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언오소독스: 밖으로 나온 아이 - 뉴욕의 초정통파 유대인 공동체를 탈출하다
데버라 펠드먼 지음, 홍지영 옮김 / 사계절 / 2021년 7월
평점 :

언오소독스 : 밖으로 나온 아이 _ 데버라 펠드먼 (홍지영 옮김)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니 시리즈 <그리고 베를린에서> 원작 회고록
서점사에 책이 등록되기도 전에 읽고 싶은걸 참을 수 없어서 결국 리뷰어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데버라 펠드먼(Devorah Feldman)은 실제 유대인으로 윌리엄스버그의 초정통파 하시딕 유대교 공동체에서 자랐고 나중에 공동체에서 나온 뒤 2012년에 자전적 회고록 Unorthodox : The Scandalous Rejection of My Hasidic Roots을 출판했다. 그리고 이 책을 바탕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그리고 베를린에서>가 제작 되었다. 책이 오기 전에 먼저 넷플릭스를 먼저 시청했고, 책이 오자마자 바로 읽기 시작했다.
모든 유대인 공동체가 그런 것은 아닌데 그녀가 속한 하시드파 중 하나인 사트마 공동체는 좀 극단적이며 비유대인과 그 문화에 대해 굉장히 폐쇄적이다. 그 배경을 좀 알아보자면, 이 사트마 공동체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 의해 전쟁 후 뉴욕에서 시작되었고 구성원은 그 자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정체성은 홀로코스트라는 사상 최악의 트라우마를 겪은 설립자들에 의해 발전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더욱 폐쇄적인 정체성을 갖게 된 듯하다. 홀로코스트로 잃어버린 유대인을 원상회복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아이를 낳고, 비유대인과 그 문화에 동화되는 것은 죄악을 짓는 것이고 또다른 '홀로코스트'와 같은 벌을 받을 뿐이므로 폐쇄적으로 살아간다.
예를들면, 인터넷이나 TV 같은 매체도 사용할 수 없고 최소한의 교육만 받으며(그것도 공동체 밖에서 통용되는 교육도 아니다. 그들의 해석으로 그들만의 교육), 어린나이에 한번 본 사람과 정략결혼을 한다거나 머리카락을 보이면 안되기 때문에 삭발을 한 후 가발을 쓰고 살아야만 한다거나, 남자를 유혹하는 천박한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에 여자는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를 수 없으며, 여성은 탈무드를 읽을 수 없다. 탈무드 외에도 외부의 언어로 쓰인 책은 읽을 수 없다.
사실 유대인에 대해서 잘 몰랐다. 어릴때 읽었던 탈무드속 유대인, 랍비는 더 없이 현명하고 대단한 사람이었다. 또 홀로코스트로 너무 많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유대인 중에서도 여러 파가 있고 그 모습, 생활방식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이 유대교라는 것도 결국은 최초 설립자의 사상에 따르므로 거기서 오는 율법의 모순된 해석으로 인한 부당함을 강요당하는 이면을 알게 되었을 때는 씁쓸했다. 실제로 저자는 자신이 속한 세계밖에 몰랐으므로 무엇이 부당한지를 잘 몰랐다. 그저 의문과 답답함만 더해갔다. 배움에 대한 욕구가 크고, 호기심이 왕성했으므로 순종하기가 매우 힘들었지만 자신의 세계인, 공동체 안의 구성원으로서 살기를 노력했다. 하지만 조금은 더 자유를 줄 줄 알았던 결혼생활의 환상은 쌓아올린 모래처럼 무너져 남몰래 누리던 티끌같은 자유마저도 박탈했으며 아이가 생긴 후로는 모순된 율법 속에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 끔찍했다. 그래서 떠났다. 공동체 밖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교육을 받은 자가 그곳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어려웠을까, 강력한 계기가 있다고 해도 어려웠을 것이다. 똑똑하게 해쳐가는 모습을 보며 응원했다. 글은 또 어찌나 잘 쓰는지 몰래몰래 그렇게 책을 읽어서 그런가보다. 결론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책을 덮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살아가는 세계와 너무도 다른 세계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나는 너무 재밌어서 이 책과 영상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막 추천하고 싶다.
1년 전 오늘 나는 하시딕 공동체(흔히 초정통파로 불리는 하레디파 유대교의 일종인 하시딕 유대교, 즉 하시디즘을 믿는 유대인들이 세속주의 문화를 거부하고 현대 사회와 격리된 채 살아가는 공동체)를 탈출했다. - P9
이때부터 나는 고분고분한 아이인 척하기가 힘들어졌다. 나의 생각와 외부의 가르침이 내 안에서 충돌하면서 회오리가 몰아쳤다. 때때로 내면의 소용돌이가 외면의 평정을 깨고 밖으로 흘러넘쳤고, 그러면 사람들은 너무 늦기 전에 내 호기심의 싹을 도려내려고 했다. - P46
하시딕 사트마 유대인이 입는 독특한 옷은 내부자와 외부자 모두에게 두 세계 사이에 깊은 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선생님은 늘 말슴하셨다. "동화(assimilation)가 홀로코스트의 원인이었어요. 우리가 다시 주변과 섞인다면 신을 배신한 벌을 받게 될 거예요." - P53
과거 유럽에서 할아버지의 가족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살지 않았다. 그들은 극단주의자가 아니었다. 영어로 된 책을 읽거나 붉은 색 옷을 입는 것을 금지한 사람도 지금의 렙베이다. 렙베는 우리가 외부와 동화되지 못하도록 철저히 고립시켰다.
나는 내가 절대로 대학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 공동체에서는 교육은 아무 소용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교육은, 그리고 대학은 윌리엄스버그 밖으로 나가는 길이자 문란함으로 이어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 P112
나는 힘을 간절히 원했지만 그 이유는 다른 사람을 내게 복종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주인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 P122
수년간 나는 양쪽 세계에 한발씩 들여놓은 채 저편으로 넘어갔다가 내 안에서 위험을 알리는 경고 벨이 울리면 몸을 돌려 달아나기를 반복했다. - P159
공포가 있던 자리에 분노가 차올랐다. 누구를 향한 분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겪어야 했던 그 모든 부당함이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모두 다 내 탓이라고 비난하는 세상에 신물이 났다 - P240
끔찍한 범죄자에게도 이토록 무분별하게 적용되는 측은지심이라니, 얼마나 관대한가? 바로 이 무차별적인 사랑, 정당하지 않은 사랑이 하시딕 유대인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처벌은 하늘에 맡기고 우리는 그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데 힘쓸 뿐이다. - P263
불현듯 내가 이방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자립은 향한 아주 작은 발걸음에도 대가가 따랐다. 앞으로 얼마나 큰 풍파가 몰아칠지 가늠조차 힘들었다. - P287
최악을 겪고나니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용기가 솟았다. 더 이상 불안하지도 불확실하지도 않았다. 내게는 매달릴 과거가 없었다. - P318
나는 내 아들에게 백지에서 시작할 기회를 주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내 경험에 영향받기를 원치 않으며, 두려움이나 혼란 없이 세상을 탐험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내가 꿈꾸던 어린 시절을 아이가 누리고 있음에 감격한다. 설사 아이가 자라서 랍비나 탈무드 합자가 되기로 결심하더라도 그 선택은 스스로 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모든 차이를 만든다. - P326
나는 쉬울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동화 같은 결말을 꿈꾸지 않았기에 버틸 수 있었다. 행복은 우리가 찾아다닐 때는 꽁꽁 숨어 있다가 전혀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한다. 나는 베를린에서 행복을 찾았다. (...) 베를린은 하시딕 및 정통파 유대인 공동체를 떠난 사람을 비롯하여 온갖 종류의 망명자와 도망자로 가득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베를린이라는 도시 그 자체다. 모래와 늪 위에 건설되어 누구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도시라고 주민들이 농담 삼아 얘기하는 이곳은 스스로 자신의 뿌리를 뽑은 사람과 남에게 뿌리 뽑힌 사람들이 함께 살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이다. - P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