를 늘 '왼쪽에' 똘만이로 달고 싶다고? 신자유주의 '개혁'을 그토록 했으면서 신자유주의 반대하는 '진보'를 왜 그토록 붙이고 싶어하냔 말이다. 제발 좀 떨어지 지냅시다!!  차라리 다음과 같이 좌파에서 우파로 보고 우파에서 좌파로 보는 장하준 이 분의 글을 읽어 보는 것이 낫다.  

장하준 인터뷰 상 - 한미 에프티에이 30년후 현대차, 삼성은 없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10102150151&section=02   

장하준 인터뷰 하 - 관치가 민주주의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10102154513&section=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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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미슐레의 자연사 1
쥘 미슐레 지음, 정진국 옮김 / 새물결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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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레라는 이름은 '프랑스 혁명사'하고만 어울리는 줄 알았다. 이 책을 읽고, 이 사람의 관심이 매우 광범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관심이란 무엇인가? '궁중암투'를 벗어나서, 지구 전체에 대한 관심이라 할 만하다. 나는 여전히 '궁중암투'에 대한 사유를 접지 않았다. 이유는 그게 한국적 혹은 아시아적 특성이라 보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관심의 폭이 '복닥'거리는 사람 사이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이는 동양적 특성처럼 여겨진다. 이를테면 십팔사략이라는 '역사서의 역사서'를 보면 잘 들여다 보인다. 숱한 인물들이 '교직'하는 것이 역사라는 관점이다. 

궁중암투와 동양적 인문주의 

그래서 동양적 인문주의를 만난다. 1800년대의 안동지방에 대한 '인구조사' 서책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나는 너무도 놀랐다. 그 '통계집'이, '붓글씨'로 작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미려한' 글자체로! 

바로 그 '인구통계집'이 보여주는 바, 동양적 '인문주의'라는 것이다. 저것을 작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날을 '붓글씨' 연습을 해야 했을까? 오늘날 학생들은 붓글씨 대신에 컴퓨터 자판과 마우스를 접한다. 자판을 쓰면서 빠르게 글을 '친다. 쓰지 않고 '친다'. 지금 이 글을 서재 블로그에서 '치는' 것처럼. 

이런 이유로 나의 '교양' 수준은 조선시대 선비의 교양 수준을 따르게 힘들다. 오랜 세월 붓글씨를 연습하면서 얻어진 그 '교양'말이다. 이런 것을 나는 인문주의라고 일컫고자 한다. 이런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명대사처럼, 인문주의이기는 한데, '사대부'보다 '승려'인 인문주의도 있다. 이런 것은 정말 서양에서 보기 드문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인문주의'가 의미하는 바란, 사람의 일을 전부 '사람사이'로 한정한다는 시야의 폭좁음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인은 왜 생태주의나 인류학적 사유에서 미흡할까? 그럴 필요를 못느껴서 그러하다면? 혹은 궁중암투적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인구 과잉'의 조건에 적응한 결과라면? 

이 시점에서, 미슐레라는 프랑스의 역사학자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문 사 철'은 동양적 인문주의에 핵심이다. 그 인문주의를 '교양'이라고 바꿔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단지, '관심'에서 차이다. 동양적 인문주의를 갖추었을 법한 역사학자 미슐레가 다른 관심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과 지리, 지형, 생태주의와 지구적 관심 

미슐레는 프랑스인이다. 1798년에 태어나서 1874년에 세상을 떠났다. 어떤 시기일까? 글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점이었다. 유럽사에서, 프랑스가 엄청난 국가역량을 분출하면서 유럽을 휘젓던 나폴레옹의 시대가 그의 이런 시절이었고, 엎치락 뒤치락 왕정과 공화정을 오가던 시점을 그는 살았다.  그의 성인 시절은 에릭 홉스봄의 규정 그대로, '혁명의 시대'였다. 산업혁명과 사회혁명이라는 '이중혁명'이 유럽에서 분출되던 시기를 그는 살아냈던 것이다.

프랑스의 1800년대 초반은 유럽에서 거의 황금시기였다. 당대는 세계 최초의 이공계 대학이었던 에콜 폴리테크닉에서 세계최고 수준의 수학,물리학,화학이 번영했다. 라플라스와 라그랑쥬, 몽쥬와 같은 수학자가 에콜 폴리테크닉에 재직했다. 라플라스와 에콜 폴리테크닉으로 대표되는 1810년대 프랑스의 번영은 라부아지에에 의한 화학혁명이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것과 관련된다. 1874년에 정점을 이룬 라부아지에의 화학혁명 이후 프랑스는 세계 고 수준의 '화학'을 갖고 있었다. 1820년 이후 유럽의 화학은 독일로 넘어가는데, 라부아지에의 베릍톨레 실험실에 유학한 독일의 화학자들이 주도하는 흐름이었던 것이다. 바로, 프랑스 나폴레옹 시기의 번영이 1820년까지 지속된 결과였다.

그리고 이런 '과학적 관심'의 새로운 흥기는, 산업혁명 및 사회혁명과 궤를 같이 했던 것이다. 미슐레는 이런 시기를 살았다. 그가 프랑스 혁명을 연구한 사학자가 된 것은 이와 관련되는 것이다. 

하지만 더욱 두드러진 것은, 당대 유럽 지식인 일반이 가지고 있었던 글로벌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격정적인 프랑스인이 '천변지이설'과 같은 지질학적 학설을 만들 무렵, 진화적 영국인은 동일과정설이라는 온건한 지질학 학설을 만들었다. 공통점은 무엇인가? '글로벌 전개'에 대한 관심이라는 것이다.  

가령 다윈이 24세에 비글호에 승선했는데 선장은 26세였다던가. 선장은 같은 연령대의 '박물학자'겸 대화 상태가 필요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사람들의 관심이 생태,지리,지형 이런 것이었고 당대는 '제국주의' 탄생의 직전이었다. 제국주의가 뭘까? 상품 생산지와 원료공급지가 글로벌로 재구성되어야 했기에 탄생한 '강대국'의 전개 방향 아니었나 말이다. 

 

동양적 궁중암투의 감수성을 뛰어 넘는 글로벌 관심 

결국 미슐레도 또한 이런 유럽적 전통에 가담한 지식인이었다. 가장 '미세'한 관심은 과학적 관심이라 할 수 있다.  

"민물에 사는 어떤 갑각류는 두 달 사이에 스무 번씩 죽기도 한다. 또 다른 종(유반류인 갑각류)은 이런 과정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거듭나지 못하고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사냥꾼으로서 더 이상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 대신 무기력하게 기생 생활을 한다." 

다음으로 지리와 지형에 대한 글로벌 관심이다. 이 시기는 '대항해'가 더욱 확장된 시점이었음을 고려해 보자. 

"제임스 쿡, 페롱, 뒤르빌(프랑스 탐험가) 등 유명한 선장들을 비롯한 여러 모험가들이 산호해와 호주해 등 당시 왕래가 드물던 바다에서 실제로 위험을 겪었다." 

이처럼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인에 버금가게 프랑스인들은 '지리상의 발견'을 1600년과 1700년의 200년에 걸쳐서 축적했다. 북해의 프랑스 어부들은 거칠은 대서양을 표류해 건너서, 아메리카에 '이미' 당도한 바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1860년은 다윈의 '진화론'이 출간된 1859년에서 1년 남짓한 시점이었다. 

당대 다윈은 유럽의 유명한 과학자였고 따라서 프랑스 지성이었던 미슐레의 관심이 다윈에게 향한 것은 자연스러웠다. 물론 다윈의 관심 전부는 바로 '생태학'이었다. 지리,지형,인류 이런데 관심이 곁들여진. 바로 이런 관심이 동시대의 한국인에게 있었을까? 내게 떠오르는 사람들은 '실학자'들이다. 

'자산어보'를 저작한 정약전이 당장 떠오른다. 실학자 대부분 지리와 지형에 관심이 있었다. 대동여지도의 김정호도 있었다. 허나 이런 관심은, 당대 명청의 '해금정책'의 맥락에서, '조정'의 단속대상이었다. 김정호는 '침략로'를 제공할 수 있다는 '불온' 딱지 때문에 관심을 확장하지 못했던 것이다. 요컨대 글로벌 시야로의 확장이 제약받은 셈 아닌가 한다. 글로벌 확장이 아니라, '관점'과 '관심'과 시야의 확장 말이다.

지금도 과연 이것을 넘어 섰을까? 한국에서 인문과 자연을 뛰어넘어 관심을 보이는 지식인은 얼마나 있을까? 아직도 찰스 스노우의 '두 문화'에 갇혀 있는 것 아닐까? 인문주의에서 멀어진 실용적 이공계 지식인과 과학적 관심과 담쌓은 인문사회 지식인으로 말이다.

한국인의 미세한 정치적 기술은 세계적 수준으로 뛰어난데 마치 양궁과 소트 트랙에서 뛰어난 것과 유사하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또 질문하고 싶은 것이다. 미슐레처럼, '혁명사'와 '생태주의'를 오가는 이런 지식인이 과연 있는가? 이는 '나는 왜 쓰는가'의 조지 오엘에도 이어진다. 그와 같이, 이튼 출신이면서 노숙자 생활을 해낸 이런 '글로벌' 지식인은 있을 수 있는가?

 

나가며  

미슐레 시대의 미국에 대한 짧은 글 인용과 더불어 마무리하고자 한다.  

"미국은 젋은 혈기로 지구와 친해지려고 열정을 불태웠다. 수 많은 나라 한복판에서 그 빼어난 대륙을 차지하고 있어도 미국은 외로웠다. 어머니의 땅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미국은 마치 해바라기 하듯이 이 문명의 중심을 바라 보았다. 굵은 광채가 비칠 때 마다 가슴이 두근 거렸다. 두 대륙의 연안을 잇고, 시시각각 그 대화와 통신을 약속하는 해저 전신망을 놓을 수 있다면 감격스런 축제와 도취에 빠져 있다. 그리하여 장차 두 세계는 하나의 사고로 통합될 게 아닌가!" (59쪽 20줄 - 60쪽 2줄)

모리라는 젊은 미국인 과학자에 대한 언급에서 나온 말이었다. '글로벌 관심'이 뭔지 잘 나타나 있다. 이런 관심은 반드시 '과학'이라는 범주로 포괄되지 않는다. 지리, 지형, 생태, 자연, 인류, 문화에 대한 관심 말이다. 이런 관심을 나는 '이주민'의 관심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이런 관심 덕분에 오늘의 지구는 '외로왔던 미국'이 이제, '어머니의 땅 미국'처럼 되었다는데 있다. 오늘날 전세계의 문물은 '뉴욕'으로 통하지 않는가!  

저자가 이 책을 쓰던 1860년대는 '프랑스'가 막, 제3제정으로 진입하던 시점이었다. 나폴레옹3세라는 매우 동양적인에게 익숙한 캐릭터에 의해, 급속한 제2 산업혁명으로 진입 시점이었던 것이다. 철과 증기로 대표되는, '철도'의 엄청난 건설시점이었고, 작가는 1874년까지 살았다. 프랑스는 영국과 더불어 제국주의 쌍두마차가 되었다. 다윈이 19세기 초반에 '탐사'했던 글로벌 구석 구석에 영국과 더불어 깃발을 꽂았다.  

저자는 1870년의 '보불전쟁'을 '말년' 노인 세대의 눈으로 목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이 책을 쓰던 시점에서 10년의 미래였다. 저자에게 비추어진 프랑스 북해(대서양) 연안의 한적한 바닷가에서 느낀 감흥에 대한 묘사는 이런 점에서 '초역사적'이다. 다시 말해 저자는 '역사적 관심'에서 잠시 벗어나 있었던 시점에 이 책을 쓰게 된 것이다.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30세 연하의 '부인'과 떠돌며 쓴 글이라서 그런 것일까? 중요한 점은 그 과학적이면서 글로벌적인 관심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의 지식인이 역사를 추체험하면서 읽으면 유익할 책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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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덕인가>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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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놈 놈 놈'을 보고 나는 놀랐었다. 너무 늦게(!) 같은 이름의 미국 서부영화를 '본떠'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 한국 사람의 과도 '섬세'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요컨대 한국적 스케일이 아니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한국적 스케일을 나는 '궁중암투'에 민감한 감수성이라고 명명한다. '궁중암투'는 내 보건데, 동아시아 혹은, 프랑스의 루이 14세 시절에만 있었던 감수성처럼 여겨진다. '궁중생활'을 해야 느끼는 감수성이다. 

그런데 한국인은 '궁중암투' 감수성에 민감하다. 그 이유를 나는 '과도한 인구' 탓이라고 여긴다. 여기서 '과도한 인구'라는 표현은 상대적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자칫 잘못하면, 그릇 상상으로 빠진다. 인구의 몇 %는 감축해야 하지 않냐는 감수성인데, 맬더스의 사유에 닿아 있다.  

 

1. 좋은 세상  

맬더스는 왜 '인구의 몇 %는 감축'해야 한다는 사고를 바닥에 깔았을까? 당대 영국의 조건 때문이었다. 프랑스가 태양왕 루이 14세의 번영속에 있던 무렵 영국은 그러하지 못했다. 물론 루이 14세 시기의 번영은 사실, 루이 15세 시기에 들어서 '낭비'로 사라져가는 추세였지만 말이다. 프랑스 혁명의 무렵 맬더스가 활약했음을 상기해보자. 

맬더스는 빈민 인구의 급증에 너무 놀랐다. 이는 사실 프랑스의 번영 종료, 영국의 번영 시작을 알리는 '증표'와 같았지만 '당장' 급한 문제처럼 보였던 것이다. 빈민인구가 너무도 급속 증가하여 걱정이 태산같았던 셈이다. 이런 사유의 한자락이, 마오리족보다 동물을 중시하는 사유의 한자락으로 이어져 있다. '사람'보다 '자연'과 '생태'가 귀중하다는 발상이라는 것인데 꺼내놓고 하지는 않는 듯 하다. 하지만 이런 것은 과잉인구처럼 여겨지는 시점이 도래하면 늘 나타났다. 

바로 지금, 유럽, 한국과 일본 아닌가 한다. '상대적 과잉인구'는 괜잖다. 중국이 15억이지만 한창 산업화 시점이라 연 10%의 고도성장을 하면서 '과잉인구'의 문제는 살짝 가리는 것 처럼 보인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지금이 '좋은 세상'이라는 것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 '서론'은 위에 소개한 책을 소개하기 위해 써내려온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영화 '놈 놈 놈'이었고, '놈' 앞에 붙은 '좋은, 나쁜, 이상한'이라는 수식어가 제목으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인구는 실상 상대적 과잉이었다. 맬더스는 산업혁명의 초기에 머물렀고 그의 '우려'는 부분 진실을 담았다. 하지만 산업혁명과 더불어 탄생한 인류 최초 '공장식 기계 사용 대량생산' 체제의 성립은 '과잉인구'를 과잉인구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한 시절을 낳았다. 산업혁명 초기는 '노동력'이 모자라서, 6세아동까지 일을 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산업화된 지구가 만들어졌다. 여기서 '좋은 세상'이라 함은 한국과 같은 곳을 의미한다. 산업화된 지역이다. 얼마나 좋으면, '개인이 골방에서 음란물을 볼 자유'를 '자유'로서 논쟁하는 사회인가 말이다. 이런 '쟁점'이 아무데서나 생기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산업화 초기에는 너무도 '엄격'한 사회 분위기가 감돌았다. 장발족을 경찰이 단속할 지경이었으니 이게 웬! 난리였나! 복권과 도박이 성행하면서 '경제적 도덕'의 쟁점이 되는 세상은 확실히 좋은 세상이다. 더 좋은 세상에 이어지는 저자의 글은 아마도 '탄소 배출권 거래'에 관한 논란일 것이다. 왜냐하면, 도대체 지구상에서 '탄소 배출권 거래' 대상이 되는 국가조차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2. 나쁜 세상 

바로 이래서 이제, 어떤 지역이 '좋은 세상'인 지구의 다른  어떤 지역은 여전히 '나쁜 세상'이다. 1972년 유엔인간환경회의가 열렸는데, 이때 스웨덴은 '나쁜 세상'을 경험했다. 영국에서 석탄 연소후 발생한 오염물질이 북해를 건너 스웨덴에 도달했다. 스웨덴에 강력한 산성비가 내렸고 호수가 온통 산성화되었다. 스웨덴에게 '나쁜 세상'이 영국에게는 '좋은 세상'이었다! 

이런 이유로 '온실 가스 배출권 거래'를 놓고 저자가 제기한 '환경 오염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에 대하여 '도덕적 가치'의 차원에서 논란을 벌이는 것은 어떤 나라에게 매우 사치스럽다. 우리에게 제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환경오염을 시킬 수 있는(!) 공장이라도 좀 주세요!! 

유엔 인간환경회의가 열린 1972년에 석탄연소에서 나온 오염물질에 국토가 온통 오염된 스웨덴과 달리, 한국은 이 시점에, 10월 유신을 하면서 동시에, '탄소 오염물질'을 다량으로 배출하는 포항제철을 건설하던 시점이었다. 당대에 초등학생들은 '뭉클 뭉클' 검은 연기 내뿜는 공장 그림을 자랑스럽게 그렸다!  아니, 스웨덴이 '이래선 아니되옵니다' 하면서 세계적으로 읍소를 위해 회의를 소집한 시점에서, 오염물질 내뿜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니! 이런 불일치가 있는가? 

당연히 있다. 탄소 배출권 거래를 저자가 아무리 '논점'으로 잡고자 해도, 이런 '거래' 대상국은 매우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잘 살펴 본다면, 지구상의 선진 산업국가들이다. 그나마 유럽국가들은 예외가 된다. 왜냐하면, 탄소 배출을 '감축'하는 기술을 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술의 핵심은 해외이전이라던가. 가령 영국은 탄소 배출을 지난 10년간 엄청나게 줄였는데 이유는, 자동차 공업 같은 것을 전부 해외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조선 공업은 일찌기 접은 바 있었다.  

이런 이유로 영국은 이산화탄소 배출 협약을 위한 국제회의에서 큰소리 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중국은 '억울하다'고 언제나 방어적이다. 미국은 '난 몰라'하면서 빠지는 포지션이다. 그런다고 아무도 제재하지는 못한다. 한국은 언제나 '우린 개도국에요'하면서 납작 엎드리는 포지션이었다. 물론 환경운동은 '개도국 틀립니다' 선진국 '맞습니다'쪽이지만. 아무튼 경제부처 관료들이 잘(!) 해줬기에 배출권을 많이 따오는 결과를 내오기는했다. 

 

3. 이상한 세상 

하지만 진짜 문제는, 저자가 말하듯 '누가 환경오염의 책임을 져야 하는가'이다. 이 '주제'는 국제적으로 논의해 볼만 하다. 왜나하면 지구는 실질적으로 '국경'이 사라진 경제 단위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중일 3국은 '아시아의 공업단지'라고 할 만하다. 이 특화된' 공단'은 거저 된 것이 아니라 가령 미국의 중동부와 남서부 공업이 '옮겨온' 결과이기도 하다. 텍사스주 곳곳에는 '유물'처럼 석유정제공장이 남아 있는데, 아시아로 옮겨간 것이다. 특히 조선공업의 경우 아주 심하다. 영국에서 시작하여 스웨덴을 거쳐 미국에서 번성하더니 일본으로 왔다가 한국으로 와서 정점을 찍고 중국으로 가는 중 아닌가.  

문제는 이 '한중일'의 아시아 공업단지에서 생산되는 제품에 있다. 전세계 바다위를 떠다니는 배의 10척중 3척이 한국에서 제조된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탄소를 많이 배출했다, 문제는, 그 배를, '구매'하여 이익을 내는 나라들이 전세계에 골고루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나는 이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이상한 세상'을 떠올리게 되었다. 탄소 배출권 하나만 봐도 그러하다. 왜 아시아의 공업지역에서 전세계 수요를 고려한 생산을 하는데, 탄소배출 관련한 '거래권'을 정부에서 구매해야 하는가 말이다. 그 '나라'의 세금으로 일종의 '탄소 배출세'를 내는셈 아닌가. 요컨대 한국의 울산에서 탄소 배출을 많이 한다고, '울산 시청'에 탄소배출 관련 비용을 전부 뒤집어 씌우는 모양이다. 그러면 울산 시청은 당연 항의하겠지!  우리가 언제 울산시만을 위해 정유공업을 한답니까? 

그래서 이상한 세상으로 느껴진다. 한두가지 아니다. 미국에서 공립학교에서 이뤄지는 '아침 방송'시간의 '광고'이다. '광고'를 시청시키기 위해 일부러 아침방송을 한다는 느낌 아닌가 말이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맞아! 학교에 광고를 넣는다는 생각을 왜 못했나' 할 수도 있지만. 미국은 이런 점에서 정말 이상하다. 한국에서 이러면 당장 생난리가 나면서 여론이 죽끓듯 끓을 것이기에. 

하지만 한국에서 '정작' 이상한 세상은 따로 있다. 학교에서 상업광고 같은 것을 하면 '이상하다'라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이지만, 가령, '학비'가 연 2천만원인 고등학교가 등장한 것에 대하여는 시큰둥하다는 것이다.  

교육에서 상업주의는 한국에서 더 극심하다. 원조인 미국이 한국에 오면 울고갈 지경이다. 하바드 등록금이 아무리 비싸도 받은 것보다 더 학생 교육비로 사용한다는 이런 것은 일단 무시하고 보더라도, 한국의 대학들은 '입학 전형료'를 과다하게 받은 나머지, '시장원리'와 '자유'와 '자율'을 신봉하는 정부로부터 '강제'로, 입학전형료 적게 받도록 행정지도를 받았다. 

나는 왜 정부가 등록금은 행정지도를 안하는가 의아할 뿐이다. 입시 전형료는 별것 아니다. 소위 말해 껌값이라는 것이다. 왜 한국에서는, '대학'의 등록금이 마냥 치솟는 이런 문제를 '도덕'의 테두리에서 다루지 않을까? 게다가 어째서 국립대 등록금 인상율이 더 높냐 말이다. 나는 몹시 의아하다. 미국에서는 중고교에 '광고방송'이 쉽게 인입하지만 그러하다고, 대학등록금이 일부 사립대학 빼놓고 마냥 치솟게 방치하지도 않는다. 물론 무슨 법인화니 민영화니 이런 것도 없다.  

그래서 마이클 샌델과 같은 작가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독점 금지법' 위반 관련하여 유럽 업체들과 다투면서 정부의 조사를 받은 바도 있다. 그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자유와 자율이지만 미국에서, '독점'과 '부패'에 대하여 엄격하다. 물론 사회경제적 지도층의 책임에도 민감하다. 대학도 '주립대학'은 저렴한 등록금을 유지하여 빈곤계층 자녀들도 다닐 수 있게 한다. 물론 '인상'추세속에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헌데 한국에서는 가령 등록금 폭등과 같은 '극단적'인 사태들에 오히려 덤덤하다. 가령 치의학과 등록금이 수천만원으로 치솟았지만 덤덤하다!? 게다가 치의학 대학원이니 하는데 덤덤하다!  정말 이상한 것이다. 변호사 정원까지 변호사 협회에서 제한하려 드니!  

이상한 것이 한국에서 한두가지 아닌데 잘 보면, 대부분 원산지가 미국임을 알 수 있다. 예전에 당연시되었던 것들이 뒤집어지면서 이상한 사태들이 빚어지고 결국 '도덕'이 문제가 됨을 알 수 있다. 저자가 그것을 일깨운다. 아직 교도소와 군대가 '민영'이 아님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지! 

맺으며 

신자유주의 세상. 높은 생산력 덕분에 풍요롭다. 개인의 자유와 자율은 '마냥' 상승했다. 소수자 인권도 존중한다. 여성의 지위는 아폴로 로켓처럼 고공으로 치솟고 있다! 

근데 왜 여자들은 계속 벗는 방향으로 가는 듯 보이는 거야? 한국은 아직도 여성 국회의원들이 보기 힘들다며? 최초 여성 장성이 뉴스에 뜨고 있는 것인가? 정말 나쁘고 이상하기도 하다! 

저자는 미국에서 이런 것들을 본다. 여기서 도덕적 문제를 발견한다. '민영'교도소와 '민영' 군대의 탄생 같은 문제들이다. 그 극단은 예의를 '과대 평가된 미덕'으로 여기는 경향의 출현일 것이다. 예의도 이제 '헐리우드 액션'으로 넘어 간다는 의미다!! 

동양에서 예의의 '예'는 '극기복례'의 그것이었다. 미국에서도 벤자민 프랭크린 시절에 그러했다. 그가 강조한 '미덕'이 바로 동양적 의미의 '예'였다. 이 고리타분한 '극기복례'가 다시금 되살아나는 시점인 것인가? 그러기에 신자유주의 세상은 장점이 너무나(!) 많다. 의료가 하도 발달한 나머지 요새 애완견들도 10년은 너끈히 넘게 장수하는 세상이다. 그러기에 단점도 많다. 젊은층 일자리는 생기지 않고, 왜 그렇게, 자영업자는 살기 팍팍한 것인가? 이상한 것은 너무도 넘치고 넘친다. 여성들이 지위향상되었는데 왜 자꾸 벗는 쪽으로 가냐 말이다. 게다가 학생들은 어째서 '2천만원짜리' 자립형 사립고의 등장에 항의하지 않고, '머리길이'만 갖고 선생님들과만 다투려 들까? 인권이 머리길이인가?  

결국 머리글로 되돌아간다. 이제 그만 '궁중암투'의 감수성을 버리자고 말이다. 이 작가의 글은 신자유주의라는 '좋은 세상, 나쁜 세상, 이상한 세상'을 도덕적 잣대로 들여다 보고 있다. 아무리 봐도, '극기복례'를 가진 동양적 감수성에서 볼때 이상한 것이 많아 보이는데, 한국이 미국보다 더 이상한 것을 많이 가지게 되었으니 부끄럽다. 하루 빨리 궁중암투에서 벗어나 지구 전체를 들여다보는 관점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큰 도움이 되는 책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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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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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에게 '전간기'라는 표현은 매우 낯설다. 유럽에서 두차례 일어난 세계대전의 '사이' 기간을 일컫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한국인들이 '아직' 조선이었던 시점이었다. 오늘날 한국을 풍미(하는, 혹은 ) 할 것처럼 보이는 '뉴라이트' 역사관에 의하면, '본토' 일본이 '한반도'를 '본토'처럼 개발한 덕분에 오늘날 한국의 경제성장이 가능했다는 것인데, 이 '새로운' 역사관에 의하면, '전간기' 시점은, 조선이 '본토' 대우를 받으면서, 집중 투자가 이루어지는 시점이 되겠다. 

그런데 그런 '본토'중의 하나가 바로 영국이었다. 영국과 일본은 섬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섬'에 사는 사람들의 특성을 고루 공유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단지 일본보다는 영국이 더, '농업'을 했고 '지주'가 많았고 이 '지주'들이 '전국대표자회의' 형식의 의회를 구성하여 국왕 권력에 대항했다는 역사가 있다. 물론 일본인들은 '국왕'까지 세우는 정치체제를 오랫동안 갖추지 못해 '막부' 즉 일종의 '임시' 군사통치기구를 오랜 세월 유지했다는  차이가 있다.  

1920년대 '본토' 영국은 비록 '황혼기'에 이르기는 했지만 여전히 '제국'의 위용을 갖추고는 있었다. 오웰의 글에 의하면, 이 시기에 버마는 여전히 영국의 통치하에 있었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듯 말이다. 그의 글 교수형에 보면 알 수 있다.  

죄수는 목에 올가미가 고정된 순간부터 자신의 신에게 외치기 시작했다. "람! 람! 람! 람! 람!" 하며 고음으로 반복하는 이 외침에는 도움을 청하는 기도나 절규처럼 급박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종소리 같은 안정감과 리듬감이 있었다.(27쪽 7-8줄)  

나는 '람 람 람 람 람'이 뭘까를 고민해보았다. '뭘까' 보다는 당시 비록 황혼녁에 와 있기는 하지만 '아직' 글로벌 영향력이 강성했던 영국의, '최고' 엘리뜨 눈에 비친 '버마' 원주민의 '종교'에 대하여 사유하게 되었다. 조지 오엘은 아마도, 독일의 쇼펜하우에르처럼, 불교를 공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국에 들어간 불교는 인도보다 미얀마에서 유래되었다. 미얀마 불교는, 19세기 후반기 민돈왕 시기에 '수행'이 장려되어 위빠사나의 복원이 이루어지던 시점이었다.  

결국 '람 람 람 람 람'은 일종의 사마타 수행을 위한 '주문'이었을 것이다. '사마타' 수행이란 무엇이든 하나에 집중하면 가능한 수행법이다. 이 '사형수'가 람 람 람 람 람을 '안정감있게' 반복했다는 것은 평소에 수행을 했다는 의미다. 모든 기도는 이런 '사마타'의 의미가 담겨있다. 단순 반복의 '주문'도 그러하다. 한국에서 오랜 전통을 가진 '염불' 수행은, 불교 수행의 40가지 사마타 수행법중의 하니였다. 이 '고등 종교'의 나라 미얀마에서, 1920년대쯤이면 수행불교가 점점 확장되어 가던 시점 아닌가.  

조지 오엘은 이튼 출신이었다고 한다. 버마에 와서 경찰로 5년을 근무했다. 그야말로 '인류'학적 견지에서, 보다 '우월'한 앵글로 색슨족이 어떻게 '식민지 종속국의 원주민'을 다루는가 잘 나와 있다. 헌데 5년 근무로 끝이 났다. 조지 오웰은 제국의 황혼녁에서 진정한 지식인의 길을 걸었다.  

그의 첫번째 길은, 런던시내에서 노숙자 노릇을 하는 것이었다. 이 낯익은 풍경은 서울역을 연상케 한다. 한국에도 조지 오엘과 비슷한 실천을 한 '인문학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조지 오웰은 식민지 경찰을 그만두고 돌아와서 스스로 노숙자가 되었으니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그 결과 지독히도 상세하고 런던 시내의 1920년대 '노숙자 생활'을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읽고 쓰는 것은 지식인의 질병과도 같다. 인터넷때문에 오늘날은 더욱 심하다. 블로그는 물론 이와 같은 '서재'도 그러하다. 조지 오엘도 이런 질병에 걸려 있다. 한국인들이 가령 식민지 시대에 '식민지'라는 것을 천추의 한처럼 머리에 이고, '읽고 쓰는' 질병에 걸린 지식인들을 배출한 것처럼, 제국의 황혼에 있는 영국에서, 조지 오웰은 '제국의 엘리뜨'라는 사실에 절망하여 읽고 쓰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상상력은 '제국'의 중심에 있는 나라의 엘리뜨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데까지 나아간다. 오늘날 지구는 그의 '상상력'과 매우 유사하게 구성되고 있다. 1984년에서 그는, '대형'에 의해 지배되는 지구를 묘사했다. 특히 지구가, 몇 개의 '국가연합'으로 짜여지는 구도를 그는 벌써(!) 일찌기도 사유했던 것이다. 유럽연합에 이어서 남미연합이 형성되었고, 아시아연합은 태동중이며, 북미연합은 '급작스럽게'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그의 사유, 정말 대단했다. 1984년에서 그는 '국가연합' 사이의 전쟁으로 끊임없이 위기에 직면한 지구를 그린다. 정말 엄청난 상상력인데, 제국의 지식인이 아니면 가질 수 없는 사유이기도 하다. '제국의 수도'에서 그 분위기를 흠뻑 적셔야 가능한 사유인 것이다. 그러니까 빽투더 퓨처!!  과거가 미래였다. 런던이 당대 제국의 수도였다. 그는 그 분위기를 '저항'으로 감지했을 뿐이다. 허나 달도 차면 기운다.  비엔나가 1917년까지 제국의 수도 비슷한 지위를 가졌지만, 1920년대에 들어오면 '추억'이 되버리듯, 런던도 그런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는 이런 것을 예민하게 감지했던 것이다. 1984년의 세계관은 '디스토피아'이다. 데쟈뷰는 지속된다.

요컨대 오늘날 서울시의 '화려한' 풍경을 '제국의 수도' 런던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엽에 모두 거쳤다는 의미인데, 아마도, 1851년 '만국 박람회'를 지나면서, 1890년대가 그 절정이었을 것이다. 해가지지 않는 제국은 '농담'이 아니었다. 이튼 출신은 그 제국의 '경영'을 맡는 사람으로 성장했는데, 이튼에서 '케임브리지'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 케임브리지에는, 오늘날 장하준이 교수로 재직하는 '정경대학'에서, 가령 케인즈가 있었다고 하며, 비트겐슈타인이 또 여기 머물렀다. 물론 비트겐슈타인의 사숙 스승격인 러셀과 화이트헤드도 여기 있었다. '번영의 한복판' 혹은 그 '말엽'에 있었던 풍경이었고, 이런 것은 지구의 이곳 저곳에서 데쟈뷰 되고 있다. 오늘날 런던은 '뉴욕'에 뒤쳐져 있다. 비엔나가 19세기 말엽에 런던에 뒤쳐져버린 것처럼 말이다.  

조지 오엘은 그 모든 것을 겪은 셈이다. 그의 '경력'을 뉘라서 대신할 수 있을까? 한국에 대입하면 '우물안 개구리'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적어도 박지원의 시기만해도 그러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소중화주의'를 이해했는데, '감히' 요나라를 물리쳤다는 자부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송이 요에 조공을 바치던 무렵, 고려는 요나라 군대의 침공을 여러차례 물리쳐버린 '전력'이 있다. 이 '놀라운' 역사는, 오늘날의 번영과 중첩된다. 무슨 이야기인가!! 지 20의 영향권도 있지만, 갑자기, 한국의 '그 모든' 역사들이 자랑거리로 재해석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조지 오엘의 1920년에서 1950년까지는 '제국의 황혼녁'이었고 '세기말'적인 대전쟁이 두차례나 일어났다. 이 두차례의 대전쟁에서 그는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그의 생애는 '종속국'에 있으면서 제국의 수도를 들락거렸던 당대의 '글로벌 지식인' 박지원보다 훨씬 다채롭고 모험적이면서 '황혼'을 반영한다.  

그리고 인간은 어디나 유사한 캐릭터가 데쟈뷰됨을 나는 실감한다. 하지만 한국인의 적응력은 너무도 탁월해서, 조지 오엘과 같은 '글로벌 수준의 저항 엘리뜨'도 다시 보기 어려울 것 같다. 그는 스페인 내전에까지 공화국군으로 참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국의 황혼에 대한 '대처' 법으로 스스로 사회주의자가 되어, 영국 노동당에 가입했다. 이 영국 노동당은 제국의 황혼을 장식하는 일을 맡았는데 그래서 주황색을 띠는 것일까? 헌데 한국에는 과연 조지 오엘 수준의 글로벌 저항 지식인이 있기나 할까? 한국의 이튼은 경기고교이다. '경기고교' 출신으로 '운동권'에 몸담았다가 지금 유력한 진보진영의 인물로 큰 사람이 있을까? 눈을 씻고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은, 계기가 오더라도, 한국인이 '제국'으로 성장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일까? 허나, 유목국가 요의 압력을 물리친 고려는 당대에 이미, 송나라와 대등한 수준으로 교역하는, '부유한' 강소국이었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도, 조지 오엘과 같은 캐릭터의 데쟈뷰 개연성은 충분하다. 물론, '제국' 혹은 그와 비슷한 포지션 설정도 불가능하지 않은 역사적 계기를 맞이하고 있다. 따라서 '반엠비니' 하면서 정치를 '우물안 개구리 다툼'으로 만드는 이런 것을 완전히 청산할 필요가 있다. 조지 오엘의 저작은 이런점에서 '섬세'하기 짝이 없으면서 읽고 쓰지 않으면 병발하고 마는 제국의 황혼기 지식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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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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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에게 '전간기'라는 표현은 매우 낯설다. 유럽에서 두차례 일어난 세계대전의 '사이' 기간을 일컫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한국인들이 '아직' 조선이었던 시점이었다. 오늘날 한국을 풍미(하는, 혹은 ) 할 것처럼 보이는 '뉴라이트' 역사관에 의하면, '본토' 일본이 '한반도'를 '본토'처럼 개발한 덕분에 오늘날 한국의 경제성장이 가능했다는 것인데, 이 '새로운' 역사관에 의하면, '전간기' 시점은, 조선이 '본토' 대우를 받으면서, 집중 투자가 이루어지는 시점이 되겠다. 

그런데 그런 '본토'중의 하나가 바로 영국이었다. 영국과 일본은 섬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섬'에 사는 사람들의 특성을 고루 공유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단지 일본보다는 영국이 더, '농업'을 했고 '지주'가 많았고 이 '지주'들이 '전국대표자회의' 형식의 의회를 구성하여 국왕 권력에 대항했다는 역사가 있다. 물론 일본인들은 '국왕'까지 세우는 정치체제를 오랫동안 갖추지 못해 '막부' 즉 일종의 '임시' 군사통치기구를 오랜 세월 유지했다는  차이가 있다.  

1920년대 '본토' 영국은 비록 '황혼기'에 이르기는 했지만 여전히 '제국'의 위용을 갖추고는 있었다. 오웰의 글에 의하면, 이 시기에 버마는 여전히 영국의 통치하에 있었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듯 말이다. 그의 글 교수형에 보면 알 수 있다.  

죄수는 목에 올가미가 고정된 순간부터 자신의 신에게 외치기 시작했다. "람! 람! 람! 람! 람!" 하며 고음으로 반복하는 이 외침에는 도움을 청하는 기도나 절규처럼 급박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종소리 같은 안정감과 리듬감이 있었다.(27쪽 7-8줄)  

나는 '람 람 람 람 람'이 뭘까를 고민해보았다. '뭘까' 보다는 당시 비록 황혼녁에 와 있기는 하지만 '아직' 글로벌 영향력이 강성했던 영국의, '최고' 엘리뜨 눈에 비친 '버마' 원주민의 '종교'에 대하여 사유하게 되었다. 조지 오엘은 아마도, 독일의 쇼펜하우에르처럼, 불교를 공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국에 들어간 불교는 인도보다 미얀마에서 유래되었다. 미얀마 불교는, 19세기 후반기 민돈왕 시기에 '수행'이 장려되어 위빠사나의 복원이 이루어지던 시점이었다.  

결국 '람 람 람 람 람'은 일종의 사마타 수행을 위한 '주문'이었을 것이다. '사마타' 수행이란 무엇이든 하나에 집중하면 가능한 수행법이다. 이 '사형수'가 람 람 람 람 람을 '안정감있게' 반복했다는 것은 평소에 수행을 했다는 의미다. 모든 기도는 이런 '사마타'의 의미가 담겨있다. 단순 반복의 '주문'도 그러하다. 한국에서 오랜 전통을 가진 '염불' 수행은, 불교 수행의 40가지 사마타 수행법중의 하니였다. 이 '고등 종교'의 나라 미얀마에서, 1920년대쯤이면 수행불교가 점점 확장되어 가던 시점 아닌가.  

조지 오엘은 이튼 출신이었다고 한다. 버마에 와서 경찰로 5년을 근무했다. 그야말로 '인류'학적 견지에서, 보다 '우월'한 앵글로 색슨족이 어떻게 '식민지 종속국의 원주민'을 다루는가 잘 나와 있다. 헌데 5년 근무로 끝이 났다. 조지 오웰은 제국의 황혼녁에서 진정한 지식인의 길을 걸었다.  

그의 첫번째 길은, 런던시내에서 노숙자 노릇을 하는 것이었다. 이 낯익은 풍경은 서울역을 연상케 한다. 한국에도 조지 오엘과 비슷한 실천을 한 '인문학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조지 오웰은 식민지 경찰을 그만두고 돌아와서 스스로 노숙자가 되었으니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그 결과 지독히도 상세하고 런던 시내의 1920년대 '노숙자 생활'을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읽고 쓰는 것은 지식인의 질병과도 같다. 인터넷때문에 오늘날은 더욱 심하다. 블로그는 물론 이와 같은 '서재'도 그러하다. 조지 오엘도 이런 질병에 걸려 있다. 한국인들이 가령 식민지 시대에 '식민지'라는 것을 천추의 한처럼 머리에 이고, '읽고 쓰는' 질병에 걸린 지식인들을 배출한 것처럼, 제국의 황혼에 있는 영국에서, 조지 오웰은 '제국의 엘리뜨'라는 사실에 절망하여 읽고 쓰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상상력은 '제국'의 중심에 있는 나라의 엘리뜨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데까지 나아간다. 오늘날 지구는 그의 '상상력'과 매우 유사하게 구성되고 있다. 1984년에서 그는, '대형'에 의해 지배되는 지구를 묘사했다. 특히 지구가, 몇 개의 '국가연합'으로 짜여지는 구도를 그는 벌써(!) 일찌기도 사유했던 것이다. 유럽연합에 이어서 남미연합이 형성되었고, 아시아연합은 태동중이며, 북미연합은 '급작스럽게'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그의 사유, 정말 대단했다. 1984년에서 그는 '국가연합' 사이의 전쟁으로 끊임없이 위기에 직면한 지구를 그린다. 정말 엄청난 상상력인데, 제국의 지식인이 아니면 가질 수 없는 사유이기도 하다. '제국의 수도'에서 그 분위기를 흠뻑 적셔야 가능한 사유인 것이다. 그러니까 빽투더 퓨처!!  과거가 미래였다. 런던이 당대 제국의 수도였다. 그는 그 분위기를 '저항'으로 감지했을 뿐이다. 허나 달도 차면 기운다.  비엔나가 1917년까지 제국의 수도 비슷한 지위를 가졌지만, 1920년대에 들어오면 '추억'이 되버리듯, 런던도 그런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는 이런 것을 예민하게 감지했던 것이다. 1984년의 세계관은 '디스토피아'이다. 데쟈뷰는 지속된다.

요컨대 오늘날 서울시의 '화려한' 풍경을 '제국의 수도' 런던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엽에 모두 거쳤다는 의미인데, 아마도, 1851년 '만국 박람회'를 지나면서, 1890년대가 그 절정이었을 것이다. 해가지지 않는 제국은 '농담'이 아니었다. 이튼 출신은 그 제국의 '경영'을 맡는 사람으로 성장했는데, 이튼에서 '케임브리지'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 케임브리지에는, 오늘날 장하준이 교수로 재직하는 '정경대학'에서, 가령 케인즈가 있었다고 하며, 비트겐슈타인이 또 여기 머물렀다. 물론 비트겐슈타인의 사숙 스승격인 러셀과 화이트헤드도 여기 있었다. '번영의 한복판' 혹은 그 '말엽'에 있었던 풍경이었고, 이런 것은 지구의 이곳 저곳에서 데쟈뷰 되고 있다. 오늘날 런던은 '뉴욕'에 뒤쳐져 있다. 비엔나가 19세기 말엽에 런던에 뒤쳐져버린 것처럼 말이다.  

조지 오엘은 그 모든 것을 겪은 셈이다. 그의 '경력'을 뉘라서 대신할 수 있을까? 한국에 대입하면 '우물안 개구리'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적어도 박지원의 시기만해도 그러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소중화주의'를 이해했는데, '감히' 요나라를 물리쳤다는 자부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송이 요에 조공을 바치던 무렵, 고려는 요나라 군대의 침공을 여러차례 물리쳐버린 '전력'이 있다. 이 '놀라운' 역사는, 오늘날의 번영과 중첩된다. 무슨 이야기인가!! 지 20의 영향권도 있지만, 갑자기, 한국의 '그 모든' 역사들이 자랑거리로 재해석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조지 오엘의 1920년에서 1950년까지는 '제국의 황혼녁'이었고 '세기말'적인 대전쟁이 두차례나 일어났다. 이 두차례의 대전쟁에서 그는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그의 생애는 '종속국'에 있으면서 제국의 수도를 들락거렸던 당대의 '글로벌 지식인' 박지원보다 훨씬 다채롭고 모험적이면서 '황혼'을 반영한다.  

그리고 인간은 어디나 유사한 캐릭터가 데쟈뷰됨을 나는 실감한다. 하지만 한국인의 적응력은 너무도 탁월해서, 조지 오엘과 같은 '글로벌 수준의 저항 엘리뜨'도 다시 보기 어려울 것 같다. 그는 스페인 내전에까지 공화국군으로 참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국의 황혼에 대한 '대처' 법으로 스스로 사회주의자가 되어, 영국 노동당에 가입했다. 이 영국 노동당은 제국의 황혼을 장식하는 일을 맡았는데 그래서 주황색을 띠는 것일까? 헌데 한국에는 과연 조지 오엘 수준의 글로벌 저항 지식인이 있기나 할까? 한국의 이튼은 경기고교이다. '경기고교' 출신으로 '운동권'에 몸담았다가 지금 유력한 진보진영의 인물로 큰 사람이 있을까? 눈을 씻고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은, 계기가 오더라도, 한국인이 '제국'으로 성장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일까? 허나, 유목국가 요의 압력을 물리친 고려는 당대에 이미, 송나라와 대등한 수준으로 교역하는, '부유한' 강소국이었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도, 조지 오엘과 같은 캐릭터의 데쟈뷰 개연성은 충분하다. 물론, '제국' 혹은 그와 비슷한 포지션 설정도 불가능하지 않은 역사적 계기를 맞이하고 있다. 따라서 '반엠비니' 하면서 정치를 '우물안 개구리 다툼'으로 만드는 이런 것을 완전히 청산할 필요가 있다. 조지 오엘의 저작은 이런점에서 '섬세'하기 짝이 없으면서 읽고 쓰지 않으면 병발하고 마는 제국의 황혼기 지식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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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신간평가단 2010-11-25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알라딘 신간평가단 담당자입니다.
리뷰가 먼 댓글로 달려 있지 않아서, 제가 놓치고 넘어갈 뻔했어요!!
다음에는 꼭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