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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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_ 여성은 왜 원하는가 - 캐럴라인 냅(정지인 옮김)


내가 좋아하는 소재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욕구'다. 욕구라고 하는 것은 내 통제력이 완벽히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기 때문에 알고 싶은 거다. 이 책의 저자인 캐럴라인 냅은 명랑한 은둔자로 많이 알려지게 된 것 같은데 나 역시 인상적이었던 작가라 북하우스에서 보내주신 가제본을 감사히 받아보게 되었다. 작가는 식욕/욕구(appetite)를 책 한 권의 분량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여성들이 느끼는 허기와 갈망의 근원에 있는 개인적, 사회적 요구들에 의한 치열한 자기 제한들을 말이다. 나는 절제하기 힘든 식욕, 그 허한 느낌, 그러니까 순수한 배고픔의 결과가 아닌 '거짓 배고픔' 그 존재에 대해서 아주 잘 느끼고 있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한탄하고 스스로를 책망하는 이 문제는, 스스로를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이 책은 식욕이라는 것이 그저 식욕 그 자체의 문제만은 아닐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다. 극단적이지 않다 해도, 만족을 모르는 헛헛함에 대해서, 어떻게 보면 식욕의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다양한 문제들, 상처들을 말이다. 캐럴라인 냅은 아주 꾸준하게 책 한 권을 통째로 이용해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말도 못 하게 촘촘한 사유들 때문에 나 역시 몇 번씩 곱씹어 읽어야 했다. 책 한 권을 읽는다고 해서 내 안의 욕구들이 적절한 선을 찾아 자기 자신을 책망하거나 징벌하지 않는 건강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닐 테지만 평생 함께 가야 할 내 안의 욕구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는 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계기가 많아질수록 조금은 더 균형을 잘 맞출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세상에는 삶을 완전히 바꿔놓는 일인데도 겉보기에 너무 평범하고 무해해 보여서 좀처럼 그런 일로 인지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 - P19

너무 많이 원하거나, 너무 섹스나 야망이나 갈망에 따라 행동하면 분명 그 청구서가 날아들고, 거기에는 대개 분노에 찬 자기비난의 야유가 따라붙는다. (돼지야, 게으름뱅이야, 형편없는 인간이야.) 욕망 대 박탈, 탐닉 대 자제, 돌봄 대 자기부정. 이런 것들이 특히 여성의 드라마에서 반드시 무대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 P33

섹스에 대한 욕구,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욕구, 육체적 쾌락에 대한 욕구, 이 모든 것은 사람을 어리벙벙하게 만들 수 있고 그 때문에 여자들은 일상의 가장 평범한 결정을 앞에 두고도 헷갈려한다. 당신이 한 그릇 더 먹는 건 배가 고파서인가, 아니면 슬퍼서인가? 운동을 평소보다 30분 더 하는 건 건강과 안녕을 위한 필요성을 의식해서인가, 아니면 또 한바탕 자기를 벌하고 있는 것인가? 사실은 필요하지도 않은 멋진 재킷에 600달러를 쓰는 것은 자신의 수고에 충분히 자격 있는 호사를 허락하는 것인가, 아니면 통제력 상실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것인가? 만족과 과잉을, 자제와 탐닉을, 쾌락과 자기 파괴를 구분하는 선은 어디일까? - P37

그게 여자들의 가장 주된 목표일까? 욕구를 없애버리고 싶은 욕구가?

솔직히 나는 그 반대가 참이 아닐까 한다. 이 새 천년의 초입에 많은 여성들의 마음속에 깔린 가장 주된 욕구는 아마 욕구에 대한 욕구일 것이다. 자신의 진짜 욕구가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밝힐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안전하고 안정되었다고 느끼고 싶고, 그 욕구를 만족시킬 충분한 자격과 힘을 갖추었다고 느끼고 싶은 갈망 말이다. - P41

칼로리와 지방에 관한 이 지루한 수다와 징징거림, 표피에 대한 이 얄팍한 집착은 대부분 여자들의 허영이라는 말로 일축되고는 하지만, 내게는 이런 일들이 통렬하게 느껴지고, 은근하지만 고질적인 고통으로 여겨지며 또 꽤 많은 속내를 드러내주는 것으로 보인다. - P61

욕구들은 가능성과 제약, 힘과 무력함이라는 양극단 사이에서 끊임없이 밀고 당겨지는 대단히 모호한 맥락 속에,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맥락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 P81

선택의 급증은 기대와 불안을 계속 끌어올리고 정신에 과부하를 건다. 소비자는 너무 많은 선택에 직면할 때 압도당하는 느낌, 마음대로 되지 않아 답답한 느낌, 우유부단함으로 마비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는 그보다 덜 일반적이로 더 사적인 영역에도 존재한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 자신이 누구인지, 세상 어느 곳에 속해 있는지,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원하고 무엇에 이끌려 움직이는지를 아는 것 ㅡ 혹은 더 정확히 말해서, 알려고 노력하는 것 또는 제대로 모르는 것 ㅡ 에 대한 부담이다. - P95

선택할 자유는 바꿔 말하면 실수할 자유, 더듬거리다 실패할 자유, 자신의 결점과 한계와 두려움과 비밀과 정면으로 대면할 자유, 자아의 파괴가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끔찍한 불확실성을 견디며 살아갈 자유다. - P95

영혼보다는 몸에 관해 걱정하는 것이 더 쉽고, 문화가 여자들에게 제시하는 좁은 정체성의 틈새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것이 처음부터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쉬우며, 사회적으로 승인된 욕망의 제단에서 예배하는 것이 모든 열정의 표현과 모든 욕구의 만족까지 고려하는 자신만의 제단을 건설하는 것보다 쉽다. - P108

소비주의는 정서적 공허감을 먹고 번성한다. 허하거나 자기에 대한 정의가 뚜렷하지 않거나 결핍을 느끼는 사람에게 그런 상태를 외적인 것으로 돌리려는 힘은 매우 유혹적이며, 나는 그 미끼를 물 완벽한 낚싯감이었다. 나는 젊고 확신이 없었으며, 욕망은 내게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으니까. - P289

"뚱뚱할 때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게 일시적인 상태인 척해요." 시간이 지나면 냄새가 사라지듯 뚱뚱함이 사라지고 진짜가 나타날 거라는 듯이. 그건 다이어트하는 사람들 사고방식의 일부예요. 모두가 자기 안에 밖으로 나올 날을 기다리는 날씬한 사람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 P226

감정들이 자신을 너무 가득 채우고 있다는 느낌, 너무 배가 고프고 너무 절실히 필요하고 자신의 몸에 비해 그 감정이 너무 크다는 느낌, 그러므로 그 느낌을 방출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애초에 그런 느낌을 가진 것에 대해 자신을 벌하려는 강박이다. 이 모든 행동에는 말할 것도 없이 분노가 있다. - P335

육체적 욕구들이란 항상 감정적 맥락 안에 존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는 시간이 욕망을 죽이기보다는 부추기는 역할을 더 많이 할 거라고 믿고 싶다. 나를 더욱 안달하게 하는 문제는 우선 ‘제대로 해내는 것‘의 문제다. 이런 걸 보면 나는 허기와 만족 사이에 성취할 수 있는 어느 수준의 균형이 존재한다고, 어디선가 그 분투가 마침내 끝나고 전투에서 승리하고 이제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여길 수 있는 어떤 평정의 장소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모양이다. - P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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