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에서 온 소녀 - 잃어버린 왕국
이미희 지음 / 하루헌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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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소녀가 묻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연쇄살인이야?", "누가 그랬냐?" 라고 말할테지만, 2007년 경남 팡녕군 송현동 가야 고분군 15호분에서 발견된 열 여섯 소녀를 두고 사람들은 그저 "으응. 순장이구나"하고 넘어갔을 뿐이다. 아무리 삶의 시간이 지금에 비해 짧았던 시대라고 해도 분명 이 소녀가 삶을 접기엔 열 여섯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짧고도 짧았는데. 채 다 자라지도 못하고 타인에 의해 삶을 끝내야했을 그 시대 소녀들에게 조의를 표하며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보랏빛 표지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성장판이 채 닫히지 않았고 사랑니도 발달하지 않았던 소녀는 키 153센티미터 가량의 예쁘장한 소녀였다. 송현동 고분에서 나와 '송현'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지만 그 시절엔 예쁘게 불리던 다른 이름도 있었을 터였다. 이름조차 없이 무덤 주인의 안쪽 벽에 묻힌 소녀. 그 소녀가 살았던 비사벌국은 555년에 신라에 병합된 것으로 추정된 국가로 가야는 열 개가 넘는 나라가 통일되지 못한 채 망한 망국의 나라였다.

 

경남 김해의 구야국(가락국), 경북 고영의 가라국(대가야), 경남 함안의 안라국, 창원의 탁순국, 마산의 골포국, 고성의 고자국, 사천의 사물국, 하동의 다사국 등 많은 가야국 중에서 "빛 뜰"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조용한 나라였다. 소설 속에서 '송현이'는 송이로 재탄생했고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이모의 사랑이야기가 덧입혀지면서 이야기는 다소 달달한 스토리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다섯 사람이 모인 비밀은 오래 갈 수 없었다. 나라의 역사를 대나무에 적던 태자는 정혼녀와 헤어지고 적국 신라의 여인과 혼인해야 했으며 고위 관리를 지낸 명문가의 딸은 노예와 도망갔다는 불명예스러운 소문과 함께 추방당해야했으며 이들 모두는 제사장이 된 친구의 우정을 잃어야 했다.

 

영혼을 팔아 친구들을 고발한 남자의 마음 속 사랑. 그 삐뚤어진 사랑은 비단 그 다섯의 운명만 바꾼 것은 아니었으니 신녀가 된 정혼녀의 앞에 사촌이자 아주 오래전에 추방당했던 명문가의 딸이 나타났을 때 그 아이는 가족을 잃은 '송연'이라는 소녀로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비사벌의 마지막 왕이 죽었을 때 이모인 신녀와 함께 묻혀 1500년이 흐른 뒤 비교적 온전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났다. 아. 그래도 너무나 짧다. 어린 소녀까지 묻어야 했을까. 순장을 행한 나라가 우리네 선조뿐만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죽은 사람의 저승길에 산 사람을 동반한다는 것은 어쩐지 너무나 잔인한 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소설이 아무리 아름답게 마무리 되어 있어도. 생각은 심장 곁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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