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 트랜서핑 2 - 성공의 물결로 갈아타는 선택의 비밀
바딤 젤란드 지음, 박인수 옮김 / 정신세계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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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접기>

 

"잠재의식은 저 혼자서 무엇을 상상해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가능태 공간에 직접 연결되는 것이다."

 

"뇌는 실제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능태 공간의 정보의 주소와 비슷한 무엇을 담고 있다...어떻게 해서인지는 몰라도 마음은 가능태 공간의 원하는 섹터의 주소를 기억해내는 능력이 있다. 어떤 것을 기억해내고자 하면 마음은 영혼을 향하고, 영혼은 다시 해당 섹터의 주파수에 동조한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동조에 서툴거나, 아니면 마음이 주소를 잘 기억해내지 못하거나, 아니면 마음과 영혼이 일에 의기투합하지 못한다. 어느 쪽이든간에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우리의 기억은 완벽하지 않다. 아무튼 우리의 영혼은 가능태 공간의 현실화되지 않은 섹터에 무작위로 동조될 수 있고, 그것이 우리가 꿈속에서 보는 심상들이다....꿈은 흔히 생각하는 것과 같은 '환영'이 아니다. 마음은 꿈을 상상해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보고 있다."

 

"꿈은 과거나 미래의 '가능한'사건을 보여준다.....영혼은 당신의 생각과 기대에 어울리는 가능태 시나리오를 선택한다...꿈이란 영혼이 가능태 공간속을 여행하는 것이다. 가능태 공간속에는 온갖 시나리오가 다 있다... 현실 속의 사건도 꿈속의 사건과 동일한 법칙을 따라 일어난다. 하지만 그것은 번개처럼 빨리 일어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가능태가 물질차원에서 실현되는 데에는 불활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생각은 어떤 특정한 인생트랙의 주파수로 방사되고 있는 에너지이다. 현실에서는 다양한 물질적 요인들로 인해서 이 인생트랙으로 옮겨가는 것이 지체된다.. 그러나 꿈에서는 불활성이라는 장애물이 없으므로 섹터를 옮겨 다니는 것이 즉석에서 실현된다."

 

"욕망은 '목표 그 자체'를 지향하지만 의도는 그 '목표에 다다르는 과정'을 지향한다. 욕망은 목표에 이르고자 하는 소망의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냄으로써 자신을 실현한다. 의도는 행동함으로써 자신을 실현한다. 의도는 목표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 없는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결정은 이미 내려졌고 행하는 일만이 남아있다. ...꿈에서 어떤 시나리오를 선택하는 것은 욕망으로써 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확고한 의도로써 하는 것이다. 깊이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욕망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가지고, 행하는 것이다."

 

"선택은 간청이 아니다. 그것은 가지겠다는, 그리고 행하겠다는 당신의 결정이다"

 

"내부의도는 하나의 동일한 인생트랙위에서 주변세계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모든 시도에 관여한다. .....외부의도는 원하는 바가 실현되는 인생트랙을 선택하려는 모든 시도에 관여한다....마음의 힘으로 연필을 움직이려고 초인적인 노력을 쏟을 수도 있다. 혹은 그 대신 단지 외부의도만을 가지고 가능태 공간을 뒤져서 연필이 다른 장소에 있는 트랙을 찾아낼 수도 있다."

 

"외부의도는 당신의 의지력의 산물로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영혼과 마음의 일치의 결과로 나타난다. 내부의도(당신의 의지)는 오직 이 일치를 이루어 내는 데에만 겨누어져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외부의도는 의지력의 소산이 아니며 의지와는 독립적으로 기능한다. 하지만 외부의도가 나타나려면 당신에게 시나리오를 바꾸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외부의도가 당신을 위해 작용하게 하려면 깨어 있는 의식이 필수적인 조건이다.... 깨어있는 의식은 통제와 지배를 위한 것이 아니라 관찰을 위한 것이다."

 

"의도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그것은, 욕망 없이 원하며, 걱정 없이 돌보며, 떠밀려가지 않고 노력하며, 고집 없이 행동함을 의미한다."

 

"인간은 백 퍼센트 객관적으로 주변세계를 인식할 수가 없다. 이것은 슬라이드 영사기와도 유사하다. 고르고 규칙적인 빛이 슬라이드 필름을 통과하면 화면 위의 그림으로 변한다. 인식이 스크린이라면 빛은 우리 주변의 세계이고, 슬라이드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 곧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슬라이드는 현실의 왜곡된 표현이다. 슬라이드는 당신의 머릿속에는 있지만 다름 사람들 속에는 없는 무엇이다. 슬라이드라고 해서 정지된 그림만을 그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 자신감을 가지고 품위있게 행동하는 모습일 수도 있고, 우아한 옷맵시와 세련된 매너늘 보이는 모습일 수도 있고,.........이제 이 슬라이드를 머릿속에 넣고 나가라 ! 긍정적 슬라이드는 부정적 슬라이드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행동과 태도에 직접적인 힘을 미칠 것이다. 당신은 뜻밖에 무의식적으로 슬라이드에 맞추어 행동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일은 모두 외부의도가 슬라이드의 이미지에 맞추어 해줄 것이다."

 

"말 없는 명료한 느낌, 뭔가를 믿지 않고 아는 것, 주저 없는 자신감이 바로 영혼과 마음이 일치된 상태다."

 

"긍정적 슬라이드가 이 믿기지 않는 것을 당신의 안락지대 안으로 들여놓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외부의 관찰자처럼 슬라이드를 바라만 보고 있지 말라. 그 속에 자신을 몰입시키고 최소한 가상으로라도 그 속에 살라....슬라이드는 오랫동안 용의주도하게 상영되었을때만 결실을 가져올 것이다...필요한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라. 그것이 당신의 세계의 층에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주라....그것이 어떻게 당신의 것이 될지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떤 경우든 과정을 심상화하라. 당신의 작업이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과정을 말이다. 단지 최종결과만을 상상하는 것은 안락지대를 넓혀주고, 그것만도 상당한 일이긴 하지만, 목표에 다가가는 과정을 심상화한다면 당신의 외부의도의 작용을 한층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목표를 생각할 때, 그것이 얼마나 칭송받을 만한 것인지, 얼마나 이루기 힘든 것인지, 그것을 이룰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지 말라. 다만 영혼의 기분에 관심을 기울이라. 당신은 기분이 나좋은가, 나쁜가? 그것만이 중요하다. "

 

"영혼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는 언제나 확실히 알고 있다....자신을 설득해야 한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것이다. 이것을 알라. - 그 옷이 당신의 것이라면 자신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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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 트랜서핑 1 - 러시아 물리학자의 시크릿 노트
바딤 젤란드 지음, 박인수 옮김 / 정신세계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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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시크릿>류의 책을 여러 권 찾아 읽으면서도 뭔가 부족한 목마름이 여전히 있었는데, 이 책은 바로 그런 목마름을 해소해주는 단비같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시크릿>에서 말하는 몇 몇 부분들에 대해서, 도대체 왜 그렇게 해야 하지? 라는 의문이 들어 답답했었는데, 저자 나름대로의 체계 잡힌 이론을 바탕으로 조목조목 짚어 주니, 그 궁금증이 어느 정도는 풀린 것 같아 속이 시원했다고나 할까. 

 

가능태 공간이니, 잉여 포텐셜이니, 펜듈럼이니 하는 처음 접하는 개념들은 사실, 책을 읽는 당시에는 그렇군 하면서도, 남에게 그 개념을 설명해 줄 때는, 두 세번 읽은 지금도, 나 스스로 정리가 되지 않아 버벅거리게 되니, 아직 완벽한 이해를 했다고는 말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두고 두고 반복 공부가 필요한 책이 아닌가 한다. 

 

다시 한 번 느끼는 거지만,

결국 진리란, 천 가지 다른 목소리로 이야기 되어지는, 한 가지 내용인 것 같다. 

 

<책 접기> 

 

"모든 이론은 다면적인 현실의 특정한 한 측면을 보여줄 뿐이라는 사실이다."

 

"우주의 본질은 하나이며 나누어져 있지 않지만, 그것은 끊임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우리의 현실이 취할 수 있는 모습의 엄청난 다양성 말이다. 이 비길 데 없이 무한한 가능태야말로 우리 우주의 가장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본성이다."

 

"존재 가능한 모든 물체와 그 동선상의 무한수의 지점에 관한 데이터는 정보의 장속에 저장된다. 이 정보의 장을 우리는 가능태 공간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 가능태 공간은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것과, 현재에 존재하는 모든 것, 그리고 미래에 존재할 모든 것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사실 정보장 안에 기록된 모든 것은 언제나 거기에 존재해왔고, 영원히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인생의 트랙들은 마치 영화필름처럼 존재한다. 일어난 모든 일은 사라져버리지 않고 남아 있다. 일어날 모든 일은 지금 일어나고 있다. 현재란, 가능태 공간 속의 특정구역이 당신의 인생트랙위에 실현되어 나타난 것일 뿐이다."

 

"사념 에너지의 파동은 잠재된 가능태를 물질화 시킨다."

 

"사념 에너지의 파동이 가능태 공간의 특정 섹터를 밝게 비추어 그 결과로 그 가능태가 물질화 된다고 가정하자. 사념의 파동은 가능태 공간 내에서 자신의 해당 섹터를 찾아낼 것이다. 그러면 그 특정 섹터의 가능태가 물질화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의식이 현실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에너지는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이 세계의 모든 것을 관통한다. 에너지는 사람의 신체를 통과할때 그 사람의 생각에 따라 변조되고, 몸에서 나갈 때는 그 생각에 상응하는 매개변수를 얻게 된다. 에너지의 매개변수들은 그 생각의 성질을 흡수한다. 그렇게 해서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에너지는 사념파로 바뀐다. 그리고 그것은 가능태 공간의 한 섹터를 물질적 현실로 바꿔 놓는다."

 

"사실 펜듈럼은 당신이 그것을 어느 쪽으로 밀어서 흔들든, 그 방향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

 

"사념 에너지가 펜듈렴의 주파수와 공명하는 한, 긍정적인 에너지와 부정적인 에너지가 똑같이 작용한다."

 

"펜듈럼이 당신의 에너지에 접근하려고 할 때 가장 선호하는 방법 중 하나는 당신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다. 균형이 무너지면 당신은 그 펜듈럼의 주파수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당신을 잡아당기는 가장 팽팽한 줄은 두려움이다...펜듈럼이 당신에게서 에너지를 뽑아내는 데는 죄책감 또한 아주 효과적인 수단이다..... 의무감도 죄책감의 한 형태다."

 

"그는 그 파괴적인 펜듈럼의 주파수에서 에너지를 방사하고 있는 것이다. 펜듈럼이 그 에너지를 모두 수확하지는 않는다. 그 중 일부는 가능태 공간의 특정 섹터로 간다. 그 사람의 사념 에너지의 매개변수가 그러하기 때문에, 그는 그가 피하고 싶어하는 것들만 널려 있는 가능태 공관의 섹터로 옮겨가게 된다."

 

"당신은 이 세상 어떤 것도 비난하거나 바꿔놓을 권리가 없다.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을 볼 때처럼, 좋든 싫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펜듈럼과의 싸움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다. 펜듈럼을 비난하지도 말고, 화내지도 말고 침착성을 잃지도 말라. 그 모두가 펜듈럼의 게임에 말려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정반대로 하라. 펜듈럼을 이미 주어진 것, 피할 수 없는 악으로 묵묵히 받아들이고 거기서 떠나라. 어떤 형태로든 싫은 마음을 보인다면 펜듈럼에게 에너지를 뺏기게 될 것이다."

 

"삶 밖으로 어떤 것을 내던진다는 것은 그것을 회피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시하라는 뜻이다. 회피하는 것은 어떤 것을 자기 삶 속으로 들어오도록 허용하면서, 동시에 거기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무시한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도 거기에 반응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것을 삶 속에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뜻한다..... 그저 다른 주파수로 다이얼을 돌리라 !"

 

"당신의 잠재의식은 정보장에 직접 연결되어 있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거기에 이미 존재한다. 그러니 우선 긴장을 풀고 그 문제에 대해 가지고 있는 두려움과 걱정을 모두 던져버리라."

 

"당신은 자신의 생각이 지닌 매개변수와 일치하는 인생트랙으로 옮겨 다니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은 전체가 '펜듈럼의 집합'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안에서 어떤 펜듈럼은 강하게 흔들리고 있고, 또 어떤 것은 힘이 약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모두는 서로 상호작용한다. 각각의 펜듈럼은 이웃한 펜듈럼으로 부터 자극을 받고, 또 그것들에게 자극을 준다. 이 복잡한 전체 시스템을 지배하는 근본 법칙 중 하나가 바로 균형의 법칙이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이 균형을 향해 열심히 가고 있다. 당신 자신도 일종의 펜듈럼이다. 어느 날 당신이 균형을 깨고 갑자기 한쪽으로 흔들리기로 마음 먹으면, 당신은 이웃한 펜듈럼들에 영향을 미치고 주변에 불쾌감과 소란을 일으킨다. 그러면 그것은 당신에게도 되돌아 올 것이다..... 우리가 어떤 대상에 지나치게 큰 의미와 중요성을 부여할 때, 사념 에너지는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 낸다......결국 두려움에 의한 잉여 포텐셜을 제거하기 위해, 균형력은 당신을 절벽 끝에서 멀어지도록 잡아 당기거나, 혹은 당신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 그 상황을 끝내야 한다.... 에너지 차원에서는 모든 물질적 대상이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손님으로 와 있다. 자신이 창조하지 않은 것에 대해 심판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행동하되, 당신은 단지 한 사람의 관객일 뿐이라는 점을 잊지 말라. 작품을 심판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선택의 자유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균형력은 균형을 회복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뿐, 어떤 방식으로 회복할 것인지에는 상관하지 않는다."

 

"운명은 실로 당신의 손에 달려 있다. 운명을 바꾸는 능력이 아니라 선택하는 능력이 당신에게 주어져 있다는 의미에서만 그러하다."

 

"가능태 공간에서는 모든 것이 공짜다. 우리가 소망 성취의 대가로서 지불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과대평가와 의존적 관계가 없는 상태이다. 바라는 대상이 현실로 실현되는 인생트랙으로 옮겨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직 순수한 의도의 에너지이다.... 순수한 의도란 과대평가 없는 상태에서 욕망과 행동이 하나로 결합된 것이라는 사실이다....이럴 대 필요한 것은 오직 목표의 중요성을 낮추는 일이다. 잡지를 사러 신문가판대로 갈 때처럼 그런 마음으로 한 번 해보라."

 

"자연에는 선악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균형력에게는 좋은 행위와 나쁜 행위가 모두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돈이 아니라 그 목표 자체를 생각해야 한다. 돈을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돈을 쓸 때는 아무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어떤 것을 살 때, 돈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 있는 것이다. 돈을 쓰기로 결정했다면 나중에 그것을 후회하지 말라. 돈을 가능한 적게 써서 조금이라도 아껴보려고 애쓰면 강력한 포텐셜만 만들어 질 뿐. 아무런 이득이 없다. 그러면 돈은 한 곳에 정체되어 아무 데로도 가지 못한다."

 

"그 외적 중요성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낙하산과 같은 모종의 안전장치이다....중요한 것은 저울의 한 쪽 편에 모든 것을 다 올려놓지 않는 것이다. 반대편의 평형추가 반드시 필요하다. 안전장치나 비상탈출구, 예비전략들이 평형추 역할을 한다.."

 

"세상과 조화롭게 지내고 펜듈럼에게서 벗어나려면 과도한 중요성을 감소시킬 필요가 있다. 당신이 자신과 주변 세상에 대해 얼마만큼의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는지를 늘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텅 비어 있는 것을 갈고리로 걸 수는 없지 않은가... 감정은 태도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당신은 먼저 태도를 바꿔야 한다. 느낌과 감정은 결과물일 뿐이다. 감정은 단 하나의 원인 - 중요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삶에 대해 좀 더 단순한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무시하지도 말고, 과장하지도 말라. 사람들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라...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사치를 자신에게 허락하라..... "

 

"잉여 포텐셜을 만들지 않는 유일한 것은 유머감각이다...유머란 곧 중요성의 거부이며 중요성에 대한 풍자요 조롱이다."

 

"성공을 위한 가장 좋은 처방은 자연스러움, 즉흥성, 그리고 가벼운 태도이다. 어떤 일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면, 그것을 단지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라. 결코 '심각하고 조심스럽게'준비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중요성이 더 커지기만 한다. 실질적인 행동은 하지 않고 걱정만 하고 있다면 중요성을 더 부풀리고 있는 것이다. 중요성의 포텐셜은 행동과 함께 사라진다. 생각하지 말고 행동하라! 행동할 수 없다면 생각하지 말라. 주의를 딴데로 돌리고 그 상황은 놓아보내라. 행위자인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행위의 결과로부터 주의를 돌려서 행위의 과정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면 매사에 가장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능태 공간에는 모든 것이 존재하지만 최적의 가능태, 곧 에너지를 가장 적게 소모하는 가능태만이 현실화 될 가능성이 크다... 모든 일을 가능한 한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으로 하도록 애써야 한다."

 

"지켜보는 자를 일깨우라. 먼저 지켜보고 나서, 그 다음에 행동하라. 무대로부터 객석으로 내려가라. 그리고 상황을 지배하려 들지 말라. 당신이 지켜보는 가운데, 게임이 제 스스로 펼쳐지도록 내버려두라. 거기에 괜히 끼어들어서 허우적거리지 말라. 당신의 삶이 흐름을 타고 가는것을 훼방하지 말라."

 

"영혼이 "아니다"고 말하고 있는지 어떤지를 판단하려면 다음의 간단하고 믿을만한 공식을 기억해두라. -만일 "그렇다"라고 말하기 위해 자신을 설득해야 한다면 그것은 영혼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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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그라피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2
비톨트 곰브로비치 지음, 임미경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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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게 뭐람.

도저히 상식선에선 이해되지 않는, 십육세 소년 소녀를 데리고 펼치는, 두 성인 남자들의 기이한 놀음.. 정말 이것이 육체적 색정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글자 그대로 변태 또라이 새끼 두 명의 음흉한 지랄 발광일테니, 한 꺼풀 벗겨보면 그래도 뭔가 더 깊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고 애써 생각해 봤다. 

 

자기 혼자 연극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은 남자 프레데릭은,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과도한 지성과 상상력 때문에 엉뚱한 길로 빠져드는, 소설 속 화자인 '나'의 분신인듯 하다. 말하자면 소설 속 화자인 '나'는, 자신의 음흉함을 감추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만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속임수를 쓰는 비겁한 자이며, 이런 모습이 항상 뭔가 연기를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프레데릭으로 형상화된 것 같다.  

 

프레데릭(혹은 '나')은  신,예술,인민,프롤레타리아들을 떠들어 대는 인텔리이지만, 정작 그의 연극 무대이자 동시에 현실인, 전쟁, 혁명, 폭력, 파렴치, 가난, 기아에 환멸을 느끼며, 이런 성인 남자들의 환멸적 세상과 대척점에 있는 미성년의 관능성에 매혹된다.  

 

"그 어떤 성인 남자의 모습도 참을 수 없었다... 우리의 난잡함, 추잡함에 있어서는 개도, 말도 이만큼 따라 올 수 없었다. 아! 아! 서른이 넘으면 인간들은 흉하게 시들어 간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그들, 젊은이들로부터 나온다. 한 사람의 성숙한 남자인 나는 내 동료인 성숙한 남자들 옆에서 편안함을 얻지 못했다. 나는 그들이 역겨웠기 때문이다"

 

젊음에 집착하는 심리까지는 어떻게 해서, 이해할 수 있다고 치자. 그래서 모두가 예상하는 바대로, 롤리타적 사랑을 나누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왜 이 인물들이 변태스럽고, 기괴하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가 하면, 소년 소녀로 하여금 자신들의 각본대로 죄를 짓도록 하는, 이상한 작당구리를 연출하며, 그런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는 그들을 바라보며 흥분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들의 순수한 세계로 돌아가고픈 회귀로의 욕망보다는 아이들의 순수한 세계를 더럽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미 더럽혀진 자신(어른들)의 세계로 추락한 아이들과 자신이 동급이 되게 함으로써 느끼는 일종의 파괴적 쾌감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우리도 그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그 젊음을 맛볼 수 있다. 그들과 우리가 함께 저지른 죄악만 있으면 된다. 일부러 죄를 하나 짓는 것이다. 젊고 아름다운 그들 한 쌍이, 그 둘만큼 매력 있고 탐스럽지 못한, 그러니까 더 나이 든, 더 진지한 자와 은밀히 맺어지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저지르는 죄악...... 미덕의 세계에서 그들은 우리에게 닫힌 존재, 접근하기 어려운 존재이다. 하지만 일단 한 번 죄악 속으로 발을 들여놓으면 그들은 우리와 함께 진흙 속에서 뒹굴 수 있다....."

 

"젊음을 재료로 한 또 다른 젊음, 우리 어른들과 비극적으로 얽힌 젊음을 제조해 내는 일"

 

정말 아무것도 아닌 스토리 - 두 남자가 한적한 시골을 방문하고, 그 집에서 만난 소년 소녀에게 끌리며, 아무 사이도 아닌 그 둘을 부추겨 성적인 연극을 하게 하여 소녀의 약혼자를 자극하며, 결국은 비극적인 죽음으로 끝난다-를 순간순간의 미묘한 심리 포착으로 잘 메꾼 작품이다. 사실 지루할만도 한 소설인데, 지루할라치면, 한 두 가지 사건을 터뜨려 주어 긴장감을 불어 넣는 완급 조절을 잘 한 것 같기도 하다.  

 

인간에겐 이런 기괴한 욕망도 있구나를 보여 준 작품이랄까. 공감대 형성엔 끝내 실패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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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슬라보예 지젝 외 지음, 이운경 옮김 / 한문화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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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트릭스빠다. 특히 1편이 너무 좋다. 심오한 메세지에 화려한 볼거리 거기다 자극적 재미까지 겸비한 이 영화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책은 <매트릭스>를 여러가지 철학적 관점에서 분석, 해부한다. 무심코 지나쳤던 장면들, 흘려들었던 대사들에 이런 의미가 있었다니, 워쇼스키 남매가 애초에 의도했던 것이든, 학자들의 자의적 해석이건 간에, 감독이 천재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하나의 영화에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낼 수 있는 학자들도 대단하다. 그들이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요리 조리 요리해 놓은 진수성찬들을, 독자들은 그저 하나씩 맛보며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단언컨대, 책을 읽고 나면, <매트릭스>의 더 많은 것들이 보일 것이고, 예전보다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매트릭스>에서도 <구토>에서도 본래성은 어렵다. 그것이 드러내는 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비본래성이 일반적인 표준이고 규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중요하다. 실존주의자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본래적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들은 비본래성이 만연하는 이유를 심리적인 저항과 사회적인 교화 탓으로 돌린다.....실존주의자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존재의 힘든 진실들을 알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비본래적으로 살아간다고 단언한다. 사람들은 삶에 대한 일련의 거대한 거짓말로 자신에게 위안을 주고 싶어한다. 이러한 거짓말들은 거대한 형이상학적 거짓말에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말하는 사소한 이야기들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우리가 원하는 거짓말들이다. <매트릭스>가 보여 주듯이 예언자의 금언인 "너 자신을 알라"를 열망하는 대신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실에서 도피하여 자신이 만든 (혹은 다른 사람이 만든) '꿈의 세계'에 남는 것을 택한다. '사회적인 교화'역시 사람들에게 비본래성을 철저히 세뇌시키는 역할을 한다.실존주의자들이 설명하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배운 대로 세계를 보도록 철저히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어떠한 다른 대안에도 저항하곤 한다....비본래성이 만연한 사회에서, 본래성은 소외되게 마련이고 심지어 광기에 가까운 것으로 취급받는다."

 

"네오와 모피어스 사이의 대련 장면을 떠올려 보라. 이 무술 장면은 마음의 전능한 힘을 보여준다..... 네오를 패배시키는 것은 그의 마음이다. 이것은 모두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문제이다....네오는 훈련을 통해 기술을 완전히 익혔고 그것은 본질적으로 정신적인 훈련이었다.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신의 진정한 본질에 대해서 의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예언자가 결코 실제로 네오가 '그'가 아니라고 진술한 적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렇게 말한 사람은 네오 자신이다. 예언자는 네오의 의심, 억류된 마음을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한 것 뿐이다...이 무심은 또한 반성하지 않음이다. 반성하지 않는 것은 궁극적으로 마음을 자유롭게 한다.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마음을 자유롭게 할 필요가 있다고 끊임없이 강조한다. 매트릭스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 못지 않게 네오 역시 마음의 감옥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자유는 우리가 이성의 한계를 인식하고 모든 이성과 논리를 불가피하게 장벽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리하여 합리화와 반성의 틀을 허물어 뜨릴 때 얻을 수 있다..... 구원을 가져오는 사랑의 힘과 더불어 존재의 상호연결성을 증명하고 있다. 트리니티가 스스로를 믿음으로써 네오도 스스로를 믿게 된다. 그들의 믿음은 반성에 억류된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던 두려움과 의심을 놓아 보냄으로써 생성된다......불교의 거울 안에서는 마음이야말로 궁극적인 매트릭스이다."

 

"네오가 배워야 할 것은 그가 다른 모든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인 '그, The One'라는 사실이 아니라 그가 모든 존재들과 '하나 One'라는 사실이다. 물론 그는 이러한 진실을 처음으로 완전하게 이해한 '그 The On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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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 미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허먼 멜빌 외 지음, 한기욱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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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

시체 머리 위에서, 시뻘건 입을 크게 벌리고 불타는 외눈으로 검은 고양이가 바라본 것은 바로 인간의 비뚤어짐과 허영심 아니었을까?

 

* 인간의 비뚤어짐 - "다른 이유가 아니라 오로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쁜 짓이나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인간 심리, 영혼이 스스로를 괴롭히려는, 즉 영혼이 그 자신의 본성에 폭력을 가하려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갈망"

 

* 인간의 허영심 - "내 마음속의 기쁨이 너무 벅차서 누를 수가 없었다. 나는 승리의 표시로 딱 한마디라도 하고 싶거니와 내 무죄에 대한 경찰들의 확신을 한층 더 굳혀주고 싶어서 몸이 달았다"

 

<필경사 바틀비>

수록된 단편들 중 최고였다. 책을 읽은 지 꽤 지난, 지금도 가끔 묻곤 한다. 도대체 바틀비는 어떤 인간이었을까? 바틀비는 왜 그랬을까? 수동적 인간이었지만, 또 누구보다 능동적으로 자기 삶을 살았던 묘한 인간, 바틀비. 누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하염없이 막다른 벽돌벽을 바라보던 그의 마음속엔 어떤 생각들이 있었을까? 이해하기 힘든 인간, 바틀비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나는 그 필경사가 선천적인 불치병의 희생자라는 것을 납득하게 되었다. 내가 그의 육신에 자선을 베풀 수는 있다. 그러나 그를 아프게 하는 것은 그의 육신이 아니다. 아픔을 겪는 것은 그의 영혼인데, 그 영혼에는 내 손이 미치지 않는다."

 

<진품>

진짜보다 더 진짜같아 보이는 가짜와, 생계를 위해 가짜라도 되고 싶은 진짜가 보여주는 의외성과, 아이러니.

 

<에밀리에게 장미를>

윌리엄 포크너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역시 느껴진다. 에밀리의 사랑 방식이 훗날 다른 소설에서도 차용된 듯 하다.  <바람의 그림자>나 <슬픈 짐승>에 나오는 이야기들도 왠지 비슷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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