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도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토지]와 [김약국의 딸들] 이외엔 박경리 작가의 책을 읽어본 일이 없었다. 워낙 유명한 작가분이시기도 하지만 역사의 흐름을 두고 이만한 작가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존경스러워지는 분이기도 하지만 그냥저냥 텃밭을 일구고 사시는 어느 나이 많으신 할머니의 모습으로 기억되는 작가는 [토지]가 주는 그 강렬함으로 인해 다른 작품들을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든 분이셨다

 

대표작이자 당편 대하 소설인 [토지]는 시대상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면모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 그 캐릭터의 다양성만으로도 귀감이 되기 충분했지만 [상록수]처럼 교훈적인 가르침도 없지 않아 읽으면서 할머니의 옛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으로 읽게 된다. 자꾸만. [표류도] 역시 그러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야기는 의외로 올드하지 않게 느껴졌고 강현회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도 일기 시작했다.

 

강현회. 하류계층으로 살아왔다는 그녀는 부인이 있다는 상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상류계층 사람으로 살아온 상현. 아큐정전에 나오는 주인공 아큐처럼 자신이 그에 대한 마음을 품은 것에 대해 스스로조차 웃음거리고 바보라고 생각하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그래서 시작된 불륜을 사랑이라고 규정짓고 윤리의 틀을 넘어서 버렸다.

 

p.143 이 순간만은 영원일 수 있다. 아니, 결코 영원하고 바꾸지 않을 것이다

 

노동을 팔지언정 얼굴을 팔지 않는다는 그녀만의 자존심은 유부남과의 사랑조차 죄의식 없이 읽게 만드는 특별한 연애소설로 거듭나게 만들고 있었다. 포커스가 상현의 아내가 아닌 현회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불륜적 사랑은 가볍지도 또한 색이 바래지도 않았다. 타인의 눈을 의식하기 보다는 자신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여성. 물론 모두가 그러하다면 이 세상의 윤리적 질서는 타락으로 향할 것이고 여기저기서 무너진 가정 앞에 통곡하는 여인들이 넘쳐날 것이나 모두가 그런 것이 아닌 단 하나의 여성 현회를 허락한다면 이 소설은 생각보다 쉽게 읽혀질 것이다.

 

자존심보다는 인연을 선택한 여성. 어떤 잣대로 규정짓기 보다는 그녀의 선택만을 놓고 보자면 분명 현명한 여성임에 틀림이 없다. 길게 살 수도 없고 여러번 살 수도 없는 인생 앞에서 망설일 일이 무엇일까. 주인공을 이해하자면 여기까지도 이해되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은 표류도다. 물 위에 떠서 정처 없이 흘러감을 뜻한다는 그 제목. 선택은 있으되 머물지 못하는 그녀의 삶이 반영된 제목이 아닐까.

 

읽기전에는 그 무게감이 묵직하리라 생각했던 작품이 생각보다는 쉽게 읽혀져서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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