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오소독스: 밖으로 나온 아이 - 뉴욕의 초정통파 유대인 공동체를 탈출하다
데버라 펠드먼 지음, 홍지영 옮김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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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오소독스 : 밖으로 나온 아이 _ 데버라 펠드먼 (홍지영 옮김)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니 시리즈 <그리고 베를린에서> 원작 회고록


 

서점사에 책이 등록되기도 전에 읽고 싶은걸 참을 수 없어서 결국 리뷰어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데버라 펠드먼(Devorah Feldman)은 실제 유대인으로 윌리엄스버그의 초정통파 하시딕 유대교 공동체에서 자랐고 나중에 공동체에서 나온 뒤 2012년에 자전적 회고록 Unorthodox : The Scandalous Rejection of My Hasidic Roots을 출판했다. 그리고 이 책을 바탕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그리고 베를린에서>가 제작 되었다. 책이 오기 전에 먼저 넷플릭스를 먼저 시청했고, 책이 오자마자 바로 읽기 시작했다.

 

모든 유대인 공동체가 그런 것은 아닌데 그녀가 속한 하시드파 중 하나인 사트마 공동체는 좀 극단적이며 비유대인과 그 문화에 대해 굉장히 폐쇄적이다. 그 배경을 좀 알아보자면, 이 사트마 공동체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 의해 전쟁 후 뉴욕에서 시작되었고 구성원은 그 자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정체성은 홀로코스트라는 사상 최악의 트라우마를 겪은 설립자들에 의해 발전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더욱 폐쇄적인 정체성을 갖게 된 듯하다. 홀로코스트로 잃어버린 유대인을 원상회복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아이를 낳고, 비유대인과 그 문화에 동화되는 것은 죄악을 짓는 것이고 또다른 '홀로코스트'와 같은 벌을 받을 뿐이므로 폐쇄적으로 살아간다.

 

예를들면, 인터넷이나 TV 같은 매체도 사용할 수 없고 최소한의 교육만 받으며(그것도 공동체 밖에서 통용되는 교육도 아니다. 그들의 해석으로 그들만의 교육), 어린나이에 한번 본 사람과 정략결혼을 한다거나 머리카락을 보이면 안되기 때문에 삭발을 한 후 가발을 쓰고 살아야만 한다거나, 남자를 유혹하는 천박한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에 여자는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를 수 없으며, 여성은 탈무드를 읽을 수 없다. 탈무드 외에도 외부의 언어로 쓰인 책은 읽을 수 없다.

 

사실 유대인에 대해서 잘 몰랐다. 어릴때 읽었던 탈무드속 유대인, 랍비는 더 없이 현명하고 대단한 사람이었다. 또 홀로코스트로 너무 많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유대인 중에서도 여러 파가 있고 그 모습, 생활방식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이 유대교라는 것도 결국은 최초 설립자의 사상에 따르므로 거기서 오는 율법의 모순된 해석으로 인한 부당함을 강요당하는 이면을 알게 되었을 때는 씁쓸했다. 실제로 저자는 자신이 속한 세계밖에 몰랐으므로 무엇이 부당한지를 잘 몰랐다. 그저 의문과 답답함만 더해갔다. 배움에 대한 욕구가 크고, 호기심이 왕성했으므로 순종하기가 매우 힘들었지만 자신의 세계인, 공동체 안의 구성원으로서 살기를 노력했다. 하지만 조금은 더 자유를 줄 줄 알았던 결혼생활의 환상은 쌓아올린 모래처럼 무너져 남몰래 누리던 티끌같은 자유마저도 박탈했으며 아이가 생긴 후로는 모순된 율법 속에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 끔찍했다. 그래서 떠났다. 공동체 밖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교육을 받은 자가 그곳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어려웠을까, 강력한 계기가 있다고 해도 어려웠을 것이다. 똑똑하게 해쳐가는 모습을 보며 응원했다. 글은 또 어찌나 잘 쓰는지 몰래몰래 그렇게 책을 읽어서 그런가보다. 결론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책을 덮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살아가는 세계와 너무도 다른 세계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나는 너무 재밌어서 이 책과 영상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막 추천하고 싶다.

 

1년 전 오늘 나는 하시딕 공동체(흔히 초정통파로 불리는 하레디파 유대교의 일종인 하시딕 유대교, 즉 하시디즘을 믿는 유대인들이 세속주의 문화를 거부하고 현대 사회와 격리된 채 살아가는 공동체)를 탈출했다. - P9

이때부터 나는 고분고분한 아이인 척하기가 힘들어졌다. 나의 생각와 외부의 가르침이 내 안에서 충돌하면서 회오리가 몰아쳤다. 때때로 내면의 소용돌이가 외면의 평정을 깨고 밖으로 흘러넘쳤고, 그러면 사람들은 너무 늦기 전에 내 호기심의 싹을 도려내려고 했다. - P46

하시딕 사트마 유대인이 입는 독특한 옷은 내부자와 외부자 모두에게 두 세계 사이에 깊은 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선생님은 늘 말슴하셨다. "동화(assimilation)가 홀로코스트의 원인이었어요. 우리가 다시 주변과 섞인다면 신을 배신한 벌을 받게 될 거예요." - P53

과거 유럽에서 할아버지의 가족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살지 않았다. 그들은 극단주의자가 아니었다. 영어로 된 책을 읽거나 붉은 색 옷을 입는 것을 금지한 사람도 지금의 렙베이다. 렙베는 우리가 외부와 동화되지 못하도록 철저히 고립시켰다.

나는 내가 절대로 대학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 공동체에서는 교육은 아무 소용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교육은, 그리고 대학은 윌리엄스버그 밖으로 나가는 길이자 문란함으로 이어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 P112

나는 힘을 간절히 원했지만 그 이유는 다른 사람을 내게 복종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주인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 P122

수년간 나는 양쪽 세계에 한발씩 들여놓은 채 저편으로 넘어갔다가 내 안에서 위험을 알리는 경고 벨이 울리면 몸을 돌려 달아나기를 반복했다. - P159

공포가 있던 자리에 분노가 차올랐다. 누구를 향한 분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겪어야 했던 그 모든 부당함이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모두 다 내 탓이라고 비난하는 세상에 신물이 났다 - P240

끔찍한 범죄자에게도 이토록 무분별하게 적용되는 측은지심이라니, 얼마나 관대한가? 바로 이 무차별적인 사랑, 정당하지 않은 사랑이 하시딕 유대인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처벌은 하늘에 맡기고 우리는 그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데 힘쓸 뿐이다. - P263

불현듯 내가 이방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자립은 향한 아주 작은 발걸음에도 대가가 따랐다. 앞으로 얼마나 큰 풍파가 몰아칠지 가늠조차 힘들었다. - P287

최악을 겪고나니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용기가 솟았다. 더 이상 불안하지도 불확실하지도 않았다. 내게는 매달릴 과거가 없었다. - P318

나는 내 아들에게 백지에서 시작할 기회를 주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내 경험에 영향받기를 원치 않으며, 두려움이나 혼란 없이 세상을 탐험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내가 꿈꾸던 어린 시절을 아이가 누리고 있음에 감격한다. 설사 아이가 자라서 랍비나 탈무드 합자가 되기로 결심하더라도 그 선택은 스스로 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모든 차이를 만든다. - P326

나는 쉬울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동화 같은 결말을 꿈꾸지 않았기에 버틸 수 있었다. 행복은 우리가 찾아다닐 때는 꽁꽁 숨어 있다가 전혀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한다. 나는 베를린에서 행복을 찾았다. (...) 베를린은 하시딕 및 정통파 유대인 공동체를 떠난 사람을 비롯하여 온갖 종류의 망명자와 도망자로 가득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베를린이라는 도시 그 자체다. 모래와 늪 위에 건설되어 누구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도시라고 주민들이 농담 삼아 얘기하는 이곳은 스스로 자신의 뿌리를 뽑은 사람과 남에게 뿌리 뽑힌 사람들이 함께 살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이다. -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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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픈 이유는 날씨 때문입니다
후쿠나가 아츠시 지음, 서희경 옮김 / 소보랩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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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픈 이유는 날씨 때문입니다 _ 후쿠나가 아츠시 (서희경 옮김)


비가 오면 무릎이 시리고 몸이 찌뿌둥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이 한둘이면 그저 개인의 문제이겠거니 하겠지만,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이 날씨와 컨디션을 연관 지어 이야기한다. 골골거리는 거 인증하냐며 쓰지 말라고 했지만 써야겠다. 몇 년의 연애 기간 동안 봐왔는데 남자친구는 흐리거나 비가 오면 굉장히 컨디션이 안 좋아진다. 비가 오면 기분이 찝찝하고 불편하니까 컨디션이 더 좋아질 리는 아마 없겠지만 그것을 넘어서 정말로 곳곳이 아프다. 날씨가 안 좋아서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말은 나도 살아오면서 한 적이 있는데 남자친구를 보면 이렇게까지 싶을 때도 있어서 궁금한 것이다. 정말로 날씨와 컨디션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분명 둘은 관계가 있을 것 같은데 생각보다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날씨와 몸 상태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날씨라는 특성상 회피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연구의 가치를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니까. 기상예보관 자격증을 따면서까지 날씨와 병증의 인과관계를 탐구한 뇌신경외과의사의 책이 나왔다. 이 사실 자체로 흥미로웠다. 뇌졸중이나 충수염 면역력 등 날씨와 건강이 연관이 있다는 연구결과들을 쉬운 용어로 정리한 책이라 가볍게 읽기도 좋다. 너무 맹목적으로 믿고 날씨에 얽매일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날씨와 관련해 우리가 흔히 하는 말들이 실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조심할 수 있다면 조심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노화, 흡연, 음주, 비만, 이상 지질혈증, 당뇨병, 고혈압 등 생활습관병으로 인해 동맥경화가 진행되고 체내 환경이 서서히 악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뇌졸중에 걸리지는 않는다. 체내 환경 변화와 함께 스트레스, 기상 변화 등 체와 환경 변화가 더해지기 때문에 갑자기 뇌졸중 증상이 발생한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 P22

기온이 내려가면 우리 몸은 정상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열을 생산한다. 그 과정에서 칼로리가 소비되는데, 만약 충분한 영양이 축적되어 있지 않으면 면역 기능이 떨어진다. - P31

기압이 떨어지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하고, 그로 인해 통증을 심하게 느끼게 된다. - P31

실제로 기류를 제어하여 짜증을 저하했다는 보고가 있다. - P40

환경 호르몬 과잉 섭취를 피하려면 같은 종류의 재료로 만든 음식을 반복해서 먹지 말고, 다양한 음식 재료를 균형 있게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 P54

알코올은 매우 강한 이뇨 작용을 한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 소변이 자주 마렵고, 몸이 탈수 상태가 되는 것이다. - P75

충수염은 장마 기간 중 갑자기 비가 개고 해가 뜨는 맑은 날 많이 발생한다. - P76

갑자기 비가 개고 날씨가 맑아지면 교감신경이 우위가 되고 부교감신경은 급격히 약화된다. 이러한 격렬한 변화의 영향으로 림프구 수가 과도하게 감소하고 감염에 취약한 몸 상태가 된다. 즉, 충수염이 발병하기 쉬운 조건이 된다. - P77

차가운 음식을 과잉 섭취하면, 내부 장기의 온도가 낮아져 면역 기능이 저하한다. 하지만 겨울에는 내부 장기가 따뜻해지는 음식을 주로 먹기 때문에 충수염 발병률이 낮은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 P79

또한, 꾸준히 비타민C를 복용하면, 멜라닌 색소 생성을 억제하므로 암뿐만 아니라 기미 예방에 효과적이다. - P88

술을 즐겨 마시는 사람은 ‘마신 술의 양과 같은 양의 물을 마시는 것‘이 좋다. - P106

요로결석의 원인이 되는 옥살산이 녹차, 홍차, 우롱차 등에 비교적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 보리차는 옥살산 함량이 적어 오히려 요로결석 형성이나 재발 방지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 P107

이른 아침에 혈압이 오르는 현상은 뇌출혈이나 지주막하 출혈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뇌졸중은 아침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라는 실제 발생하는 현상임이 조사 결과 밝혀졌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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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세 소설, 향
오한기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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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세 _ 오한기

<인간만세>는 작가가 답십리 도서관 상주작가 경험을 토대로 썼다고 한다. 익숙한 느낌은 아니지만 어렵게 생각할 게 있을까 싶다. 읽는 동안 나는 실제로 여러 번 피식 피식거리면서 읽었고 재밌었다. 이게 과연 무슨 내용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빡빡한 직업 작가로서의 현실, 그리고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거듭 묻고 물어, 결국 소설가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얘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다른 작품을 평가하고 깎아내리기도 하며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하는데 이것 모두 소설가란 직업의 짠내를 느끼게 했다. 작가 특유의 블랙 유머로 다양한 인간 본성을 보여주는데 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책 속에서 후배가 말하듯이 미래에 교과서에 실릴 소설은 아닐지 모르지만 나는 나름의 리얼리티가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작가는 책 속에서 독자에게 친절히 말해주기도 한다. 상징이란 건 열려있으므로 이 책이 낯설다고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고 각자의 상징을 만들어나가며 읽으면 된다고. (너무 쉽다면 작가가 하수가 되어버리니까요ㅋ)



나는 내 단점을 직시해서 수정하기보다 외면하는 나약한 타입이니까. - P15

대체 문학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 소설에는 어떤 가치가 있는 거냐고요. 이 질문이 교수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이 질문을 견딜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 P20

논리와 비논리를 따지는 사람은 승부욕이 강해서 도통 타인의 논리를 인정하지 않기 마련이다. - P20

높은 확률로 선배 소설은 미래에도 교과서에 실리지 못할 거야. 이유가 뭔지 알아? 리얼리티가 결여돼 있기 때문이지. 시대상을 반영해야 소설은 미래에도 가치가 있는 거라고. 그래서 리얼리즘이 위대한 거야. 후배의 반응은 시니컬했다. 교과서에 실리고 싶은 욕심은 없지만 리얼리티는 항상 성취하고 싶은 지점이었다. - P35

소설가 출신이랍시고 나를 후배님으로 부르는 거다. 나를 후배로 지칭할 수 있는 사람은 찰스 부코스키와 조이스 캐롤 오츠뿐이다. - P50

답십리도서관 상주작가 공고를 읽은 뒤 저는 행복했습니다. 꿈에 부풀었다고요. 상주 작가를 1년 하고 그 뒤 실업수당으로 6개월을 보낼 생각만 하면 청포도 젤리를 입에 넣고 굴리는 것처럼 달콤했죠. - P63

살아보니까 미친놈에게 덤벼들어 봤자 어느 순간 똑같은 미친놈이 되기 십상이었다. 아니면 친구가 되거나. 둘 다 맨몸으로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짓이었다. - P68

자고로 작가는 날카로운 시각으로 현실을 조망하는 존재입니다. 그로부터 리얼리즘이 발현되며 그 심연에는 진실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인류애가... - P94

사실 후배님이 뭘 하든 전 신경도 쓰지 않았어요. 땡땡이, 뭐 칠 수도 있죠. 소설가의 특권 아니겠습니까? 자발적 아웃사이더. - P110

서너 번 컴플레인을 받은 뒤 사서라는 직업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은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누군가에게 도서관은 천국일 수 있지만, 사서에게 도서관은 지옥이었다. - P112

머릿속에서 이력서를 채울 키워드를 맞추다 보니 스스로가 한심해졌고 조바심이 났다. 언제부턴가 임기가 끝난 뒤 실업 급여를 타면서 취직 준비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거듭하고 있었다. 어쩌면 상주 작가가 나태하기 짝이 없는 작가의 정신을 뜯어고치기 위한 일종의 정신 개조 사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 P131

고민할 필요 있을까요? 작법의 문제 같은데, 상징이란 게 그런 거잖아요. 상징은 열려있기 마련이죠. 작가님이 정하고 쓴다고 그게 그대로 읽히지 않아요. 그대로 읽히면 오히려 하수 아닌가요? 상징은 우리가 만드는 게 아니라 독자들이 만드는 거죠.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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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와의 정원
오가와 이토 지음, 박우주 옮김 / 달로와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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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와의 정원 _ 오가와 이토

<달팽이 식당>, <츠바키 문구점> 등으로 알려진 오가와 이토 작가의 신작이다. 잔잔하고 사람 냄새나는 무자극 소설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제목과 같은 예쁜 정원의 표지처럼 말이다. 내 생각과 달리 어떻게 흘러갈지 너무 궁금해 한달음에 읽어버렸다. 토와는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로 엄마와 단둘이서만 살아간다. 엄마가 정원에 심어 놓은 향기나무들로 계절의 변화를 알고 '수요일의 아빠'가 오는 것으로 일주일이 흐름을 알고 새들의 울음소리로 아침저녁이 오는 때와 날씨의 변화를 아는 토와다. 읽는 나도 후각과 청각이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오감으로 읽는 책.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정원이 있는 집에 살게 된다면 금목서 나무를 꼭 한 그루 심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토와의 정원에는 금목서가 있다. 읽는 내내 금목서 향기가 나는 듯했다. 금목서 향이 나는 가을에 읽었다면 더 좋았을까? 엄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토와가 고립되고 생존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친구를 사귀고 사랑을 하는 그 긴 과정을 너무 단숨에 읽어버렸다. 충격적이고 끔찍하다가 마구마구 응원하게 되는 이야기다. 나는 주로 사람이나 세상에 회의적인 자세를 취하게 될 때가 많은 사람이다. 나도 조금은 희망을 품고 싶을 때, 읽고 또 읽고 싶을 책이다.



그 원피스가 내 몸에 맞지 않게 될 무렵부터 엄마는 이따금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고장 난다는 말이 아니고서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 P67

시간이란, 강의 흐름과 닮은 무언가가 아닌 그저 그곳에 존재하는 것, 혼돈한 소용돌이 그 자체였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 위에 등을 맡기고 아무런 저항 없이, 온몸에 힘을 뺀 채 그저 흔들거리는 것이었다. - P71

엄마를 만나고 싶냐는 질문에도 금방은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원망하는지 사랑하는지, 엄마를 둘러싼 물음에는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다.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 P151

언제부터인가 내게 사람의 존재란 꽃다발과 비슷한 것이 되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냄새가 있지만 모두 다르다. 그것은 여러 꽃들이 모여 하나로 꾸려진 꽃다발 같은 것으로, 강렬하고 화려한 향기를 풍기는 사람도 있고 살짝 시든 듯 하지만 불쾌하지는 않은 복잡한 냄새를 뿜는 사람도 있다. 한 사람의 냄새일지라도 그곳엔 수많은 냄새가 뒤섞여 있어, 그 냄새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오직 그 사람만의 꽃다발이 된다. - P202

많은 사람들이 앞이 보이지 않으면 불편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이것이 당연한 일이다. 확실히 앞이 보였다면 궂은일이나 무서운 일과 조우할 확률은 줄어들었을 터다. 하지만 앞이 보인다고 해서 꼭 궂은일이나 무서운 일을 겪지 않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아니, 앞이 보이기에 궂은일이나 무서운 일이 늘어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 P207

모든 것은 여기에서 시작되었고, 또다시 여기로 되돌아왔다. 내 인생의 끄트머리과 끄트머리가 묶여 둥근 모양의 화환이 된다. 찌그러졌지만 아름다운 그 동그라미 한가운데 나, 그리고 엄마의 삶이 있다. 엄마를 끌어안고 싶다. 내 두 손으로 다정히 끌어안아 주고 싶다.

- P280

나는 이 시를 읽어주던 엄마의 심정을 비로소 이해했다. 엄마는, 나를 사랑했던 것이다. 내가 엄마를 사랑한 것처럼 엄마도 나를 사랑해 주었다. 도중에 그 사랑이 길을 잘못 들었을 뿐 처음에는 엄마도 나를 순수하게 사랑했었다.

- P281

앞을 못 보는 나일지라도 세상이 아름답다는 건 느낄 수 있다. 이 세상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것들이 잔뜩 숨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하나하나를 내 작은 손바닥으로 사랑해 주고 싶다. 그러려고 태어난 것이니까. 이 몸이 살아 있는 한, 밤하늘에는 나만의 별자리가 쉼 없이 생겨난다.

- P282

금목서 향기가 났다. 누군가에게 몸을 기대어 어리광을 부리는 듯한, 무방비한 향기다. (...) 나는 한낮의 별을 찾는 듯한 기분으로 금목서의 향기를 들이마셨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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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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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_ 여성은 왜 원하는가 - 캐럴라인 냅(정지인 옮김)


내가 좋아하는 소재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욕구'다. 욕구라고 하는 것은 내 통제력이 완벽히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기 때문에 알고 싶은 거다. 이 책의 저자인 캐럴라인 냅은 명랑한 은둔자로 많이 알려지게 된 것 같은데 나 역시 인상적이었던 작가라 북하우스에서 보내주신 가제본을 감사히 받아보게 되었다. 작가는 식욕/욕구(appetite)를 책 한 권의 분량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여성들이 느끼는 허기와 갈망의 근원에 있는 개인적, 사회적 요구들에 의한 치열한 자기 제한들을 말이다. 나는 절제하기 힘든 식욕, 그 허한 느낌, 그러니까 순수한 배고픔의 결과가 아닌 '거짓 배고픔' 그 존재에 대해서 아주 잘 느끼고 있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한탄하고 스스로를 책망하는 이 문제는, 스스로를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이 책은 식욕이라는 것이 그저 식욕 그 자체의 문제만은 아닐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다. 극단적이지 않다 해도, 만족을 모르는 헛헛함에 대해서, 어떻게 보면 식욕의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다양한 문제들, 상처들을 말이다. 캐럴라인 냅은 아주 꾸준하게 책 한 권을 통째로 이용해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말도 못 하게 촘촘한 사유들 때문에 나 역시 몇 번씩 곱씹어 읽어야 했다. 책 한 권을 읽는다고 해서 내 안의 욕구들이 적절한 선을 찾아 자기 자신을 책망하거나 징벌하지 않는 건강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닐 테지만 평생 함께 가야 할 내 안의 욕구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는 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계기가 많아질수록 조금은 더 균형을 잘 맞출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세상에는 삶을 완전히 바꿔놓는 일인데도 겉보기에 너무 평범하고 무해해 보여서 좀처럼 그런 일로 인지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 - P19

너무 많이 원하거나, 너무 섹스나 야망이나 갈망에 따라 행동하면 분명 그 청구서가 날아들고, 거기에는 대개 분노에 찬 자기비난의 야유가 따라붙는다. (돼지야, 게으름뱅이야, 형편없는 인간이야.) 욕망 대 박탈, 탐닉 대 자제, 돌봄 대 자기부정. 이런 것들이 특히 여성의 드라마에서 반드시 무대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 P33

섹스에 대한 욕구,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욕구, 육체적 쾌락에 대한 욕구, 이 모든 것은 사람을 어리벙벙하게 만들 수 있고 그 때문에 여자들은 일상의 가장 평범한 결정을 앞에 두고도 헷갈려한다. 당신이 한 그릇 더 먹는 건 배가 고파서인가, 아니면 슬퍼서인가? 운동을 평소보다 30분 더 하는 건 건강과 안녕을 위한 필요성을 의식해서인가, 아니면 또 한바탕 자기를 벌하고 있는 것인가? 사실은 필요하지도 않은 멋진 재킷에 600달러를 쓰는 것은 자신의 수고에 충분히 자격 있는 호사를 허락하는 것인가, 아니면 통제력 상실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것인가? 만족과 과잉을, 자제와 탐닉을, 쾌락과 자기 파괴를 구분하는 선은 어디일까? - P37

그게 여자들의 가장 주된 목표일까? 욕구를 없애버리고 싶은 욕구가?

솔직히 나는 그 반대가 참이 아닐까 한다. 이 새 천년의 초입에 많은 여성들의 마음속에 깔린 가장 주된 욕구는 아마 욕구에 대한 욕구일 것이다. 자신의 진짜 욕구가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밝힐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안전하고 안정되었다고 느끼고 싶고, 그 욕구를 만족시킬 충분한 자격과 힘을 갖추었다고 느끼고 싶은 갈망 말이다. - P41

칼로리와 지방에 관한 이 지루한 수다와 징징거림, 표피에 대한 이 얄팍한 집착은 대부분 여자들의 허영이라는 말로 일축되고는 하지만, 내게는 이런 일들이 통렬하게 느껴지고, 은근하지만 고질적인 고통으로 여겨지며 또 꽤 많은 속내를 드러내주는 것으로 보인다. - P61

욕구들은 가능성과 제약, 힘과 무력함이라는 양극단 사이에서 끊임없이 밀고 당겨지는 대단히 모호한 맥락 속에,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맥락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 P81

선택의 급증은 기대와 불안을 계속 끌어올리고 정신에 과부하를 건다. 소비자는 너무 많은 선택에 직면할 때 압도당하는 느낌, 마음대로 되지 않아 답답한 느낌, 우유부단함으로 마비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는 그보다 덜 일반적이로 더 사적인 영역에도 존재한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 자신이 누구인지, 세상 어느 곳에 속해 있는지,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원하고 무엇에 이끌려 움직이는지를 아는 것 ㅡ 혹은 더 정확히 말해서, 알려고 노력하는 것 또는 제대로 모르는 것 ㅡ 에 대한 부담이다. - P95

선택할 자유는 바꿔 말하면 실수할 자유, 더듬거리다 실패할 자유, 자신의 결점과 한계와 두려움과 비밀과 정면으로 대면할 자유, 자아의 파괴가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끔찍한 불확실성을 견디며 살아갈 자유다. - P95

영혼보다는 몸에 관해 걱정하는 것이 더 쉽고, 문화가 여자들에게 제시하는 좁은 정체성의 틈새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것이 처음부터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쉬우며, 사회적으로 승인된 욕망의 제단에서 예배하는 것이 모든 열정의 표현과 모든 욕구의 만족까지 고려하는 자신만의 제단을 건설하는 것보다 쉽다. - P108

소비주의는 정서적 공허감을 먹고 번성한다. 허하거나 자기에 대한 정의가 뚜렷하지 않거나 결핍을 느끼는 사람에게 그런 상태를 외적인 것으로 돌리려는 힘은 매우 유혹적이며, 나는 그 미끼를 물 완벽한 낚싯감이었다. 나는 젊고 확신이 없었으며, 욕망은 내게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으니까. - P289

"뚱뚱할 때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게 일시적인 상태인 척해요." 시간이 지나면 냄새가 사라지듯 뚱뚱함이 사라지고 진짜가 나타날 거라는 듯이. 그건 다이어트하는 사람들 사고방식의 일부예요. 모두가 자기 안에 밖으로 나올 날을 기다리는 날씬한 사람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 P226

감정들이 자신을 너무 가득 채우고 있다는 느낌, 너무 배가 고프고 너무 절실히 필요하고 자신의 몸에 비해 그 감정이 너무 크다는 느낌, 그러므로 그 느낌을 방출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애초에 그런 느낌을 가진 것에 대해 자신을 벌하려는 강박이다. 이 모든 행동에는 말할 것도 없이 분노가 있다. - P335

육체적 욕구들이란 항상 감정적 맥락 안에 존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는 시간이 욕망을 죽이기보다는 부추기는 역할을 더 많이 할 거라고 믿고 싶다. 나를 더욱 안달하게 하는 문제는 우선 ‘제대로 해내는 것‘의 문제다. 이런 걸 보면 나는 허기와 만족 사이에 성취할 수 있는 어느 수준의 균형이 존재한다고, 어디선가 그 분투가 마침내 끝나고 전투에서 승리하고 이제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여길 수 있는 어떤 평정의 장소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모양이다. - P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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