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고도를 걷는 즐거움 - 이재호의 경주 문화 길잡이 33 걷는 즐거움
이재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전세계적으로 천년의 역사를 가진 왕조는 '신라'와 '로마뿐이란다. 이 놀라운 사실을 나는 이제껏 알지 못했다. 그만큼 역사에 눈과 귀를 열어 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책이나 강연에서도 언급된 적이 없어 헛똑똑이로 지내왔던 것이다. 그저 수학여행지로, 가족여행지로만 여겼던 경주를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준 책이 [천년고도를 걷는 즐거움]이라는 책이었다.

 

기행작가라고 소개된 저자 이재호는 전공인 미술과 역사를 접목시켜 1987년부터 유홍준 교수와 전국의 문화 유산을 기행했던 이였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초대 총무였던 그에게서 듣는 경주의 이야기는 그래서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p.5 

   경주가 자궁이라면 울산은 무릎이고 부산은 발이다. ...

    그래서 울산, 부산에서는 오늘날 우리의 다리 역할을 하는 현대 자동차, 르노 삼성차가 만들어진다...

    또한 대구는 젖가슴에 해당되는데 유방은 섬유질로 되어 있다.

    그래서 대구는 섬유산업이 발달했다.

    대구와 일직선상에 놓여 있는 전주도 닥나무의 섬유질인 한지와 서예가 발전했다.

    머리에 해당하는 서울, 평양에 냉정한 이성만 흐르는 것은 따뜻한 가슴이 없기 때문이다.

 

 

책머리 서문에 기재된 이 시작 글이 머리를 울리고 가슴을 울렸다. 풍수적으로, 지리학적으로 풀어낸 페이지의 설명만으로도 그의 이야기가 그간 읽어온 기타 서적들에서 풀어낸 이야기와 얼마나 차별화될지 기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래서 그런거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여지게 만드는 페이지는 비단 시작페이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년의 역사 속에서 선덕/진덕/진성 세 여왕을 배출해낸 신라문화의 독창적인 면과 특이성. 신화를 통해 '박혁거세'나 드라마를 통해 '선덕여왕/미실'정도는 알려져 있지만 헌강왕, 효공왕,흥덕왕, 원성왕 등의 역대 수많은 왕들의 치세에 얽힌 그 역사적 스토리텔링이 어마어마하게 다양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예전에는 미처 관심을 두지 못했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왕이 묻힌 왕릉의 아름다움, 천년의 불교 문화 속에서 보존되었을 사찰들, 지금은 침묵하고 있지만 그 입을 트면 한국 답사 일번지가 되고도 남을 만큼 많은 문화 유적/유물들 앞에서 나는 그만 할말을 잃고말았다. 오늘의 삶에 묻혀 핏속에 묻혀 있었던 재미난 이야기들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내것화 되어 재미가 쏠쏠 붙는 책. 그래서 특별하게 남은 이 책의 저자가 쓴 칼럼이나 강연이 문득 궁금해졌다. 역사와 유적에 대해 학생들이 고민하고 관심을 가질만한 시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바쁘게 산 10대와 20대를 보내고 이제 겨우 숨돌릴만해져서 알게 되었기에 잃은 시간만큼 아쉬움도 클 수 밖에 없다.

 

경주 뿐만 아니라 저자의 입으로 듣는 우리땅 대한민국 곳곳의 역사 이야기가 책으로 더 출판되면 얼마나 좋을까.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함께 보는 관점에서 쓰여진 그의 이야기가 너무나 재미나서 자꾸만 목마름이 느껴진다. 역사 이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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