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 파라오의 사랑과 야망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50
에디트 플라마리옹 지음 / 시공사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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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의 여왕이다. 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첩이 사는 알렉산드리아의 호화 별채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어딘지 모르게 이국스럽게 느껴진다. 이집트 정복후 알렉산더 대왕이 자신의 이름을 붙인 알렉산드리아에서 클레오파트라라는 그리스식 이름을 받은 이집트의 여왕은 마케도니아 왕조의 가문 출신이었다.

 

클레오파트라 라는 그리스식 이름은 "아버지의 영광"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져 있다고 한다. 세계의 무역항이었던 알렉산드리아에서 나고자란 여왕은 그래서인지 지적이면서도 예술적인 면모를 두루 갖추며 성장할 수 있었다. 당대 지식인들이 오고 가는 곳에서 자란 그녀의 시야가 탁 트일 수 밖에 없음은 아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마레 노스트룸)이라 부르던 로마에게 이집트는 풍요로운 곡식창고였다. 그리스 국가 중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이면서 강한 왕권으로 귀속되어 통제하기 쉬운 나라. 의붓 언니와 첨예하게 대립하던 파라오가 승하하자 열 살짜리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아내가 되어 통지의 전권을 잡은 여왕은 18세의 어린 나이로 부국을 호령하며 지혜롭게 정치를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독서, 대구, 기사, 천문학, 의학 수업을 받아온 클레오파트라는 알려진 미모보다 그 품격과 우아함, 아름다운 목소리에 대한 칭송이 자자했는데, 지금은 그녀의 육성을 들을 수 없지만 아마 배우 이영애 같은 차분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상냥하게 대하며 그 매력을 발산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저 아름답기만 했다면 자칫 천박하게 보일 수도 있었을 염문 속에서도 위엄과 권위를 지켜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야심차고 지혜로웠던 어린 여왕은 그렇게 자신의 매력을 십분 어필하며 로마의 권력자들을 한 명, 한 명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나갔다. 우리에겐 비비안 리나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통해 익숙한 클레오파트라의 이미지가 지금의 해석을 입는다면 과연 어떤 배우의 모습일지 사뭇 궁금해진다. 칼로 인한 자결인지 뱀이나 독에 의한 자결인지 그 죽음조차 신비스러운 여왕의 무덤은 아직 발견되어 지지 않아 그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산업이 이만큼 발전하고 저 먼 우주 달나라까지 다녀오는 시대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역사 앞에서는 눈 뜬 장님에 불과했다.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 같은 희대의 영웅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도 후세에 이르기까지 그 아름다움을 칭송받고 있는 클레오파트라. 그녀가 잠든 장소는 과연 어디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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