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의 정원
다치바나 다카시.사토 마사루 지음, 박연정 옮김 / 예문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다치바나 다카시가 궁금하던 차에 마침 반값 이벤트도 하길래 읽게 되었는데 결론은 '쓰바, 출판사의 간계에 낚였다' 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유명세를 빌어, 독자야 책을 제대로 읽든 말든, 그저 좀 잘 팔리는 작가다 싶으면 숟가락 몽둥이까지 다 끌어다가 돈 좀 벌어보자는 심산이 아니고서야 우찌 이런 책을 낼 생각을 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아님 한국 독자의 수준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했거나 그도 아님 내 수준이 평균 이하던가.  

 

여기서 추천된 책의 팔구십프로 이상이 우리 나라엔 출판도 안 된 일본책들이고, 또 그 책들을 거론하면서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일본 근/현대 정치,사회 분야 등에 대한 정보나 이해 없이는 도저히 알아 먹을 수 없는 내용들인데 도대체 일본내에서나 의미가 있을 법한 두 지식 부르주아들의 그들만의 수다에 '지의 정원'이라는 거창한 제목까지 붙여 한국 독자들을 꼬여내는 출판사의 뇌구조는 도대체 뭐꼬? 하긴 뭐 남들은 잘들 이해만 하는데 왜 너만 지랄이냐든지, 왜 잘 알아보지도 않고 덥석 샀냐든지, 도대체 뭘 기대했냐든지, 다양한 독자들의 욕구 충족이란 차원에서 이런 책도 있어줘야 되지 않겠느냐고 한다면 뭐 할 말 없고. 

 

물론 추천 도서들이 구지 한국에 출판되지 않았더라도, 혹은 언급된 내용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하더라도, 가히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는 두 지식광들의 고차원 대화 속에, 뭔가 건질만한 보석같은 꺼리들이 있지 않겠냐 할 수도 있겠다. 그래 그럴 수 있다. 그나마 다치바나 상의 이야기엔 그런 반짝반짝한 부분도 몇 군데 있긴 하다. 근데 사토상의 경우는 뭐랄까. 스스로 자신을 철두철미한 반공,반 혁명주의자라 밝힌 이 깐깐한 아저씨의, 뭐라고 딱 꼬집을 순 없지만 시종일관 나의 신경을 거스리는 좀 아는 자의 젠체 하는 태도는 도무지 맘에 들지 않으니, 이는 못난 자의 괜한 자격지심인가. 아님 콧대 높은 지식인의 숨길 수 없는 스노비즘인가.   

 

아무튼 이 책에 씌어진 한 문장이 마침 내 심정과 딱 맞아 떨어져 적어본다. 

' 저에게는 왠지 위화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왓칭 Watching - 신이 부리는 요술 왓칭 시리즈
김상운 지음 / 정신세계사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시크릿류 책들의 퀼트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 마디로 짜집기랄까.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저자는 인간의 영원한 숙제인 고통의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이 책에 밝힌 참고 문헌 외에도 엄청난 양의 서적과 관련 자료를 찾아 헤맸음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기자 근성이 보이는 듯 -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하는 독자를 염두에 둔 듯, 여러 분야에 걸친 각종 실험과 사례들을 마치 자, 이래도 못 믿겠냐는 식으로 줄줄이 줄줄이 제시해 준다. 이런 방대한 자료 수집이 독자 설득과 신뢰도 면에선 장점이 될 수도 있겠으나, 나에겐 마이너스로 작용했는데, 이런 이유에서다. '왓칭'이라는 새 메뉴로 개업한 식당이 있길래 한 번 먹어볼까 하고 갔는데, 막상 그 새 메뉴라는 것이 잘 나간다는 다른 식당의 메뉴들을 적당히 섞어서 예쁘게 차려낸 것일 뿐이란 걸 알았을 때 느끼는 실망이랄까. 

 

야심차게 기획한 대표 메뉴가 '왓칭'이긴 한데, 이름만 좀 달라졌지 사실 뭐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핵심은 제 삼자가 되어 자기 자신을 바라보라.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신 속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생각들과 감정들을 찬찬히 깊게 바라보면 - 물론 애정을 가지고 아이를 다루듯 따뜻한 시선으로- 부정적인 감정들은 곧 사라지고 -수명이 90초- 긍정적 심상화는 좀 더 효과적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근본적으로 '왓칭'의 개념 자체가 저자 자신의 독창적 결과물이라기 보다, 기존 개념들 속에서 뭔가 브랜드가 될 만한 꺼리를 만들어 내려 했기 때문에, 왓칭이라는 틀을 통해 인용된 실험과 사례들을 재해석했을 뿐, 그 개념 자체가 파급력있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이 책만의 차별성이라 한다면, 다른 저자들이 주장한, 잠재의식, 우주의 마음 등이 여기선 양자역학에 근거한 '미립자'로 치환되며, 심상화시 최종 결과만을 그리라는 <시크릿>과 달리, 달성 과정도 구체적으로 떠올리면 자기 의심이 해소되어 더 좋다고 한다. 또 '아미그달라'에 대한 설명과관련 사례로 든, 면접관을 사로 잡는 법, 설득의 방법등은 상황을 유리한 쪽으로 이끄는 얄팍한 테크닉만 알려주는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이 들어 이질적이긴 했지만, 처음 접하는 부분이라 신선했다. '아미그달라'의 스위치를 얼마나 잘 꺼주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부가 되는 세계 명화 공부가 되는 시리즈
글공작소 지음 / 아름다운사람들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대별, 작가별로 대표작이 실려 있고, 관련 이야기나 미술 용어등에 대한 설명이 간간이 덧붙여져, 나같은 미술의 문외한이라면 어른도 재밌게, 유용하게 읽을 수 있을 듯. 더구나 반값으로 샀으니 가성비 최고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니아를 위한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아서 코난 도일 외 지음, 정영목, 정태원 옮겨엮음 / 도솔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일단 수록 작품수가 42편이다. 깨알같은 글씨에, 베개로 써도 손색 없는 책 두께. 작품 편수가 너무 많아 언제 이걸 다 읽으랴 싶었는데, 뒤엔 살짝 지루하기도 했지만 뭐 단편집이라 그런지 생각보단 잘 읽혔다. 미스터리에 관심 있는 입문자라면, 각종 요리들의 맛만 살짝 본 후, 본격적으로 자기 입맛에 맞는 장르를 결정하는데 도움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늘 그렇듯 잘 차려진 열 뷔페가 제대로 된 일품요리 하나만 못하다는게 개인적 지론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야기 자체에 목마르던 차에, 그야말로 물리고 질릴때까지 이야기와 이야기 그리고 또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푹 담겼다 저려져 나왔으니 나름 만족이다.  

 

요즘엔 드라마나 영화가 좀 인기 있다 싶으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미스터리의 요소를 꼭 포함하고 있더라. 하다못해 일일 연속극 마저도 누가 친부일까, 누가 죽였을까 등 미스터리를 깔고 간다. 정작 내 삶에 미스터리가 개입 되면 그 자체로 고통과 공포겠지만, 미스터리가 된 남의 삶은 재밌는 오락꺼리가 된다.   

 

미스터리 걸작선이라 하긴 하는데, 내가 매니아가 아니라 그런지 정말 걸작들인지 아닌지 감은 잘 안 온다. 개중엔 지금 보면 반전이나 결말이 뻔한 시시한 작품도 있고 - 물론 그런 작품들이 오늘날 수많은 추리물 혹은 아류들의 조상뻘이겠지 -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작품도 있지만, 뭐 전체적으로 나쁘진 않았다. 

 

개인적으론 살인이나 도난 같은 노골적 범죄보단, 평범한 일상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더 좋았늗데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으라면 <푸른 십자가> <금연 주식회사> <너기 바> <아일랜드에는 뱀이 없다> <살기 좋은 곳> 정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벌레
클라스 후이징 지음, 박민수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월
평점 :
품절


다 읽고 나니, 참 묘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표면적으로 두 명의 책벌레 주인공 - 실존 인물 티니우스, 허구의 인물 라인홀트- 이 등장하지만, 내 생각엔 <양탄자> 속에 인용된, 여러 위인들의 텍스트들로 대표되는 저자 또한 이 책의 또다른 책벌레 주인공으로 쳐 줘야 할 것 같다. 이 세 사람의, 세가지 각기 다른 이야기 형식 - '사실'의 티니우스, '허구'의 라인홀트, '아포리즘'의 클라스 후이징- 이 마치 머리카락처럼 땋아지면서 <책벌레>라는 한 권의 책을 완성해 간다는, 구성의 차원에서만 본다면 신선하고 매력적인 소설이란 생각이 들다가도,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작가의 필력만 따지고 든다면 그저 그렇다는 상반된 느낌이 든다. 

 

한 독서광이 우연히 접한 과거의 독서광의 삶에 매료되어 그를 흉내내다 그가 남긴 메시지를 해독하고 갑자기 사라진다는 빈약한 이야기, 그 메시지 자체와, 발견 방식의 구태의연함, 납득하기엔 뭔가 석연찮은 돌연한 실종, 흡인력 있는 도입부에 비해 상대적 뒷심 부족 등 여러모로 아쉬웠다.  

 

또 <양탄자> 부분은, 책의 종말을 너무 섣불리 예견한 - 과연 컴퓨터광들만 살아 남는 시대가 올까? 글쎄, 나는 아니올시다에 한 표 - 조금은 젠체하는 어느 문학 교수의, 독자를 가르치려드는 -이렇게 읽어라 저렇게 읽어라 - 강의 같은 느낌이랄까? - 물론 그 교수가 인용한 인사들의 텍스트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에둘러 말할 것 없이 바로 들이대는 방식은, 독자마다 호불호가 나뉘겠지만, 나는 좀 날로 먹는 감이 없지 않나 생각했다.  

 

역자 후기를 읽기 전 까진, 티니우스가 실존 인물일꺼라곤 짐작도 못했는데 - 의례 그렇듯, 실존 인물인 하는 줄만 알았다.- 어엿이 다섯 권의 책을 펴낸 실존 인물이라니, 맨 앞장에 실린 그의 초상화가 다시 떠오르면서 잠시 섬짓했다. 이제껏 소위 '책소설' 에서 여러 가공 인물들의 때론 기괴하고 때론 사랑스러운 별의별 미친 짓거리를 봤기에 - 꿈꾸는 책들의 도시, 그 점에선 최고다. - 뭘 봐도 별로 놀랍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책' 하나 때문에 살인까지 저지른 -그것도 목사의 신분으로- 실제 인물을 접하고 보니 이건 또 다른 차원이다. 책을 향한 구체적 실체를 뛴 광기의 실존을 확인한 놀람이랄까. 

 

아, 그리고 라인홀트의 이별 통고 편지는 너무나 낭만적이다. 이런 편지를 받는다면 이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책 접기

 

'말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야. 자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걸세. 하지만 그 사람들이 말한 것에 대해 조금만 물어보면 그 친구들은 같은 말만 되풀이하지. 그런데 그런 말이 일단 글로 씌어지면 그 말은 여기저리로 마구 떠다니게 되고, 그러면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이건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건 들을 수밖에 없게 되어버려. 글로 씌어진 그 말은 이제 자신이 누구에게 향해야 하는지도 모르게 되는 거야'

 

'개개의 모든 책들은 다른 책에 대한 주석이며, 이 때 한 권의 책과 연관된 다른 책은 발견 즉시 포획하지 않으면 어디론가 달아나버린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요즘에는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야기꾼조차 전체를 조망하지 못할 때가 많다.'

 

'텍스트란 인간의 형태를 지니고 있는 게 아닐까? 그건 곧 육체의 애너그램이 아닐까? 그렇다. 이때의 육체는 바로 관능적인 우리의 육체다......우리 신체에서 가장 에로틱한 부분은 옷의 틈새가 드러나는 부분이 아닐까? 성 도착증의 경우에는 성감대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심리분석이 지적하는 대로, 단절된 부분이 성애를 자극한다. 두개의 옷 사이에서, 옷의 노출부위에서 얼핏 보이는 살갗. 바로 이 순간적인 노출이 유혹적인 것이다. 달리 말해, 한순간 보였다 사라지는 장면의 연출이 유혹적인 것이다.'

 

'팔크 라인홀트는 숙련되고 양심적인 독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행 건너뛰기를 싫어했다. 이 지적인 육상경기를 그는 참을 수 없었다. 가로질러 읽기? 말만 들어도 입꼬리가 아래로 쳐졌다. 대강 훑어 읽기?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글자들은 자석처럼 그를 끌어당겼다. 그에게 텍스트는 북극점이나 다름 없었다. 그는 언제나 희미한 소리와 미묘한 불일치와 놓치기 쉬운 의미를 찾기 위해 텍스트에 귀를 기울이고 뿌연 안개 속을 헤집으며 언어의 배열을 더듬고 미묘한 뉘앙스를 파악하고 탁한 증기와 신선한 공기를 구별했으며, 텍스트를 의미의 관절들로 나누고 마지막으로 메타퍼적 완충 장치를 점검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문학작품은 "저자가 독자에게 건네주는 일종의 광학적 도구일 뿐이다. 저자는 독자가 평소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한 어떤 것들을 인식할 수 있도록 그 도구를 내미는 것이다."'

 

'당신들은 일체의 쾌락도 느끼지 않은 채 텍스트를 썼다. 근본적으로 볼 때, 그런 수다스런 텍스트는 욕망이 형성되기 이전의 모든 욕구들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욕망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런 텍스트는 노이로제다.'

 

'말하자면 나는 하나의 텍스트를 통해 다른 텍스트, 즉 나 자신의 생각, 나의 미성숙이라는 텍스트를 읽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텍스트에서 허용되고 있는 것, 아니 명령되고 있는 것이 나라는 텍스트에서는 부조리한 것으로 변하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