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척
안보윤 지음 / 문예중앙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건축한지 이십년도 더 된 원미 아파트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놈은 엄마인 변계숙을 살해하고 현장 검증 중이라고 했다. 문제는 놈이 인호의 형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운이 나빠 살인자의 가족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더욱 운이 나빠 피살자의 가족이 되기도 한다지만 살인자의 가족인 동시에 피살자의 가족이 되어버린 인호의 운은 얼마나 나쁜 것일까.

 

이 모든 시작의 발단은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고 인호로부터 파생되었다. 가족의 비극은 그렇게 막이 올려졌다.

 

P.26  형은 어머니를 졸라 아버지와 똑같은 팔토시를 사서 꼈다

 

고 기억할 정도로 형은 아버지를 좋아했다. 그런 아버지인 조기준의 죽음이 자살로 몰아지고 오공무역측에서는 17년간이나 성실히 근무해온 그를 공금횡령자로 매도해 버렸다. 결국 생활무능력자였던 엄마는 아들 둘을 데리고 이모가 사는 곳으로 야반도주했으나 그곳 역시 가장을 잃은 그의 가족들이 살아간 삶의 터전은 아니었다. 결국 검고 축축한 아버지의 죽음 뒤로 남겨진 세 사람은 형 인근의 희생으로 겨우겨우 먹고 살게 되었다. 보험금 수령. 자식을 팔아 보험금을 수령하고 먹고 사는 기생부모의 삶이 이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이 곳의 어른들은 그런 사람들이 태반이라고 했다.

 

스님과 절집에 사는 석문정 역시 다르지 않았다. 타인의 시선에 익숙한 그 아이가 억양없고 나직한 말투로 말하는 서늘한 표정의 그 아이가 그곳을 탈출하던 방법 역시 알고 있는 그 방법 뿐이었고 그나마 가장 성공적으로 탈출해나갔다.

 

 

P.227 한 명은, 한 명 쯤은 제대로 살아야 되지 않겠니

 

라는 어머니의 바램을 뒤로 하고 형을 반병신으로 만들어가면서까지 등떠밀려 대학에 입학한 인호는 스스로 날지 못하는 새였다. 소설이 슬프고 무서워지는 순간은 이제부터다. 죄의식 없이 가족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며 청춘을 허비하는 동생, 인호. 그런 인호를 위해 형 인근을 보험수탁자로 만들어가는 엄마와 떠나자는 문정의 손을 차마 잡지 못했던 인호가 저지른 살인의 의미. 소설은 가족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가장 큰 상처를 터뜨려내면서 슬프고 무섭게 독자를 몰아가버렸다.

 

이 소설은 슬프고 무서운 꿈이다. 어리고 가여운 사람들이 줄지어 걸어가는 슬프고 무서운 꿈이다

 

라는 저자의 소개글처럼 운이 나쁜 사람들이 가난과 마주한다고 모두 이렇게 살지는 않을텐데. 세상에는 이런 방법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어 슬프고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아닐까.

 

P233 너랑 네 엄마는 분명히 마귀야

 

마귀가 되고 악귀가 되어버린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삶이 너무나 구슬퍼 나는 소설을 읽고 나서 한동안 그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다 식어버린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냥. 가슴 속에 너무나 허해져버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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