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미가의 붕괴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책을 읽기도 전에 표지 일러스트에 매료되는 것은 매우 오래간만이었다. 장 자끄 상뻬의 개구지지만 귀여운 표지를 보고 넋을 잃었던 것처럼....

하지만 [시미가의 붕괴]는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었다. 어딘지 모르게 삐딱해보이지만 화려한 색감이 돋보이는 그런 그림이었다. 그래서 눈길이 갔다. 표지가 헤드라인화되어 있는 것 같아서... 이 책은 내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처음부터 기대감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녹아간다/시미가의 붕괴/죽음과 밀실/하얀 아침/주사위, 데굴데굴/오니기리, 꾹꾹/나비/나의 자리/ 옛날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 까지 총9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이 책엔 저자의 말이나 번역자의 말이 전혀 실려 있지 않다. 그것 또한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 서론도 모자라 책을 쓰면서...라는 끝페이지까지 저자의 글이 장식이 되고, 그 다음에 번역자의 번역후기가 실려 있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 페이지들을 몽땅 없애버린 듯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미가 반감된 부분은 전혀 없지만.

9편의 단편 중에 가장 눈길이 가던 이야기는 제일 먼저 시작되던 이야기였다. 
[녹아간다]는 좀 독특한 이야기였다. 짧은 단편 드라마가 되어도 좋을만큼의 이야기였다.

방에 틀어박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타입인 미사키는 올봄부터 건강식품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녀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변두리에 아파트를 얻고 독립했다. 하지만 독립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야기 상대가 없어서 쓸쓸했던 것이다. 회사에서 친하게 지낼만한 동료도 없다. 점장 이하 네 명이 남자, 여자는 다섯 명인데 다들 서른이 너머 미사키와는 나이차이가 좀 졌다.  그 곳에서 미사키는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 주문을 기입하는 일을 한다. 게다가 괴롭히는 상사까지 포진해 있다. 그런 미사키에게 탈출구가 되어 준 것은 어느날 편의점에서 고른 만화잡지였다. 미사키 가스미. 자신과 같은 성의 작가는 "초상화"를 그려놓은 듯 자신의 직장동료들을 똑같이 만화 속에 그려놓았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미사키의 비밀스러운 작업은...

누군가와 소통없이 외롭게 혼자 사는 여자의 독백은 위험하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오려진 종이캐릭터들이 가득한 방안에서 혼자 웃으며 말하는 미사키의 모습은 무섭기까지 했다. 짧지만 아주 강렬한 단편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