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박완서 외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창간 55주년 [현대문학] 기념 소설집에는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가득했다.
박완서, 윤후명, 조경란, 양귀자 작가를 비롯한 총 아홉 작가의 작품을 한꺼번에 읽어볼 수 있어 좋았다. 마치 원스톱 쇼핑몰에 윈도우 쇼핑 온 것처럼 마음껏 골라 읽을 수 있는 즐거움.
책이 주는 즐거움 중의 하나에 빠져 시간을 보낸다.

처음부터 읽기. 는 왠지 식상하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꼭 그래야 하는 작품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읽기보다는 마음대로 읽기를 행하고 있다. 추리소설이나 일반 소설이야 처음부터 읽어야 마땅하겠으나 단편 모음집이나 자기계발서, 경영서, 패션뷰티 서적 등등은 굳이 처음부터 보지 않아도 좋을 종류의 책들이니까.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라는 근사한 제목의 책도 좋아하는 작가부터 골라 읽기 시작했는데, 박완서 작가의 글이 제일 먼저 있어서가 아니라 9명의 작가 중 가장 좋아하는 작가여서 골라 읽기 시작했다. 

살면서 더 많은 작가들을 알게 되겠지만 유명 작가 중 몇몇은 엄마 때문에 좋아하게 된 케이스다. 법정 스님의 글은 중학교 시절 시험 전인데도 불구하고 꼭 읽어보라고 일부러 책상에 스크랩해두셨고, 이해인 수녀님의 책은 언제나 선물해주셨으며 브론테 자매의 책들은 너무 이르긴 했지만 초등학교 저학년때 책읽으시는 엄마의 어깨너머로부터 조금씩 맛을 들이기 시작했었다. 그 외 몇몇 작가들이 더 있긴 하지만 책읽는 엄마는 책읽는 습관을 고스란히 물려주신 것은 물론 당신이 좋아하는 작가까지 딸에게 전해주셨다. 

언제부턴가 박완서 작가의 글을 곁에 두시는 엄마. 마흔의 나이에 처녀작 [나목]을 쓴 여류작가의 글 어느 부분이 엄마를 매료시킨 것일까. 엄마는 그녀의 글이 일상적이면서도 잔잔하지만 뼈대가 굵어 좋다고 하셨다. 

엄마가 좋아하는 작가의 "녹두알만한 얼굴"은 그래서인지 제목부터가 참 정겹게 느껴졌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한번도 녹두알을 본 적이 없어 가히 상상이 가진 않지만 녹두알 만한 얼굴이란 작다는 의미 말고 또 다른 이중적 의미가 숨어 있을 것만 같다. 아버지가 없었던 어린시절부터 넉넉해지기까지의 일대기와 맹모삼천지교형 엄마를 추억하는 작가의 성장기, 그리고 "왜 하필 소설이었을까"라고 되뇌어도 좋을만큼 어느 새 쓰기가 시작된 소설까지. 작가의 삶이 몇 장 속에 빨래개듯 개켜져 있었다. 

누군가의 삶이 전기나 수필, 인터뷰가 아닌 소설의 형식을 빌어 드러나는 것도 남달랐지만 남편을 잃고 아들을 잃고, 그러나 여전히 살아 글을 쓰는 작가의 심정을 함께 멈추어서 손잡는 기분으로 탐독했다. 독자이지만 이해하고 싶어진 그녀의 삶. 

수록된 다른 작품들도 좋았지만 "녹두알만한 얼굴"이 가장 인상깊게 남은 까닭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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