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가지고 싶은 문장들 - 책 숲에서 건져 올린 한 줄의 힘
신정일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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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할 것과 근심하지 말 것을 분별케 하소서

조용히 앉아 있기를 가르쳐 주소서   

 

 

 

T.S 엘리엇의 <성회 수요일>  의 한 대목이 두번째 명언으로 등장한다. 에세이 서적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토록 가지고 싶은 문장들>은 한 권 자체가 근사한 명언집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인문학서적이었다. 사랑에 서툰 사람들을 위한 카프카의 현명한 충고나 짧은 인생을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한 충고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한 대목과 함께 나열되어 있기도 했다. 왠만큼 잡학다식한 사람과 대화하는 것보다 홀로 이 책을 읽는 쪽이 훨씬 더 유용하리라 여겨질만큼 알이 꽉찬 옥수수마냥 읽을거리가 가득한 책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읽으면서 계속 신이나 있었더랬다.

 

정보나 지식만 실려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고운 시집의 시어처럼 다가왔던 에우리피데스의 문장은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유명한 광고 카피 한 줄 보다 더 멋드러진 것이기도 했다.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다운 가을을 가지고 있다..."라니. 프랜시스 베이컨은 이 글을 인용하여 젊음과 아름다움에 빚대어 이야기했다는데 비단 그 내용은 모르더라도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마음은 이미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워지기 충분했다. 그에 반해 수수께끼 같으면서도 언어도단 같이 느껴지는 말도 있었는데 바로 박지원의 <영대정잉묵>에 등장하는 말이 그러했다.

 

P94  세상에서 떠들어대는 '쓸모 있는 사람'은

        반드시 쓸모없으며, '쓸모없는 사람'은

        반드시 쓸모 있는 사람입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오묘하게 헷갈리는 이 말을 앞에 두고 밥알 씹듯 곱씹어보았는데 아직 이 말이 전하는 의미를 100%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단순히 사람이란 겪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라고 결론내리기엔 뭔가 덜 이해하고 지나치는 말 같아서 포스트 잇에 써서 책상 앞에 붙어놓고 자주자주 보며 그 의미를 되새겨 보려 한다. 이해될때 즈음하여 떼 내려고 벽에 붙여둔 포스트 잇이 한 10장 쯤 되는데, 이 문장도 그 벽에 더해졌다. 오늘부로-,

 

하지만 모두 어려운 말들은 아니었다. 카를 힐티의 <행복론>에 등장하는 "적은 나의 좋은 벗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적은 차라리 좋은 자극제이기 때문이다" 라는 말은 정말 쉬웠으니까. 그러니 지레 겁먹고 어렵겠다 싶어 이 책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간혹 책을 읽다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과 마주할 때도 있다. 그러면 곁에 두고 짬짬이 펼쳐 그 대목이 이해가 될때까지 읽고 또 읽으며 문장을 되새김질하는 즐거움에 빠져든다. 문장 하나가 수수께끼보다 훨씬 재미나다. 나라는 독자에겐. 장 자크 루소의 글처럼 나는 의욕껏 배우면서 늙어갈지도 모른다. 가르치는 뿌듯함보다는 배우는 기쁨이 두 배는 더 컸다. 언제나.

 

<그토록 가지고 싶은 문장들>은 두 번 나누어 읽은 책이다. 처음에는 애벌읽기처럼 페이지 윗단의 명문장들만 주르륵 넘기며 읽었고 두번째는 문장+내용을 두루 살피며 읽었다. 독자에 따라 나누어 활용해도 좋겠고 에세이처럼 읽어도 좋겠지만 분명한 것은 읽을거리들이 다른 책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내용들이라 참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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