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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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잘 팔린다길래, 정의라는 주제도 흥미롭고, 게다가 하버드대 최고의 명강의라니, 사이트에 들어가서 짧은 영어나마 강의를 본 후, 쿠키라는 사은품도 동시에 노리면서 주문했다. 마케팅의 힘도 한 몫 했지만, 역시나 맛보기 강의에서 보았던 고장난 기관차와 난파 후 동료를 잡아 먹은 선원들에 대한 저자의 질문이 이 책을 사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대로 달려 다섯 명을 죽일 것인가, 선로를 바꿔 한 명을 죽일 것인가, 넷 모두 굶어 죽어야 하나, 동료를 죽이고서라도 세 명이 살아 남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의 답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책 어디에도 명쾌한 답은 없었다. 대리모나 동성혼, 징병제같은 현실적이고 흥미를 유발하는 질문에도 역시 정답은 없고 단지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도록 독자를 유도하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    

저자는 정의에 접근하는 세 가지 관점인 행복, 자유, 미덕의 개념을 소개한 후, 각 관점을 대표하는 철학자들의 기본 사상을 설명하고, 이를 비판하는 다른 관점에서 주장하는 해당 사상의 오류와 한계를 지적한다. 끝에 가선, 자신이 공동선의 추구라는 '미덕'의 관점에 서 있음을 밝히면서, 종교,도덕적 개념의 현실 개입을 찬성하는 오바마를 인용하며 마무리하는데, 개인적으로 내겐 두루뭉술한 느낌이었고 그래서인지 큰 설득력도 없었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 제목과 달리 정의란 무엇이다라고 정의를 내리지도 않고, 또 그것이 저자의 의도도 아닐 뿐더러, 절대로 간단하게 정의할 수 없는 것이 정의라는 걸 잘 알지만, 벤덤과 칸트, 롤스만큼 자신의 견해도 적극적으로 피력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는 생각을 잠시 했다.  

벤덤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루소의 사회 계약론, 칸트의 실천 이성등 몇 몇 윤리 시간에 배운 얄팍한 지식으로, 난이도 있는 다양한 철학적 개념들을 읽자니 조금 지루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는데,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존 롤스라는 사람을 알게 된 게 수확이라면 수확인 것 같다. 시장에서 절대적으로 평등한 조건에서의 경쟁이란 있을 수 없다는 그의 생각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타고난 재능과 치열한 노력의 결과물이라 하더라도 과연 그 재능과 노력이 온전히 나의 능력인가, 따라서 그 결과물을 누릴 당연한 권리가 있는가 하는 물음은 정의를 떠나, 인간을 좀 더 겸손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의미있는 물음이다. 어렵겠지만 롤스의 <정의론>도 한 번 읽어 보고 싶다.  

책을 다 읽어도 기관차의 방향을 틀어야 할지, 동료를 먹어야 할지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고, 어떤 문제는 행복의, 다른 문제는 자유의, 또 어떤 문제는 미덕의 편에서 판단하는 분열된 자아(?)를 보며 책을 읽기 전보다 오히려 더 혼란스럽지만, 이런 문제에 봉착했을 때, 쉽게 결론 내리기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깊이 고민해 보는 사유의 방법을 배웠다는 것이 이 책의 의의가 아닐까 싶다.   

요즘 쟁점이 되고 있는, 공무원 시험 군필자 가산은 과연 정의인가 아닌가? 군필자에게만 가산점을 주면 신체적 결함을 지닌 남자 미필자들과 애초부터 입대라는 선택의 여지가 주어지지 않았던 여성에 대한 차별은 아닐런지? 국방의 의무라는 국민의 의무로 돌아가서 여자도 남자와 동등하게 국방의 의무를 져야하지 않나? 혹은 성별 비율의 조화를 맞추어 장기적으로 공공 서비스의 효율성을 재고한다는 공리주의적 접근을 해야하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아예 공무원의 텔로스 자체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나? 책에서 주워 읽은 여러 가지 생각들이 어설프게 스스슥 지나간다.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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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한국일보 타임라이프] The Best of LIFE
알라딘(디폴트) / 197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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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말의 힘을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다. 사실 이 책은 사진에 관심이 있던 신랑이 오륙년 전 연애시절에 보수동 책방 골목에서 구입했었고, 나도 휘릭 휘릭 한 번 넘겨 보고, 결혼 후에도 신랑이랑 한 두 번은 더 같이 봤던 기억이 있는데, 그 땐 솔직히 별 재미도 감흥도 없었다. 그러다 지난 주말 우연히 다시 보게 됬는데, 아니, 이렇게 재미있을수가.  

라이프지는 1936년 창간되어 1972년 폐간되었고, 이 사진집엔 1,864권에 이르는 라이프지 한 호 한 호를 모두 검토한 후 엄선된 700장의 사진들이 실려 있다. 한국에서는 1977년 출판 되었으니, 내가 귀저기 차고 젖병 빨고 있을 때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새삼 또 신기하고 놀랍다.  

현대사, 스포츠, 세계의 지도자들, 패션, 전쟁, 어린이들, 동물들, 과학, 스타들 등 말 그대로 우리 인생의 모든 순간을 포착한 인상적인 사진들을 완전 즐감할 수 있다. 사진적 미학은 접어두고서라도, 역사와 인생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시공을 넘어 잘 포착하고 있기에 누구라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마치 사진으로 된 역사책 같은 느낌을 주는데, 아무래도 미국인의 눈을 통해 바라 본 세상과 사람들이기에, 피사체가 미국 혹은 유럽에 국한되는 한계가 있어 좀 아쉽기는 하다. 실제로 베트남전과 일본 환경오염 피해자인 딸과 엄마를 제외하고는 아시아인이 등장하는 사진은 거의 없다.  

같은 이유로, 상대적으로 미국과 세계 역사에 무지했던 예전과 비교해 조금이나마 나아진 상태에서 다시 보게 된 지금, 훨씬 더 많은 이야기들을 사진 속에서 읽어냈기 때문에 좀 더 깊은 감흥이 생긴 것이고, 역시나 같은 이유로 내가 놓친 이야기들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예술이란 것도, 자기가 딱 아는 수준 만큼만 즐길 수 있는 것이니, '세상에 공짜 점심이 없다'는 하인라인의 명 구절은 날이 갈수록 더 감탄을 자아낸다.   

베를린 수용소에서 탈출하려다 불에 타 죽은 정치범, 죽어가는 아들을 안고 망연자실하는 베트남 여자, 진주만에서 불타는 일본 전함, 총격에 맞아 쓰러지는 스페인 공화파 병사, 한 때 미국에서 유행했다는 금붕어 먹기를 하고 있는 대학생, 어둠 속에서 손전등으로 켄타우르스를 순식간에 그려내는 피카소, 헤진 청바지와 낡은 자켓이 인상적인 윌리엄 포크너, 깡통을 걷어 차고 있는 헤밍웨이, 영화 에비에이터로 익숙한 하워드 휴즈의 멋진 패션, 단란한 케네디 가족의 한 때, 링고 스타가 밟고 간 잔디를 움켜쥐고 감격에 눈물 흘리는 비틀즈의 광팬 등 한 장의 사진에 함축된 많은 이야기들과 강한 메시지를 찾아 읽는 재미로 가득 한 책이다. 더불어 1970년대 영어 표기법도 재밌게 즐길 수 있다. -스포오츠 라든가 뉴우요오크 이런 식-  

이런 좋은 사진집이 중고샵에서 겨우 일이만원에 거래 된다니, 시장에서 재화의 가치와 가격이 일치하지 않는 좋은 예다.   

*책 접기 

"사람들의 삶, 즉 라이프와 세계를 봅시다. 큰 사건들의 목격자가 됩시다. 가난한 이들의 표정과 어엿한 사람들의 거동을 살펴 봅시다. 기계, 군대, 엄청난 군중, 그리고 밀림에서 달나라에 이르기까지의 우주 삼라만상, 이들 평소에는 눈에 익지 않은 것들을 봅시다. 그림을, 탑을 그리고 대발견등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들을 봅시다. 수천 킬로미터나 저편에 있는 것, 혹은 벽이나 방 안에 숨어 있는 것, 위험을 무릅써야 접급할 수 있는 것, 사나이들이 한없이 사랑하는 여성과 어린이들, 이 모든 것을 봅시다. 그리하여 즐기고, 놀라고, 배웁시다." - 헨리.R.루스의 라이프지 창간 예고문에서, 193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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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5
토머스 모어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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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책,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막연히 이 책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처럼 한 정치가의 정치 이론서일 것으로 생각했지 소설이라고는, 그것도 공상소설 장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런 의외성이 주는 재미와 행간마다 쉬어가며 잠시 생각을 해보고서야 다음 단락으로 넘어갈 수 있게끔 만드는 날카로운 현실 풍자와 문제제기, 그리고 비판에만 그치지 않는 자신의 대안 제시까지,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작품이었다.    

1500년대에 씌어진 작품에서 비판된 영국의 사회상이 오백년도 훨씬 지난 오늘의 대한민국과 별반 다를게 없으니, 역사는 반복된다는 단순 논리로 해석해야 할지, 자본주의의 한계로 접근해야할지, 대한민국의 후진성으로 봐야할지, 토머스 모어의 천재성을 칭송해야 할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유토피아의 정치, 법과 제도, 가치, 사람들의 생활상을 묘사한 2부 보다는 짧지만 모어와 라파엘의 문답을 통해 영국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 1부가 더 재밌었는데, 2부 마무리에서 라파엘의 피곤함을 이유로 모어가 미룬 유토피아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 즉 모어가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두 사람의 격렬한 토론이 3부에서 진행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분명 토머스 모어가 이상향으로 제시한 여러 제도들의 현실 적용 가능 여부와 그에 따른 부작용과 폐해도 분명 있을 것임으로, 그런 모어(나)의 회의적 시각에 대한 라파엘의 논리적 반박까지도 속 시원하게 듣고 싶은 마음이랄까. 어쩌면 그것이 토머스 모어 자신 속에서 일어났던 회의와 긍정의 치열한 대립을 통해 유토피아라는 이상향이 탄생되는 과정을 추적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일단, 돈(사유재산)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이 가능하긴 한건지, 그렇다 치더라도, 그것만 해결되면 모든 문제들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유토피아가 될 수 있는건지. 인간의 허영심은 비단 재화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은 아닌지.  

소설 속에서도 유토피아의 건국은 그 지역을 정복한, 정복자 유토포스에 의해 야만의 상태에서 문명화되었다고 하니, 신화적 힘을 가진 초월적 영웅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이상 사회 건설이 불가함을 애초에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내겐 느껴진다. 또한 노예의 존재라든가, 식민지 건설이라든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아내, 시장과 주교, 외교관 - 아 참, 요새 자주 입에 오르내리시는 분들- 같은 지배층에 대한 특별 대우 등 당대 시대정신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 및, 여행 허가증이라든지 마치 소에 인두를 지지듯, 범죄자의 귀끝을 잘라 낙인을 하는 비인권적 측면도 있지만 이는 나의 속 좁은 트집잡기이고, 법률가, 정치가, 관료, 지주로써 당시 지배층이었던 그가, 피지배층의 입장에서 자신의 기득권 유지에 철저히 위배되는 이런 혁명적 생각들을 했고 실제로 활자화시켰다는 사실만으로도,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의 양심과 용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헨리8세의 뜻에 반하고 결국 사형 당한 것은 제쳐두고라도 말이다.  

특히, 범죄를 무조건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부조리한 사회 구조의 책임으로 해석하는 법률가로서의 그의 인간중심적 사고와, 카톨릭교도 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종교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풍토를 이상향으로 제시한 종교인으로서의 포용성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것이 기독교에 대한 강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임을 눈치채기는 했지만-  

모어 시대의 대장장이, 농부, 목수 같은 나같은 노동자 계급 보다는, 정치인, 법률가, 종교인같은 높으신 분들이 읽으면 훨씬 더 그 효용 가치가 큰 책이 바로 이 책일텐데, 과연 몇 명이나 제대로 읽었을런지. 진짜 안타깝다.     

*책 접기 

"남들보다 더 좋은 옷을 입었다고 해서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실체없는 쾌락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실제로 옷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 존경에 대해 말해봅시다. 어느 누구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수많은 무의미한 행동들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바보스러운 일 아니겠습니까? ..자신의 눈으로 진품인지 모조품인지 구별조차 못한다면 모조품이라고 해서 진품만큼의 쾌락을 주지 못할 까닭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진품이든 아니든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장님과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그는 어떤 한 종교가 옳다는 단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신은 분명 여러가지 방식으로 숭배받기를 원하므로, 사람마다 서로 다른 것을 믿도록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사람이 특정한 종교를 믿도록 다른 사람을 협박하는 일은 어리석고 또 오만한 태도라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일을 하거나 사치품 혹은 오락용품 따위를 만들어내는 이른바 귀족, 금 세공업자 같은 사람에게는 아낌없이 엄청난 보상을 해주면서 농부나, 광부, 노동자, 마부, 목수등 그들 없이는 사회가 존립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그와 같은 배려를 해주지 않는 사회제도 내에서 공정함이나 감사하는 마음 따위를 찾아 볼 수 있겠습니까?" 

"사실 현재 세계에서 널리 운영되고 있는 사회제도에서는-정말 끔찍한 일이기는 하지만- 사회를 운영한다는 미명 하에 부자들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꾀하려 하는 음모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만함은 인간으로 하여금 부유함이란 필요한 것을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얻는 것이라 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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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 영혼의 해방을 위하여 - 사회학자의 눈을 통해 본 프로이트의 삶과 사상 그리고 정신분석학
김덕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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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부제엔 '사회학자의 눈을 통해 본 프로이드의 삶과 사상 그리고 정신분석학'이라 되어 있는데 무의식을 억압하는 자아(초자아)를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가족)로 확장 해석하려는 시도외엔, 솔직히 제목까지 달만한 정도의 독특한 사회학적 관점은 잘 못 느꼈다. 단지 정신분석학 이론 자체에 국한되지 않고, 시대적/학문적 맥락이라는 큰 틀 속에서 바라 본 정신분석학을 유기적, 종합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산업 혁명 후 모든 패러다임이 바뀌고 새로운 과학과 철학의 태동 속에서, 무의식이라는 미지의 정신영역을 발견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다윈의 진화론과 맞먹는 혁명적 지성의 진보였다. 주목할 부분은, 미시적/개인적 차원을 넘어 거시적/사회적 해석 이론으로까지 확장된 이 파격적 학문이, 어느 날 갑자기 천재 과학자의 머릿속에 번쩍하고 떠올라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 문학, 철학, 과학 등 다양한 학문에 대한 프로이드의 지적 호기심과 성실한 탐구와 실험, 시행착오, 석학의 가르침을 받아 들여 오류를 발견하고 보완해 자신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 가는, 평생에 걸친 한 인간의 부단한 자기 노력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 모든 과정을 관련 과학자, 의사, 철학자들과 그들의 학문적 성과에 관한 간단한 설명과 사진을 덧붙여 느린 호흡으로 설명 하면서, 초기의 과학적 접근과 말기의 사변적, 철학적 접근, 무의식의 영향력을 강조하는 비계몽주의적 측면과 동시에 이성의 힘을 긍정하는 계몽주의적 측면, 결정론적이면서도 자유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정신 분석학의 이중적 측면들을 부각시키고, 남성 중심적 해석과, 외디푸스 컴플렉스의 보편적 적용 불가라는 한계도 동시에 지적한다.   

마지막에 나치와 독일민족의 죄의식 부재를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기술한 장이 있는데 꽤 흥미롭다. 독일 국민은 이상화된 자아로서 히틀러를 사랑했고, 그가 죽었을때, 자아 상실에 따른 우울함을 겪어야 하는 것이 마땅했지만, 심리적 방어기제로서 의식적으로 히틀러의 존재를 그들의 기억 속에서 지우고 모든 책임의 원인을 히틀러라는 개인에게 돌려버림으로써 개개인은 자신의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천황을 향한 일본인의 감정, 베트남을 향한 우리의 감정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 될 수 있을까?  

다 읽고 나니,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영혼의 해방 과정에 대해, 자유 연상법에 대한 간단한 설명 외엔 id의 억압된 욕구를 과연 어떤 식으로 의식의 세계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지, 욕구 충족과 사회적 규제 사이의 적절한 조화란 것이 어느 정도 수준을 말하는 것인지, 완전한 해방이란 것이 가능하긴 한건지, 한 번 해방된 억압의 재발 가능성은 없는지 등등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심도있는 설명 혹은 사례 제시가 없어 좀 아쉽긴 하다.     

*책 접기  

"공장은 철저한 규율사회가 되었다...즉 개인들은 노동과 생산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공적,사적 삶의 영역에서 육체적 또는 감정적 욕구와 욕망을 통제하고 합리적으로 행위할 것이 요구되었다. ..그리고 가족과 학교등 사회화 기관은 개인들에게 이러한 규율사회의 이념을 교육했다. 이 모든 것은 산업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양성하고 공급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개인들에게 강제적으로 요구된 자기통제와 자기유율은 그들에 대한 억압으로 이어졌다."   

"..사실 오랫동안 존경하고 감탄해마지 않은 아버지를 살해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전혀 밝혀지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세계를 홀로 탐구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고독한 일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고통과 고독이 있었기에 과학혁명이 가능했다. 만약 그러한 고통과 고독을 감내할 수 없었다면 프로이트는 그저 샤르코나 브로이어의 충실한 아류에 머물렀을 것이다." 

"인간은 이웃을 상대로 그 자신의 공격 본능을 만족시키고, 아무런 보상도 없이 이웃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동의도 없이 이웃을 성적으로 이용하고, 이웃의 재물을 강탈하고, 이웃을 경멸하고, 이웃에게 고통을 주고, 이웃을 고문하고 죽이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이다." 

"프로이드는 인간을 어떠한 경우에도 관계 속에서 관찰하고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간의 충동이나 욕망은 그 자체로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우리가 인간의 충동과 욕망을 그리고 그 발현을 선과 악으로 분류하는 기준은, 전적으로 그것이 인간 공동체의 욕구나 요구와 어떠한 관계를 갖느냐 하는 문제이다." 

"자아를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문화와 사회를 위한 첫 번째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그러므로 문화는 인간에 대해 필연적으로 양가적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즉 각 개인은 사실상 문화의 적이지만, 동시에 문화는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관심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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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 국민, 국가, 고향, 죽음, 희망, 예술에 대한 서경식의 이야기 철수와영희 강연집 모음 4
서경식 지음, 송현숙 그림 / 철수와영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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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동안 내내 불편했다. 그 불편함의 이유가 뭔지 생각해 봤다. 일단 의문문의 제목이 암시하듯 저자는 끊임없는 질문들을 쏟아낸다. 그것도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가, 국민, 가족, 죽음 같은 기본 개념 정의부터 시작해서, 그것들에 대한 일반적 통념들이 정말 맞는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는데 그렇다고 답을 바로 시원하게 내주는 것도 아니다. 마치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처럼, 허를 찌르는 연이은 질문을 통해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고, 새로운 인식의 틀을 제공하여 독자 스스로 자신만의 진실에 도달할 수 있도록 생각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처음엔 이 사람 정말 깐깐한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팍 올 정도로, 국민이니 시민이니 하는 단어의 정의부터 조목 조목 따지면서 일본인들의 잘못된 역사인식과 재일 조선인에 대한 부당한 차별속에 내재된 혈통주의, 국가주의, 국민주의를 비판하더니, 우리에겐 일종의 성역인 '가족'의 억압적 측면, 본능처럼 각인된 삶은 선, 죽음은 악이라는 개념에 차갑고 섬뜩한 메스를 들이대는데, 인간을 식용으로 사육되는 돼지에 빗대고, 자살 시도를 했던 두 형이 왜 죽었으면 안 됐을까 하는 상식을 넘는 질문까지 던지는 저자를 보며, 처음엔 '에이 이렇게까지 야박하게 생각할 거 없잖아' 싶다가도 저자의 조목조목한 논리를 읽고 있노라면 '아 그럴 수도 있겠군, 맞아 이런 측면도 있었군' 하면서 나도 모르게 어느 정도는 저자의 사유 방식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맞다고 생각했던 기본 가치관들을 모조리 뒤엎는 도발적(?) 생각들을 읽는 내내 적잖이 혼란스러웠고, 저자의 이런 날카로운 문제인식과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정의에 대한 강한 신념 앞에, 나의 무딘 사유와 타협의 기회주의 본성이 상대적으로 부각되면서, 뭔가 껄끄럽고 불편하고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재일 조선인, 경계인, 소수자, 차별받고 억압당한 자, 디아스포라라는 정체성을 가진 이 지식인의 어둡고 까칠한 남다른 세상 들여다 보기 방식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철저히 의심하고 끝없이 회의하며 자신만의 도덕과 이데올로기를 찾아 정신적으로 독립해가는 저자의 자기 투쟁 방식을 통해 나 자신을 되돌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뜨겁고 치열한 책이었다.  

그렇게 해야 하는데 못 하는 것하고, 어차피 못 할 일이니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하고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르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책 접기 

"..하나의 국민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하고 노동자로 만들어 내는 과정이 똑같이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산업 노동자가 되는 것하고 국민화되는 과정은 다르면서도 같은, 그런 모순되면서도 서로 결부된 과정으로 진행됐다는 것입니다....왜냐면 국민주의는 문화나 언어나 생활양식으로 아주 깊이 내면화되는 것이니까요."  

"국가는 피해의 경험을 얼마든지 국민주의의 서사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항상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살고 죽어 가는 그런 과정 자체를 국가가 지배하고 있다, 통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가가 통제하고 있는데도, 우리가 우리 것인 줄 오해하고 있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거지요. 우리 같이 죽읍시다 이런 얘기가 아니에요. 죽음에 대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결단, 우리 자신의 독립적인 정신으로 볼 수 없는 한 우리는 국가나 권력의 노예일 수 밖에 없다, 이런 거지요."  

"당연하다 싶은 것도 다시 한번 의심하고 또 의심해 봐야 합니다."

"내가 여기 있는 어떤 사람에게 애정이나 책임감, 연대감, 이 사람하고 함께 있고 싶다는 감정을 느끼고 이 때문에 살아야 한다고 느낄 때, 진짜 이것이 자기 것인지, 자기 내면에서 나오는 것인지, 어떤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누구를 모방한 것인지,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자신의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우리가 독립되어 가는 겁니다." 

"...지배층의 서사에 대항에 억압받는 자의 서사를 대치시키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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