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장 속의 아이
오틸리 바이 지음, 진민정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문제작 [룸]은 어린 여자를 가두어놓고 성폭행하며 종국엔 아이까지 낳아 기르게 만든 파렴치한에게서 낳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아이를 옷장에 가둬 키우는 여자와 그 아들에 관한 충격적인 내용이 담긴 소설이었다. 두 가지 충격요소가 결합해서 웃을수도 울 수도 없는 소설을 완성해냈는데, 소설에서 아이를 가두는 행위는 "보호"가 목적이었다면 또 다른 문제작 [벽장 속의 아이]에서 아이를 가두는 행위는 "학대"를 목적으로 행해진다. 

새 남자에 미친 엄마가 제 아들이 손찌검 당하고 굶겨지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물론 남자가 떠날까봐 아이를 벽장에 가두고 자물쇠를 채워버리는 페이지에선 손이 부르르 떨리기까지 했다. 남자가 뭐라고 제 뱃속에서 열달동안이나 소중이 담았다 세상에 꺼내놓은 착한 아이를 세상과 단절시켜버린 것일까. 그들은 다섯살난 아이를 벽장에 가둬둔채 레스토랑에 가고 소리내어 웃고 친구들을 초대해서 만찬을 즐겼다. 인간이하의 상식을 가진 그들에게 부모라는 이름은 사치였다. 

또한 남의 시선을 의식해 아이에게 소리를 내지도 못하게 윽박지르고 그나마 잊어먹기 일쑤인 음식을 가끔 넣어주며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고 종용하며 아이가 사랑받고 자랄 수 있는 환경인 할머니의 집으로 보내는 것도 원천봉쇄했다. 남들이 욕할까봐.  아이가 그저 벽장에서 조용히 죽어주기를 바랬을 것이다. 

이렇게 보호받지도 사랑받지도 못한 채 서시 파리하게 말라가다 걷는 것조차 제 의지대로 해내지 못하게 된 가엾은 아이의 이름은 "장"이었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트위스트]만큼이나 딱한 아이 장은 그렇게 벽장 속에 갇힌 채 9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낸다. 컴컴한 벽장 속에 갇힌 9개월 동안 아이를 공포스럽게 한 것은 혼자라는 사실과 벽장 속에 갇힌 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새아빠 폴과 친엄마 데니스 사이에 딸이 생겼지만 그들은 "장"에 대한 학대를 멈추지 않았고 결국 할머니와 이웃사람들의 끊임없는 수사와 제보로 출동한 경찰과 아동복지국에 의해 장은 9개월만에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자신들의 자식이 생겼지만 부모의 자격을 이미 예전에 박탈당한 짐승같은 부부는 장이 구해지는 순간까지도 뉘우치지 못하고 사람들이 난리를 떨어댄다고 소리소리 지른다. 이 말도 안되는 소설이 실화라는 사실에 나는 잠시 숨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전직 기자출신인 작가 오틸리 바이가 1982년 프랑스 전역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던 실화 보도를 바탕으로 소설을 쓴 이유는 다시는 지구상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건들이 그러하듯 아동학대 역시 너무나 쉽게 잊혀진다. 

양심의 시선보다 남의 시선을 더 의식해서 아이를 꼭꼭 숨겨두고 학대했던 부부의 이야기가 소설로라도 남아 읽는 순간만큼이라도 독자들의 마음속에 다시 불을 지폈을면 하는 마음이 강하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자격증이나 수료증처럼 부모의 자격도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획득하는 것이었다면 세상의 버려지고 학대받는 아이들이 조금쯤은 줄어들 수 있었을까. 하늘이 하는 일에 대해 인간이 왈가왈부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소재의 소설을 대할때마다 마음 정중간엔 구멍이 뻥 뚫리는 것만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