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릿파크 - 존 치버 전집 1
존 치버 지음, 황보석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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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작품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작품이 좀 더 와 닿으려면, 1960-1970년대 - 베트남전 징집으로부터 아들을 해외로 도피시킨 부부가 나오는 걸 봐서- 의 '독특하고 불가사의하고 광대한' 미국의 '전시의 폐허' 같은 분위기와, '삶에 의미를 주는 힘과 악취와 색깔과 열의를 걸러낸 염병할 인간들' 로 표현되는 중산층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할 것 같다. 미국은 술, 약물, 총 빼고는 도저히 이야기가 안 되는 나라인지, 등장 인물 대부분이 술 아니면 약물에 의존 하고 있고, 일도 안하는데 돈은 어디서 그렇게 나는지, 기분이 우울 하거나 미국이 싫다는 이유로, 시시때때로 유럽으로 여행 다니고, 수많은 호텔들을 전전한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정체성을 찾아 부유하는 외로운 인간쯤으로 멋있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그 시대와 그 계층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던 까닭일까? 기대만큼 실망도 크다.  

먼저 주제. 앗싸리한 맛 없이 두리뭉실하다. 어쩌면 그 두리뭉실한 것들이 모여 해머와 네일즈란 인간을 형성 했는지 모르겠으나, 인과관계 및 전체적 짜임이 그닥 유기적이진 않은 것 같다. 일그러진 부자 관계 - 네일즈는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권총으로 쏘고 싶어했고, 토니와 네일즈는 둘이 있으면 뭔가 어색해 하며, 티비와 진로문제로 대립한다. 더구나 해머는 사생아이다.- 에서 보이는 애정 결핍, '가면을 쓰고 하는 파티' 로 대변되는 중산층의 허위, '소유물들로 도덕적 기준을 대체' 하는 도덕 관념, 작품 전체에 걸쳐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등장하는 뒤틀린 성욕. 토니는 왜 갑자기 슬프다는 이유로 침대에 드러 누웠다가 별 것 아닌 것 같은 치료에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가? 해머는 왜 갑자기 해변에서 자기 엄마의 미치광이 같은 계획을 실행에 옮기겠다고 결심하는가? - <이방인>에 대한 오마쥬인가?- 단지 감동이나 가치도 없이 살아가는 자에게 본보기를 보여주겠다는 이유로? 그러다 목표물은 갑자기 왜 바꾸며, 계획은 왜 또 구루에게 미리 알리는가? 담배는 왜 피워, 바로 죽이지 않는가? 그들이 사는 세상은, 탄환이 저장되어 있는 곳일 뿐, 발사되지는 않는, 위험하지만 안전한 장소인가?  

다음 표현. 마치 웃음기 전혀 없는 홍상수 감독의 초기 작품들 같은 느낌이었다. 이는 아마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라는 작가의 작품과 똑같은 제목의 홍상수 영화를 내가 너무 인상깊게 본 까닭이지 싶은데 - 실제로 존 치버 작품에서 영화 제목을 땄는지는 모르겠다- 일상의 사소하고 미미한 순간들을 지루할 만큼 그러나 너무나 사실적으로 포착해 내는 것처럼, 인물들의 정서와 내면을 찬찬히 서정적으로 훑어나가는 방식이 좋았다. 단, 두 세번 읽어도 의미가 애매모호한 구절이 몇 개 있었는데,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역자 탓인지 - 같은 역자의 폴 오스터 작품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 작가의 문체가 원래 그런건지, 어쩌면 약해진 내 집중력 탓일 수도.        

* 책 접기 

" 그 아이들이 나를 겁먹게 한 이유는 내가 그 아이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를 몰랐기 때문인데,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건 무시무시한 어둠 속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거든." 

" 그래서 나는 네가 나를 정신적인 치어리더로 생각해 주었으면 해. 응원이 터치다운을 해서 득점을 올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때로는 도움이 되거든. 내게는 온갖 종류의 응원들이 다 있어. 사랑 응원, 동정 응원, 희망 응원 같은 것은 물론이고 또 나한테는 장소 응원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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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헤이번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대니얼 클로즈 글.그림, 박중서 옮김 / 세미콜론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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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이긴 하지만, 피난처(haven) 라는 평화로운 마을 이름과 달리, 자세히 들여다 보면 공포의 복마전 속에서 살아 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자잘한 이야기들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 사는 세상, 우리 사는 모습과 별로 다를 것도 없다.  

Leopold 와 Loeb란 똑똑한 두 청년이,  완전 범죄를 목표로 지루한 일상에서 심심풀이 삼아 저지른 실제 유괴 살인 사건이 변주 되어, 아이스 헤이번에서도, 데이빗 골드버그라는 아이가 실종된다 - 뚱뚱한 몸에 시무룩한 표정. 내 옛날 모습과 완전 꼭 닮지 않았는가? 깜짝 놀라 신랑과 함께 깔깔거렸다. 척봐도 우울이 뚝뚝 떨어지는 그 캐릭터를 웃으며 볼 수 있는 오늘을 감사한다. ^^;- 

아이의 실종을 둘러싸고, 혹은 무관하게 각 캐릭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외톨이 데이빗,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지 못해, 비뚤어진 방식으로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 잡으려 했던 시인 랜덤 와일더 -몇 개는 건질게 있다며, 변기에 버렸던 작품들을 구질구질하게 다시 건져 내는 장면은 씁쓸했다.-현실 도피의 수단으로 남자의 사랑을 구걸하는 바이올렛, 그런 바이올렛을 사랑 하지만, 이루어 질 수 없는 열망으로 괴로운 꼬마 철학자 찰스 - 개인적으로, 제일 사랑스럽고 귀여운 캐릭터였다 - 아내와의 사이에 균열을 눈치 채면서도 아내를 사랑한다고 믿는 탐정 에임스와 불륜을 저지르는 아내, 이들 모두 자신만의 세계에서 외부와의 소통을 시도하나, 결국 오해와 게으름으로 진실에 다가가지 못한다 - 실제로 바이다와 랜덤 와일더 모두 서로의 문학적 재능에 감탄 하지만 그 사실을 끝내 알지 못하고, 구멍 속으로 바이올렛을 엿보던 찰스의 사랑은, 이를 의붓아버지의 소행으로 오해한 바이올렛을 떠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데이빗이 돌아온 날. 아이스 헤이번의 모든 사람들이 손을 잡고 불렀다던, 등골이 저릴 만큼 아름다운 노래. 그 노래가 나에겐 그저, 자신을 좆같이 대하는 세상과 이웃들에게, 자신의 존재와 사랑,  재능을 좀 알아봐 달라고 외치는 안타까운 목소리들의 합창으로 들릴 뿐이었다. '아무런 부끄럼도 없이. 의심조차 전혀 없이'      

*책 접기 

"너 혹시 생각해 봤어? 사람은 모두 평등할까, 아니면 남보다 잘난 사람은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될까?" 

"상대방이 도무지 내 열망의 깊이를 깨닫지 못한다는 걸 실감하는 게 얼마나 견딜 수 없이 괴로운지 알기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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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 동녘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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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시각에서 정리해 보고 싶다.  

1. 김산에 대한 전기 - 김산, 그는 누구인가? 두서없이 적어본다.  

일본어, 영어, 중국어, 몽골어, 독일어, 라틴어, 에스페란토어, 경제, 의학을 공부했던 사람. 단테, 톨스토이, 괴테, 테니슨, 키츠, 도스토예프스키, 발자크를 읽었던 사람. 아리랑을 좋아했던 사람. 젊음을 어디엔가에서 잃어버렸다고 했던 사람. 인간 해방의 비책을 배우고 싶었던 사람. 자신에 대한 완전한 신뢰와 자신감을 가졌던 사람. 나라를 넷이나 가진 국제주의자. 이념으로 무장한 행동하는 혁명가. 신념의 틀 속에 사랑을 가두어야 했던 사람. 어떤 종류의 나약함도 좋아하지 않았으며 잔혹함을 싫어했던 사람. 감옥 안에서조차 비밀회의를 조직하고 전술을 토의했던 속된 말로 뼛속까지 빨갱이었던 공산주의자. 훌륭한 지도자가 되려 했던 사람. 모든 것에 실패 했으나 단 하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승리했던 사람. 마지막으로, 인생에 행복했던 기억이 하나도 없었던 사람 -'결국 내 본질 속에는 행복이라는 것이 없으며 행복을 찾는 것 조차도 잘못 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2. 1920-1930년대 조선혁명운동의 일반적인 동향에 대한 설명서 - 민족주의, 무정부주의, 공산주의로 나뉘었던 조선 독립 운동의 흐름과, 각 진영 사이의 대립. 같은 진영 내 노선 분리 속에서의 김산의 이념적 변화 과정과 중국 공산 혁명, 조선 독립을 위한 활동을 쫒다 보면 자연스레 조선과 중국의 혁명/독립 운동의 흐름을 알 수 있다. 곳곳에 보이는 중국 민족성에 대한 그의 부정적 시각과, 결국 당으로부터 배신당한 그의 죽음을 보며, 민족주의는 결코 극복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3. 시대의 순교자들에 대한 한 편의 드라마 - 김산 뿐 아니라 이동휘, 이승만, 안창호, 이광수, 김충창, 김약산, 오성륜, 박진, 그 외에도 이름 없는 많은 조선인, 중국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금껏 내가 읽은 모든 책을 통털어, 이 처럼 다양한 인물들의 아름답고 비극적인 이야기가 녹아 있는 작품을 본 적이 없다. 허구의 삶보다 실재의 삶을 더 극적으로 만들었던 잔인한 시대와 그 시대를 관통한 수 많은 인간들의 사랑과 삶과 죽음이 오래도록 아렸다.      

신념이란 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어떻게 하면 한 인간이 그토록 강한 신념으로 똘똘 뭉쳐 끝까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나? 무한한 경외와 무한한 연민이 뒤섞인 감정으로 수없이 밑줄을 그었다. 그의 존재와 그의 삶의 방식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책 접기 

"사랑이란 주사 또는 수혈이거나 아니면 고독한 출혈이라고 생각되네."  

" 나는 잔혹성을 진리의 한 측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을 현실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잔혹함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죽느냐 죽이느냐 하는 것이다. 진리를 혐오하는 것은 감정적 에너지를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일 뿐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잔혹함이 존재해 온 곳에 정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권력을 회복했을 때의 계급적 증오는 인간에게 알려진 가장 잔혹한 격정이지만" 

"내전에 참가하여 싸우는 사람은 이런 일들을 견뎌 낼 수 있도록 각자 자기의 철학을 만들어내야 한다." 

"너무나 진리에 가까운 질문을 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그런 질문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자신에게 진리라고 생각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은 위험하다. 자기가 틀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 나름의 신념과 오류를 지닌 채 행복하게 죽어가도록 내버려두어라. 근본적인 질문으로 타인의 영혼을 괴롭히지 말라. 자기가 원하는 문제에 대해 자기 나름의 해답을 찾도록 내버려 두어라."  

"...나 자신의 삶과 오류와 지혜를 음미해 보는 동안 나는 자신에 대하여 강력하고 흔들리지 않는 신뢰를 느꼈다. 그 때 이후 나는 한 번도 이 신념을 잃어본 적이 없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결코 꺾인 일이 없는 용기와 힘을 지녀왔다.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내 의견과 능력에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다. 일단 어떤 과제에 마음을 쏟기만 하면 그 일을 반드시 해낼 수가 있다." 

"..확신을 갖게 될 때까지는 마음속에서 결정하기를 거부한다. 내 마음은 나한테서 떨어져 나간 물건 같았다. 즉 내가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를 달아보고 균형도 잡아보면서 움직이는 정밀기계 같았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시키지 못한다. 수단과 목적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단은 목적에 의해 유기적으로 창출되는 것이다." 

"내가 그 추악함으로 인하여 인간을 거부하고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이 때, 인간성이 그 장엄함을 다시 보여줌으로써 나를 비웃고 있었다." 

"내가 묻는 것은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이고 무엇이 낭비인가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쓸데없는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부차적인가 하는 것이다. 다년간의 마음의 고통과 눈물을 통하여 '오류'가 필수적이며 따라서 선이라는 것을 배웠다. 중략. 사람들은 실험을 통하여 비로소 지혜를 배우는 것이다. 실험은 사람들의 안전장치이며 권리이다. 거짓을 배우지 않는 자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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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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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 시절 내내 역사를 공부하고, 'E.H Carr, 역사란 무엇인가?' 같은 교양 수업도 들었건만, 정작 역사에 대한 확실한 개념 같은 건 없었다. 이 책에서 제일 크게 건진 게 있다면, 역사에 대한 나만의 거창한 정의까지는 못 되더라도, 뭔가 '감' 정도는 잡은 것이 아닐까 싶다. 혹시나 빵구나, 누가 문학 작품을 읽는 이유를 물어 보면 '사람 공부'라고 대답하겠다고 생각 했는데, 저자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역사를 정의 - '현재의 인간은 시간적 변화의 산물이며, 역사학은 바로 변화하는 인간을 해명하는 학문이다'- 한 대목에서 바보 도 터지는 소리 비슷한 게(?) 나왔다. 역사도 변해 가는 시간 속에서의 사람에 초점을 맞춘, 일종의 사람 공부라는 말 아니겠나.   

'시비를 던지다'와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나오다'에 이은 세 번 째 책이라, 교과서에서 알려 주지 않은, 역사에는 결코 기록되지 않을, 나같은 보조 출연자들(?)의 삶을 들여다 보는 신선함은 덜 하였으나, 전작들이 살짝 쌀짝 맛배기만 보여 줬다면, 이번 책은 더 다양한 분야를 세밀하게 파고드는 본격적인 맛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모이면 도적이 되고 흩어지면 백성이 된다/군도와 땡추'편이 제일 재밌었는데, 반조선적, 반체제적 조직으로서 군도와 승려들이 모종의 협력 관계에 있었으며 -쌍계사와 통도사가 이들의 소굴 이었다니, 통도사에서 장물을 분배하는 모습이 상상이 되는가- 엄격한 입당 심사와 조직 관리의 규율로 수 백 년 동안 조직이 유지 되었다는 것도 정말 말 그대로 금시초문이었다. 더구나 그 조직원들이 포도청과 군대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데는 뭔가 극적인 맛도 있다. - 오늘날 간첩이 국가 정보원에서 근무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나?-    

그 외에도, 인간의 다양한 욕망들이 제대로 된 출구를 찾아 적절히 해소되지 못했을 때, 어떤 사회적 현상들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고찰이 흥미롭게 기술된다. 술 마시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고기 먹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가능한 많은 성적 대상을 확보 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출세 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소비 하고 유희 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간단히 말해, 인간 누구도 이런 놀고, 먹고, 싸고, 으스대고 싶은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기에, 이런 욕망들을 적절하게 콘트롤 해 줄 수 있는 사회의 우아한(?) 기능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닐까?                 

*책 접기  

"노사장의 명령에 의해 책임 유사가 후보자에게 접근한다. 후보자의 기회를 탐색하여 술,미색,재물등으로 극진히 환대하여 친형제 이상으로 가까워진 뒤 어느 늦은 밤 어떤 집 문전에서 잠깐 기다리라 하고는 사라진다. 이내 포교로 변장한 자가 후보자를 포박하여 70여가지 악형을 가하며 도둑으로 모는데, 스스로 도둑이라고 실토하면 그 자리에서 죽여버리고, 끝내 아니라고 고집하면 결박을 풀고 따로 은밀한 장소에서 술과 고기를 먹인뒤 입당식을 거행한다." 

<찾아 읽고 - 서울의 게토, 도살면허 독점한 치외법권 지대, 반촌>

요즘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를 재밌게 보던 차에 주요 배경이 되는 반촌이 강명관 교수의 책 어딘가에서 다루어졌던 기억이 나, 다시 찾아 읽었다. 처음 읽을 때도 생경한 지명이었던지라, 그 기원은 기억나지 않았고, 성균관과 관련된 치외법권 지대 정도로만 어렴풋이 기억 했는데, 드라마를 보고 다시 읽어보니 확실히 더 재미있다. 송옥숙이 왜 구지 송도 사투리를 구사하는지, 가리온의 직업이 왜 도살자인지 하는 등의 디테일에 신경 쓴 점이 드라마를 더 값져 보이게 한다. 뜬금없지만 강명관 교수의 책이 참 좋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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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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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의 아비가 아버지의 아비임을 미리 알았다면 아마 읽지 않았을 것이다. 책 표지의 분홍색 반바지를 입고 있는 정체모를 다리에 털같지도 않게 갖잖게 달린 털은 건성으로 보고, 단지 귀여운 표지와 글자체만으로 '아비'가 작고 앙증맞고 귀여운 어떤 것의 이름일꺼라 짐작했다. 조금 뻔하더라도 완득이가 주는 즐거운 키들거림 같은 것을 아비에게 기대하며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  

제목에 걸맞게 주된 꺼리는 아버지였고, 텔레비젼, 바다, 물고기 같은 이미지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들 아버지들의 지배적 유형은, 임신을 알고 사라진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문득 나타나 테레비만 줄창 보다, 아버지에게 뭔가를 받아 본 기억이 없는 딸이 준 용돈 십 만원을 들고 또 문득 사라지는 아버지, '세계의 불가사의'란 책을 사주곤 놀이공원에서 사라져 버린 아버지등 소위 사라지는 아버지 부류다. 거기엔 열렬한 사랑의 섹스도 없었고 - 주로 여자들이 어느 날 그들의 하숙방으로 찾아 든다던가 하는 식- 피동적이며 - 고작해야 피임약을 사기 위해 좆빠지게 뛰어 갔다 오는 정도- 아무런 설명 없이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들의 존재 자체가 자식들의 인생에 '세계의 불가사의'처럼 미스테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 작가의 작품답게 '나'들은 쿨하게 이를 받아 들이고, 자신을 연민하지도, 아버지의 부재를 애닯아하지도, 애써 찾지도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어쨌든 그렇다. 아버지의 부재속에서 금이 쩍 쩍 가 버린 '유년의 콘크리트 마당'에서 자라난 이들을 담담하게, 유머의 코드도 섞어 가며 이야기 해 보려는 작가의 의도는 엿보이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정쩡함이 아쉽다. 고추를 보여주면 스카이 콩콩을 사 주겠다는 아버지나 복국을 먹이고선 그날 밤 살아남지 못하면 어른이 되지 못한다고 뻥치는 철없는 협박쟁이 아버지, 국졸로서 몇 년 째 승진도 못한 서울에서의 직장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귀향해 도장파는 일을 하는, 아빠 직업이 창피하냐고 묻는 가난하고 무능한 전형적 아버지도 있다. 여하간, 그들 모두 아버지의 낮춤말인 '아비'로 불리우기에 충분한 건 확실해 보인다.      

그 외, 작가의 소설 쓰기의 이유를 독백하는 듯한 - 어느 작가에게나 꼭 한 편 씩은 있게 마련인, 여기서는 '그것은 어쩌면 희망 때문일 거라고' 되어 있다 - '종이 물고기'도 흥미로웠다. 예전에, 스타들에게 하고 싶은 질문지가 적인 포스트 잇을 온 방에 빼곡이 붙이고 스타로 하여금 그 중에 몇 장을 떼어서 답하게 하는 오락 프로가 있었는데, 그 프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그 프로가 이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혹은 그냥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이런 식으로 방을 메꿔 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의 부재니, 인간 소외와 고독이니, 물질 소비로만 환원되는 인간가치니 하는 소설의 단골 주제들에 쉬이 싫증내고, 뭔가 더 자극적이고 새로운 것(?) 을 찾아 헤메는 독자들의 비위를 맞출려면 작가들도 여간 힘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그냥 여대생이 쓴 일기를 한 편 읽은 듯하다. 무겁게 깊이 있지도, 재치있게 가볍지도 않은 일기 말이다. 어쨌든, 이 글이 2003~2005 년에 발표된 단편들이고 작가가 1980년 생임을 감안 한다면 대단한 역량이다.     

*책 접기 

'그 나이에도 의심이 적고, 성격이 부드러운 사람들이란 대개 그들을 부드럽게 만들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기를, 배반을, 착취를, 불평등을 모른다. 그들은 아마 그들이 노력한 만큼 벌거나 노력한 것 이상으로 벌어온 사람들일 것이다. 모든 부드러움에는 자신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잔인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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