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 in 택시 - 인생에 잠시 쉬어갈 갓길이 필요할 때
브라이언 헤이콕 지음, 김수진 옮김 / 리더스북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택시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을 뒤로 하고...

 

 

택시를 탔다가 아주 곤란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갓 20대 중반, 이제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때가 의뭉스럽거나 융통성을 발휘하기보다는 그저 순수했을 무렵이었다. 이른 회식을 마치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는데 택시 기사가 불쾌하게 수작을 걸기 시작했다. 지금 같으면 다시는 승객을 상대로 수작을 걸 수 없게 똑똑하게 대처했겠지만 그때는 덜컥 겁이났다.

 

뉴스에서 봤던 흉흉한 택시 사고들이 머릿 속을 스쳐지나갔다. 돌연 흉악범으로 변하거나 어디 다른 곳으로 향하거나 공범이 있어 중간에 말도 없이 합승을 한다거나....별별 생각이 다 들어서 겁내다가 기껏 생각해낸 것이 휴대폰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유부녀 흉내를 냈었다. "자기야, 내가 0000번 택시를 탔는데 5분 있으면 집에 도착할테니 우리 애기 데리고 마중나와 있어." 당시 아파트 앞에는 어둡고 외져서 가끔 마중나온 가장들이 보이곤 했는데 그들이 생각났던 것이다.

 

뜨끔했는지 택시 기사는 더 이상 추근거리지 않았다. 다음날 회사에 가서 직원들에게 말했더니 한 여직원이 안전하게 귀가 시켜주는 단골 콜택시 번호를 알려주어 차가 생길때까지 그 콜택시만 이용했던 기억이 난다.

 

택시 하면 우선 그 기억부터 떠오르니 내게 택시는 아무 겁나고 무서운 공간이었다. 그런데 [템플스테이 in 택시]의 저자는 택시를 몰면서 인생을 운전하고 있었다. 만약 이런 기사님을 만났었다면 나는 택시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이미 저장 되어진 기억은 세탁할 수 없으니 아쉬울 따름이지만.

 

 

 

인생을 운전하는 택시 기사 브라이언 헤이콕....

 

템플스테이라는 단어가 끼여 있어 나는 저자가 택시를 타고 템플스테이를 다닌 여행기라고 생각했지만 이 책은 예상을 보기좋게 빗겨가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소설이 아닌데도 반전이 있다니 여기에서부터 저자의 유머와 삶의 여유를 맛볼 수 있어 미색의 이 책이 나는 한층 더 맘에 든다.

 

미국에서 태어난 브라이언 헤이콕은 불교 신자란다. 미국인 하면 대다수 크리스쳔인줄 알았는데 종교가 남다른 것도 특이했지만 그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었다. 모든 여행에 시작점이 있듯 그는 파산을 경험하면서 힘든 시기에 택시기사 구인광고를 보고 택시기사가 되었다.

 

 

그는 택시운전의 좋은 점에 대해 이렇게 토로하고 있다. 혼자 힘으로 일해야 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으며 힘들면 포기할 수도 있지만 노력한다면 일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고. 간혹 기차역 앞이나 공항 앞에 일렬로 죽 서있는 택시들을 보면서 그 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하루는 얼마나 답답할까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브라이언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해서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그가 말하는 것은 비단 택시운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일이든 노력만 한다면 일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 그런 깨달음을 페달을 밟을때마다 떠올리는 그는 얼마나 잘 수련된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이 승객들과 부딪히며 겪어온 에피소드로 엮어진 것들이 아니라 운전하며 매순간순간 깨닫는 진리에 관한 것이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진리의 길을 뜻하는 다르마 로드를 매일 달리는 그는 내일도 승객을 만나면서 인사를 건넬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어디로 가시죠?"

 

이 단순한 물음이 그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인지 알고나니 단순히 목적지를 묻는 물음으로 들리지 않았다. 때로는 교통체증 속에 갇히고, 밤늦은 시각 주간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인생을 채우는 그가 묻는다. 어디로 가고 있냐고. 인생에서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나요? 올바른 길인가요? 가고 싶은 길인가요? 그가 묻는 물음들이 내겐 그렇게 의역해 들리면서 대답 전에 여러 답들을 떠올려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나는 이미 세상의 정답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버렸으므로.

 

불교는 그에게 명상이며 화두이며 인생이어서 메마른 삶을 수행 삼아가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었다. 오늘에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잠시 쉬어가라하면 갓길에서 쉬고 열심히 달리라 하면 열심히 달려가면서.

 

나는 그에게서 제대로 달리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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