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그라피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2
비톨트 곰브로비치 지음, 임미경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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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게 뭐람.

도저히 상식선에선 이해되지 않는, 십육세 소년 소녀를 데리고 펼치는, 두 성인 남자들의 기이한 놀음.. 정말 이것이 육체적 색정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글자 그대로 변태 또라이 새끼 두 명의 음흉한 지랄 발광일테니, 한 꺼풀 벗겨보면 그래도 뭔가 더 깊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고 애써 생각해 봤다. 

 

자기 혼자 연극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은 남자 프레데릭은,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과도한 지성과 상상력 때문에 엉뚱한 길로 빠져드는, 소설 속 화자인 '나'의 분신인듯 하다. 말하자면 소설 속 화자인 '나'는, 자신의 음흉함을 감추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만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속임수를 쓰는 비겁한 자이며, 이런 모습이 항상 뭔가 연기를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프레데릭으로 형상화된 것 같다.  

 

프레데릭(혹은 '나')은  신,예술,인민,프롤레타리아들을 떠들어 대는 인텔리이지만, 정작 그의 연극 무대이자 동시에 현실인, 전쟁, 혁명, 폭력, 파렴치, 가난, 기아에 환멸을 느끼며, 이런 성인 남자들의 환멸적 세상과 대척점에 있는 미성년의 관능성에 매혹된다.  

 

"그 어떤 성인 남자의 모습도 참을 수 없었다... 우리의 난잡함, 추잡함에 있어서는 개도, 말도 이만큼 따라 올 수 없었다. 아! 아! 서른이 넘으면 인간들은 흉하게 시들어 간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그들, 젊은이들로부터 나온다. 한 사람의 성숙한 남자인 나는 내 동료인 성숙한 남자들 옆에서 편안함을 얻지 못했다. 나는 그들이 역겨웠기 때문이다"

 

젊음에 집착하는 심리까지는 어떻게 해서, 이해할 수 있다고 치자. 그래서 모두가 예상하는 바대로, 롤리타적 사랑을 나누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왜 이 인물들이 변태스럽고, 기괴하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가 하면, 소년 소녀로 하여금 자신들의 각본대로 죄를 짓도록 하는, 이상한 작당구리를 연출하며, 그런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는 그들을 바라보며 흥분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들의 순수한 세계로 돌아가고픈 회귀로의 욕망보다는 아이들의 순수한 세계를 더럽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미 더럽혀진 자신(어른들)의 세계로 추락한 아이들과 자신이 동급이 되게 함으로써 느끼는 일종의 파괴적 쾌감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우리도 그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그 젊음을 맛볼 수 있다. 그들과 우리가 함께 저지른 죄악만 있으면 된다. 일부러 죄를 하나 짓는 것이다. 젊고 아름다운 그들 한 쌍이, 그 둘만큼 매력 있고 탐스럽지 못한, 그러니까 더 나이 든, 더 진지한 자와 은밀히 맺어지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저지르는 죄악...... 미덕의 세계에서 그들은 우리에게 닫힌 존재, 접근하기 어려운 존재이다. 하지만 일단 한 번 죄악 속으로 발을 들여놓으면 그들은 우리와 함께 진흙 속에서 뒹굴 수 있다....."

 

"젊음을 재료로 한 또 다른 젊음, 우리 어른들과 비극적으로 얽힌 젊음을 제조해 내는 일"

 

정말 아무것도 아닌 스토리 - 두 남자가 한적한 시골을 방문하고, 그 집에서 만난 소년 소녀에게 끌리며, 아무 사이도 아닌 그 둘을 부추겨 성적인 연극을 하게 하여 소녀의 약혼자를 자극하며, 결국은 비극적인 죽음으로 끝난다-를 순간순간의 미묘한 심리 포착으로 잘 메꾼 작품이다. 사실 지루할만도 한 소설인데, 지루할라치면, 한 두 가지 사건을 터뜨려 주어 긴장감을 불어 넣는 완급 조절을 잘 한 것 같기도 하다.  

 

인간에겐 이런 기괴한 욕망도 있구나를 보여 준 작품이랄까. 공감대 형성엔 끝내 실패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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