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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미슐레의 자연사 1
쥘 미슐레 지음, 정진국 옮김 / 새물결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미슐레라는 이름은 '프랑스 혁명사'하고만 어울리는 줄 알았다. 이 책을 읽고, 이 사람의 관심이 매우 광범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관심이란 무엇인가? '궁중암투'를 벗어나서, 지구 전체에 대한 관심이라 할 만하다. 나는 여전히 '궁중암투'에 대한 사유를 접지 않았다. 이유는 그게 한국적 혹은 아시아적 특성이라 보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관심의 폭이 '복닥'거리는 사람 사이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이는 동양적 특성처럼 여겨진다. 이를테면 십팔사략이라는 '역사서의 역사서'를 보면 잘 들여다 보인다. 숱한 인물들이 '교직'하는 것이 역사라는 관점이다. 

궁중암투와 동양적 인문주의 

그래서 동양적 인문주의를 만난다. 1800년대의 안동지방에 대한 '인구조사' 서책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나는 너무도 놀랐다. 그 '통계집'이, '붓글씨'로 작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미려한' 글자체로! 

바로 그 '인구통계집'이 보여주는 바, 동양적 '인문주의'라는 것이다. 저것을 작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날을 '붓글씨' 연습을 해야 했을까? 오늘날 학생들은 붓글씨 대신에 컴퓨터 자판과 마우스를 접한다. 자판을 쓰면서 빠르게 글을 '친다. 쓰지 않고 '친다'. 지금 이 글을 서재 블로그에서 '치는' 것처럼. 

이런 이유로 나의 '교양' 수준은 조선시대 선비의 교양 수준을 따르게 힘들다. 오랜 세월 붓글씨를 연습하면서 얻어진 그 '교양'말이다. 이런 것을 나는 인문주의라고 일컫고자 한다. 이런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명대사처럼, 인문주의이기는 한데, '사대부'보다 '승려'인 인문주의도 있다. 이런 것은 정말 서양에서 보기 드문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인문주의'가 의미하는 바란, 사람의 일을 전부 '사람사이'로 한정한다는 시야의 폭좁음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인은 왜 생태주의나 인류학적 사유에서 미흡할까? 그럴 필요를 못느껴서 그러하다면? 혹은 궁중암투적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인구 과잉'의 조건에 적응한 결과라면? 

이 시점에서, 미슐레라는 프랑스의 역사학자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문 사 철'은 동양적 인문주의에 핵심이다. 그 인문주의를 '교양'이라고 바꿔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단지, '관심'에서 차이다. 동양적 인문주의를 갖추었을 법한 역사학자 미슐레가 다른 관심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과 지리, 지형, 생태주의와 지구적 관심 

미슐레는 프랑스인이다. 1798년에 태어나서 1874년에 세상을 떠났다. 어떤 시기일까? 글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점이었다. 유럽사에서, 프랑스가 엄청난 국가역량을 분출하면서 유럽을 휘젓던 나폴레옹의 시대가 그의 이런 시절이었고, 엎치락 뒤치락 왕정과 공화정을 오가던 시점을 그는 살았다.  그의 성인 시절은 에릭 홉스봄의 규정 그대로, '혁명의 시대'였다. 산업혁명과 사회혁명이라는 '이중혁명'이 유럽에서 분출되던 시기를 그는 살아냈던 것이다.

프랑스의 1800년대 초반은 유럽에서 거의 황금시기였다. 당대는 세계 최초의 이공계 대학이었던 에콜 폴리테크닉에서 세계최고 수준의 수학,물리학,화학이 번영했다. 라플라스와 라그랑쥬, 몽쥬와 같은 수학자가 에콜 폴리테크닉에 재직했다. 라플라스와 에콜 폴리테크닉으로 대표되는 1810년대 프랑스의 번영은 라부아지에에 의한 화학혁명이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것과 관련된다. 1874년에 정점을 이룬 라부아지에의 화학혁명 이후 프랑스는 세계 고 수준의 '화학'을 갖고 있었다. 1820년 이후 유럽의 화학은 독일로 넘어가는데, 라부아지에의 베릍톨레 실험실에 유학한 독일의 화학자들이 주도하는 흐름이었던 것이다. 바로, 프랑스 나폴레옹 시기의 번영이 1820년까지 지속된 결과였다.

그리고 이런 '과학적 관심'의 새로운 흥기는, 산업혁명 및 사회혁명과 궤를 같이 했던 것이다. 미슐레는 이런 시기를 살았다. 그가 프랑스 혁명을 연구한 사학자가 된 것은 이와 관련되는 것이다. 

하지만 더욱 두드러진 것은, 당대 유럽 지식인 일반이 가지고 있었던 글로벌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격정적인 프랑스인이 '천변지이설'과 같은 지질학적 학설을 만들 무렵, 진화적 영국인은 동일과정설이라는 온건한 지질학 학설을 만들었다. 공통점은 무엇인가? '글로벌 전개'에 대한 관심이라는 것이다.  

가령 다윈이 24세에 비글호에 승선했는데 선장은 26세였다던가. 선장은 같은 연령대의 '박물학자'겸 대화 상태가 필요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사람들의 관심이 생태,지리,지형 이런 것이었고 당대는 '제국주의' 탄생의 직전이었다. 제국주의가 뭘까? 상품 생산지와 원료공급지가 글로벌로 재구성되어야 했기에 탄생한 '강대국'의 전개 방향 아니었나 말이다. 

 

동양적 궁중암투의 감수성을 뛰어 넘는 글로벌 관심 

결국 미슐레도 또한 이런 유럽적 전통에 가담한 지식인이었다. 가장 '미세'한 관심은 과학적 관심이라 할 수 있다.  

"민물에 사는 어떤 갑각류는 두 달 사이에 스무 번씩 죽기도 한다. 또 다른 종(유반류인 갑각류)은 이런 과정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거듭나지 못하고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사냥꾼으로서 더 이상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 대신 무기력하게 기생 생활을 한다." 

다음으로 지리와 지형에 대한 글로벌 관심이다. 이 시기는 '대항해'가 더욱 확장된 시점이었음을 고려해 보자. 

"제임스 쿡, 페롱, 뒤르빌(프랑스 탐험가) 등 유명한 선장들을 비롯한 여러 모험가들이 산호해와 호주해 등 당시 왕래가 드물던 바다에서 실제로 위험을 겪었다." 

이처럼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인에 버금가게 프랑스인들은 '지리상의 발견'을 1600년과 1700년의 200년에 걸쳐서 축적했다. 북해의 프랑스 어부들은 거칠은 대서양을 표류해 건너서, 아메리카에 '이미' 당도한 바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1860년은 다윈의 '진화론'이 출간된 1859년에서 1년 남짓한 시점이었다. 

당대 다윈은 유럽의 유명한 과학자였고 따라서 프랑스 지성이었던 미슐레의 관심이 다윈에게 향한 것은 자연스러웠다. 물론 다윈의 관심 전부는 바로 '생태학'이었다. 지리,지형,인류 이런데 관심이 곁들여진. 바로 이런 관심이 동시대의 한국인에게 있었을까? 내게 떠오르는 사람들은 '실학자'들이다. 

'자산어보'를 저작한 정약전이 당장 떠오른다. 실학자 대부분 지리와 지형에 관심이 있었다. 대동여지도의 김정호도 있었다. 허나 이런 관심은, 당대 명청의 '해금정책'의 맥락에서, '조정'의 단속대상이었다. 김정호는 '침략로'를 제공할 수 있다는 '불온' 딱지 때문에 관심을 확장하지 못했던 것이다. 요컨대 글로벌 시야로의 확장이 제약받은 셈 아닌가 한다. 글로벌 확장이 아니라, '관점'과 '관심'과 시야의 확장 말이다.

지금도 과연 이것을 넘어 섰을까? 한국에서 인문과 자연을 뛰어넘어 관심을 보이는 지식인은 얼마나 있을까? 아직도 찰스 스노우의 '두 문화'에 갇혀 있는 것 아닐까? 인문주의에서 멀어진 실용적 이공계 지식인과 과학적 관심과 담쌓은 인문사회 지식인으로 말이다.

한국인의 미세한 정치적 기술은 세계적 수준으로 뛰어난데 마치 양궁과 소트 트랙에서 뛰어난 것과 유사하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또 질문하고 싶은 것이다. 미슐레처럼, '혁명사'와 '생태주의'를 오가는 이런 지식인이 과연 있는가? 이는 '나는 왜 쓰는가'의 조지 오엘에도 이어진다. 그와 같이, 이튼 출신이면서 노숙자 생활을 해낸 이런 '글로벌' 지식인은 있을 수 있는가?

 

나가며  

미슐레 시대의 미국에 대한 짧은 글 인용과 더불어 마무리하고자 한다.  

"미국은 젋은 혈기로 지구와 친해지려고 열정을 불태웠다. 수 많은 나라 한복판에서 그 빼어난 대륙을 차지하고 있어도 미국은 외로웠다. 어머니의 땅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미국은 마치 해바라기 하듯이 이 문명의 중심을 바라 보았다. 굵은 광채가 비칠 때 마다 가슴이 두근 거렸다. 두 대륙의 연안을 잇고, 시시각각 그 대화와 통신을 약속하는 해저 전신망을 놓을 수 있다면 감격스런 축제와 도취에 빠져 있다. 그리하여 장차 두 세계는 하나의 사고로 통합될 게 아닌가!" (59쪽 20줄 - 60쪽 2줄)

모리라는 젊은 미국인 과학자에 대한 언급에서 나온 말이었다. '글로벌 관심'이 뭔지 잘 나타나 있다. 이런 관심은 반드시 '과학'이라는 범주로 포괄되지 않는다. 지리, 지형, 생태, 자연, 인류, 문화에 대한 관심 말이다. 이런 관심을 나는 '이주민'의 관심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이런 관심 덕분에 오늘의 지구는 '외로왔던 미국'이 이제, '어머니의 땅 미국'처럼 되었다는데 있다. 오늘날 전세계의 문물은 '뉴욕'으로 통하지 않는가!  

저자가 이 책을 쓰던 1860년대는 '프랑스'가 막, 제3제정으로 진입하던 시점이었다. 나폴레옹3세라는 매우 동양적인에게 익숙한 캐릭터에 의해, 급속한 제2 산업혁명으로 진입 시점이었던 것이다. 철과 증기로 대표되는, '철도'의 엄청난 건설시점이었고, 작가는 1874년까지 살았다. 프랑스는 영국과 더불어 제국주의 쌍두마차가 되었다. 다윈이 19세기 초반에 '탐사'했던 글로벌 구석 구석에 영국과 더불어 깃발을 꽂았다.  

저자는 1870년의 '보불전쟁'을 '말년' 노인 세대의 눈으로 목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이 책을 쓰던 시점에서 10년의 미래였다. 저자에게 비추어진 프랑스 북해(대서양) 연안의 한적한 바닷가에서 느낀 감흥에 대한 묘사는 이런 점에서 '초역사적'이다. 다시 말해 저자는 '역사적 관심'에서 잠시 벗어나 있었던 시점에 이 책을 쓰게 된 것이다.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30세 연하의 '부인'과 떠돌며 쓴 글이라서 그런 것일까? 중요한 점은 그 과학적이면서 글로벌적인 관심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의 지식인이 역사를 추체험하면서 읽으면 유익할 책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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