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하도 잘 팔린다길래, 정의라는 주제도 흥미롭고, 게다가 하버드대 최고의 명강의라니, 사이트에 들어가서 짧은 영어나마 강의를 본 후, 쿠키라는 사은품도 동시에 노리면서 주문했다. 마케팅의 힘도 한 몫 했지만, 역시나 맛보기 강의에서 보았던 고장난 기관차와 난파 후 동료를 잡아 먹은 선원들에 대한 저자의 질문이 이 책을 사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대로 달려 다섯 명을 죽일 것인가, 선로를 바꿔 한 명을 죽일 것인가, 넷 모두 굶어 죽어야 하나, 동료를 죽이고서라도 세 명이 살아 남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의 답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책 어디에도 명쾌한 답은 없었다. 대리모나 동성혼, 징병제같은 현실적이고 흥미를 유발하는 질문에도 역시 정답은 없고 단지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도록 독자를 유도하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    

저자는 정의에 접근하는 세 가지 관점인 행복, 자유, 미덕의 개념을 소개한 후, 각 관점을 대표하는 철학자들의 기본 사상을 설명하고, 이를 비판하는 다른 관점에서 주장하는 해당 사상의 오류와 한계를 지적한다. 끝에 가선, 자신이 공동선의 추구라는 '미덕'의 관점에 서 있음을 밝히면서, 종교,도덕적 개념의 현실 개입을 찬성하는 오바마를 인용하며 마무리하는데, 개인적으로 내겐 두루뭉술한 느낌이었고 그래서인지 큰 설득력도 없었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 제목과 달리 정의란 무엇이다라고 정의를 내리지도 않고, 또 그것이 저자의 의도도 아닐 뿐더러, 절대로 간단하게 정의할 수 없는 것이 정의라는 걸 잘 알지만, 벤덤과 칸트, 롤스만큼 자신의 견해도 적극적으로 피력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는 생각을 잠시 했다.  

벤덤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루소의 사회 계약론, 칸트의 실천 이성등 몇 몇 윤리 시간에 배운 얄팍한 지식으로, 난이도 있는 다양한 철학적 개념들을 읽자니 조금 지루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는데,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존 롤스라는 사람을 알게 된 게 수확이라면 수확인 것 같다. 시장에서 절대적으로 평등한 조건에서의 경쟁이란 있을 수 없다는 그의 생각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타고난 재능과 치열한 노력의 결과물이라 하더라도 과연 그 재능과 노력이 온전히 나의 능력인가, 따라서 그 결과물을 누릴 당연한 권리가 있는가 하는 물음은 정의를 떠나, 인간을 좀 더 겸손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의미있는 물음이다. 어렵겠지만 롤스의 <정의론>도 한 번 읽어 보고 싶다.  

책을 다 읽어도 기관차의 방향을 틀어야 할지, 동료를 먹어야 할지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고, 어떤 문제는 행복의, 다른 문제는 자유의, 또 어떤 문제는 미덕의 편에서 판단하는 분열된 자아(?)를 보며 책을 읽기 전보다 오히려 더 혼란스럽지만, 이런 문제에 봉착했을 때, 쉽게 결론 내리기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깊이 고민해 보는 사유의 방법을 배웠다는 것이 이 책의 의의가 아닐까 싶다.   

요즘 쟁점이 되고 있는, 공무원 시험 군필자 가산은 과연 정의인가 아닌가? 군필자에게만 가산점을 주면 신체적 결함을 지닌 남자 미필자들과 애초부터 입대라는 선택의 여지가 주어지지 않았던 여성에 대한 차별은 아닐런지? 국방의 의무라는 국민의 의무로 돌아가서 여자도 남자와 동등하게 국방의 의무를 져야하지 않나? 혹은 성별 비율의 조화를 맞추어 장기적으로 공공 서비스의 효율성을 재고한다는 공리주의적 접근을 해야하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아예 공무원의 텔로스 자체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나? 책에서 주워 읽은 여러 가지 생각들이 어설프게 스스슥 지나간다.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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