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5
토머스 모어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책,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막연히 이 책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처럼 한 정치가의 정치 이론서일 것으로 생각했지 소설이라고는, 그것도 공상소설 장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런 의외성이 주는 재미와 행간마다 쉬어가며 잠시 생각을 해보고서야 다음 단락으로 넘어갈 수 있게끔 만드는 날카로운 현실 풍자와 문제제기, 그리고 비판에만 그치지 않는 자신의 대안 제시까지,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작품이었다.    

1500년대에 씌어진 작품에서 비판된 영국의 사회상이 오백년도 훨씬 지난 오늘의 대한민국과 별반 다를게 없으니, 역사는 반복된다는 단순 논리로 해석해야 할지, 자본주의의 한계로 접근해야할지, 대한민국의 후진성으로 봐야할지, 토머스 모어의 천재성을 칭송해야 할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유토피아의 정치, 법과 제도, 가치, 사람들의 생활상을 묘사한 2부 보다는 짧지만 모어와 라파엘의 문답을 통해 영국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 1부가 더 재밌었는데, 2부 마무리에서 라파엘의 피곤함을 이유로 모어가 미룬 유토피아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 즉 모어가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두 사람의 격렬한 토론이 3부에서 진행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분명 토머스 모어가 이상향으로 제시한 여러 제도들의 현실 적용 가능 여부와 그에 따른 부작용과 폐해도 분명 있을 것임으로, 그런 모어(나)의 회의적 시각에 대한 라파엘의 논리적 반박까지도 속 시원하게 듣고 싶은 마음이랄까. 어쩌면 그것이 토머스 모어 자신 속에서 일어났던 회의와 긍정의 치열한 대립을 통해 유토피아라는 이상향이 탄생되는 과정을 추적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일단, 돈(사유재산)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이 가능하긴 한건지, 그렇다 치더라도, 그것만 해결되면 모든 문제들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유토피아가 될 수 있는건지. 인간의 허영심은 비단 재화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은 아닌지.  

소설 속에서도 유토피아의 건국은 그 지역을 정복한, 정복자 유토포스에 의해 야만의 상태에서 문명화되었다고 하니, 신화적 힘을 가진 초월적 영웅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이상 사회 건설이 불가함을 애초에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내겐 느껴진다. 또한 노예의 존재라든가, 식민지 건설이라든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아내, 시장과 주교, 외교관 - 아 참, 요새 자주 입에 오르내리시는 분들- 같은 지배층에 대한 특별 대우 등 당대 시대정신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 및, 여행 허가증이라든지 마치 소에 인두를 지지듯, 범죄자의 귀끝을 잘라 낙인을 하는 비인권적 측면도 있지만 이는 나의 속 좁은 트집잡기이고, 법률가, 정치가, 관료, 지주로써 당시 지배층이었던 그가, 피지배층의 입장에서 자신의 기득권 유지에 철저히 위배되는 이런 혁명적 생각들을 했고 실제로 활자화시켰다는 사실만으로도,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의 양심과 용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헨리8세의 뜻에 반하고 결국 사형 당한 것은 제쳐두고라도 말이다.  

특히, 범죄를 무조건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부조리한 사회 구조의 책임으로 해석하는 법률가로서의 그의 인간중심적 사고와, 카톨릭교도 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종교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풍토를 이상향으로 제시한 종교인으로서의 포용성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것이 기독교에 대한 강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임을 눈치채기는 했지만-  

모어 시대의 대장장이, 농부, 목수 같은 나같은 노동자 계급 보다는, 정치인, 법률가, 종교인같은 높으신 분들이 읽으면 훨씬 더 그 효용 가치가 큰 책이 바로 이 책일텐데, 과연 몇 명이나 제대로 읽었을런지. 진짜 안타깝다.     

*책 접기 

"남들보다 더 좋은 옷을 입었다고 해서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실체없는 쾌락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실제로 옷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 존경에 대해 말해봅시다. 어느 누구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수많은 무의미한 행동들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바보스러운 일 아니겠습니까? ..자신의 눈으로 진품인지 모조품인지 구별조차 못한다면 모조품이라고 해서 진품만큼의 쾌락을 주지 못할 까닭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진품이든 아니든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장님과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그는 어떤 한 종교가 옳다는 단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신은 분명 여러가지 방식으로 숭배받기를 원하므로, 사람마다 서로 다른 것을 믿도록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사람이 특정한 종교를 믿도록 다른 사람을 협박하는 일은 어리석고 또 오만한 태도라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일을 하거나 사치품 혹은 오락용품 따위를 만들어내는 이른바 귀족, 금 세공업자 같은 사람에게는 아낌없이 엄청난 보상을 해주면서 농부나, 광부, 노동자, 마부, 목수등 그들 없이는 사회가 존립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그와 같은 배려를 해주지 않는 사회제도 내에서 공정함이나 감사하는 마음 따위를 찾아 볼 수 있겠습니까?" 

"사실 현재 세계에서 널리 운영되고 있는 사회제도에서는-정말 끔찍한 일이기는 하지만- 사회를 운영한다는 미명 하에 부자들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꾀하려 하는 음모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만함은 인간으로 하여금 부유함이란 필요한 것을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얻는 것이라 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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