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장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5
천희란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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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PIN 045

나의 이야기는 K의 죽음에서 시작되었으며 K의 죽음으로 끝난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누구도 두 번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p.9

과연 저 문장은 무슨 뜻일까. 가만 읽어보면 참 궁금한 문장이다. 한 여자가 있다. 하는 일마다 적응을 못하고 집에서는 눈치 먹어가며 살고 있는 한 여자. 기차를 탔던 어느 날 옆자리에 노신사가 와서 앉았고 잠깐 여자의 전화를 빌려 쓴다. 얼마 후 여자는 뉴스를 보다 유명한 소설가 K가 화재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그것은 자살이었다. 충격적인 건 K는 얼마 전에 기차에서 자신의 전화를 빌려 쓴 그 신사였다는 것이다. 더 충격적인 건 K가 얼마 후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의 인생을 훔친다면 그것은 제법 공정한 거래이지 않겠습니까? p.39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는 이 여자에게 제안을 한다. 자신은 계속해서 글을 쓸 것이고 얼굴과 이름을 빌려주면 그로 인해 얻을 부와 명예는 당신이 모두 가져도 좋다고. 당신의 인생을 바꿔주겠다고. 그렇게 여자는 '전희정' 이라는 소설가가 되었고 K와 여자는 서로의 인생을 맞바꾼 채 한 공간에서 철저히 개인적인 삶을 살게 된다. 15년 후 K는 진짜 죽음을 맞이하고 모든 것이 미리 계획된 듯 구차하고 골치 아픈 일련의 과정 없이 죽음은 정리된다. 이야기는 그렇게 K의 진짜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한편 K의 딸은 K의 딸이라는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그림자 속에서 소설가가 되었고 교수도 하고 있다. 어느 날 누군가가 K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이 잔뜩 적힌 종이 뭉치를 가져다 놓았고 CCTV로 확인한 순간 그게 소설가 '전희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이야기는 그렇게 K의 딸 '손승미'와 '전희정'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줄거리를 굉장히 많이 말했지만 이건 초반에 이미 다 오픈되는 스토리다. 굉장히 흥미로운 사람 K, 그리고 그의 죽음은 몰입할 수밖에 없다. 특히 먼지처럼 치워지는 그의 준비된 장례는 이 소설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다. 너무도 감정이 결여된 의식이어서 으스스할 정도지만 오히려 이런 사후 처리 방식이 굉장히 깔끔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 누구도 하지 않나? 죽으면 다 무슨 소용이냐 하지만 너무도 준비되지 않은 내 죽음 이후에 따라오는 구차한 현실은 생각도 하기 싫다. K의 딸로 살아가야 하는 '손승미'의 복잡한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았다. 가족이 있음에도 홀로 예술의 길을 걸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어쩌면 너무 사랑해서일지도 모른다. K의 딸이라는 세간의 선입견에 반발할수록, 아버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해명하면 할수록 더욱더 끈질기게 연결될 수밖에 없는 현실 같은 것들. 그런데 나는 이 이야기들을 좀 더 들려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K의 이야기나, K가 그런 일들을 계획하고 준비한 것에 대해서, 또 전희정과 손승미의 일들 말이다. K의 죽음으로 준비되지 않은 자유를 누리게 된 '전희정'이 홀로 감당해야 할 삶도 많이 궁금했다. 더 긴 장편이었어도 충분히 늘어지지 않고 재밌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계속했다. 흥미로웠던만큼 아쉬움도 큰 것 같다. 내가 더 듣고 싶어서. 작가님이 또 장편을 써주길 바라본다.


* 도서지원

* 아침서가 - @morning.bookso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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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2023-03-20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요책 있는데..아직 안 읽었는데..
아침서가님 덕분에 저두 오늘부터 읽어봐야겠네요~고맙습니다.항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