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 송한나의 뮤지엄 스토리 -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황학동 도깨비 시장까지
송한나 지음 / 학고재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박물관은 죽은 자의 기록이 담긴 집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큐레이터 송한나의 소개를 받고 보니 박물관엔 살아있는 큐레이터와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록이 담긴 집이었다. 결코 그들은 죽지 않았다. 우리가 그들을 찾아가는 한.

 

통통하고 앳되고 어리게만 보이는 그녀는 의외로 당찬 모습으로 자신이 아는 박물관들이 어떻게 만들어져왔는지 전하고 있다. 때로는 슬픈 마음으로, 때로는 재미난 눈으로 구경하게 되는 박물관은 무덤 속의 부장품만 가득 채워놓은 곳은 아니었다. 세계 속엔 좀 더 다양한 박물관들이 세련되게 지어져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스토리텔링을 전하고 있다.

 

눈물 그렁그렁하게 구경하게 만든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삶의 기록이 담긴 곳이다. 초대 정대협 대표인 윤정옥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는 "꽃분이"라는 어린 시절 동무를 정신대 때문에 잃고 평생을 가슴아파하다 은퇴 후 정대협을 위해 여생을 바쳤다고 한다.

 

나는 알지 못했다.

위안부 할머니가 그림을 그릴 수 있음을. 그저 열두살, 열 다섯살 무렵에 일본에 끌려가 몹쓸 짓을 당하고도 평생을 숨어살아야했던 고통받은 여성의 모습으로만 기억되었을 할머니인데, 강덕경 할머니가 그린 위안소는 알록달록한 색채로 예쁘게 그려져 있었다. 줄서있는 일본병사들이 보이고 앉아 있는 어린 날의 자신의 모습도 그려져 있지만 그 슬픈 풍경이 화사하게 색칠되어 있어 더 슬프게 만든다. 인생에 있어 이처럼 꽃같이 예쁠 시기에 그녀는 전쟁터로 끌려갔다. 타의에 의해.

그림을 보면서 깨닫는다. 더 많은 것들을 꿈꾸고 이루고 누리고 살 수 있었을 그녀들의 인생과 하늘로부터 받은 재능에 대한 보상은 늦은 사과와 금전따위로 결코 메워질 수 없음을.

 

박물관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 세계인들에게도 알려져서 그들이 찾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홀로코스트박물관들처럼 알려져서 자신들의 만행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인들이 머리 숙여 사과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나는 알지 못했다.

반나절 만에 민간인 504명이 학살될 수도 있음을. 미군이 여성과 어린이, 노인이 전부인 손미마을 사람들을 학살했을 때 종군기자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다. 물론 그 사진이 있어 오늘날 밀라이 학살 박물관에 기록사진들이 전시될 수 있었겠지만.

 

사진이 실사이기에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예를 갖춘다고 바지를 꿰 입으며 나오는 노인의 사진 뒤에 바지를 다 꿰 입은 노인을 사살한 사진이 이어지고, 헬기로 공습하는 미군을 피해 바닥에 납작엎드려 동생을 감싸 앉은 꼬맹이 사진 뒤에 그들이 죽었는지 확인 사살까지 해대는 사진은 인간이 아니라 악마의 소행이라해도 믿을만큼 잔인한 행위였다. 그 기록들이 고스란히 담긴 박물관을 베트남 여행길에 꼭 들러봐야되겠다 싶어진다. 송한나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가슴아픈 역사의 기록을 모르고 지나칠뻔 했다. 숙연한 마음으로 둘러보게 되리라.

 

한군데 더.

이 책에 등장하는 박물관 중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은 "존재하지 않는 그가 존재하는 곳"이라고 소개된 셜록 홈스 박물관이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홈스가 톡 튀어 나올 듯한 곳이기에 더 궁금하고 솔깃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보통의 박물관은 살아있던 이의 기록이 담긴 곳이며 감탄하거나 숙연해지거나 둘 중 하나의 마음으로 둘러보게 되는 것과 달리 이 곳은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둘러 볼 수 있는 박물관이라 더 끌리는 곳이다. 홈스는 코난 도일의 작품 속 인물이다. 책 속 캐릭터가 실제 생가(?)처럼 꾸며진 박물관도 가지고 주소지도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근사하지 않은가.

 

 

큐레이터의 어원은 라틴어 "쿠라"라고 한다. "돌보다, 치유하다"라는 뜻이라는데 지하 전시실에 물이 고이면 양동이로 퍼내고 예산이 부족해 철물점에서 구입한 재료로 전시대를 직접 만들어야하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를 보면 딱 들어맞는 단어같기는 하다. 우아하게 보이지만 열심히 발을 놀려야하는 백조처럼 "큐레이터 송한나"는 전시를 준비하고 강의하고 박물관들을 소개한다. 더 사랑받고 알려지기를 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을 알기에 서평을 쓰면서도 그녀의 마음이 되어 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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