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 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는 매일 울면서 다녔어. 회사 일보다는 출퇴근 때문에. 아침에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아현역에서역삼역까지 신도림 거쳐서 가 본 적 있어? 인간성이고 존엄이고 뭐고 간에 생존의 문제 앞에서는 다 장식품 같은 거라는사실을 몸으로 알게 돼..
중년 남자들이 빙고를 부르는 이유는 다들 너무 힘들어서 아닐까. 다들 이 땅이 너무 싫어서 몰래 이민을 고민하는거지. 그걸 억지로 부정하고 자기 자신한테 최면을 걸고 싶은거야. "모든 게 마음먹기 달렸어." 라고,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라고. 그런데 이민을 가면 왜 안 되지?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
홀짝홀짝 맥주를 마시며 어린 시절에 읽었던 동화를 떠올렸어, 의좋은 형제보다 내가 백배는 더 좋아했던 동화를어쩌면 동화는 아니었는지도 몰라. ‘디즈니 그림 명작 전집‘의한 권이었으니까. 할머니가 폐지와 함께 주워 온 책이었어. 나는 그 책을 문자 그대로 종이가 닳을 때까지 읽었지.. 추위를 싫어한 펭귄‘이라는 제목이었어. 표지에는 펭귄 한마리가 부루퉁한 표정으로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피워 놓고불을 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지. 펭귄이 털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두르고 벙어리장갑을 끼고 있어. 뒤로는 그 펭귄이 사는이글루가 한 채 보이고, 주인공 펭귄 이름이…… 파블로! 파블로였어. 파블로는 펭귄이지만 추위를 싫어했어. 평소에는 이글루안에 틀어박혀서 난로를 피우고 사는데, 친구들이 억지로 밖으로 불러내지.
그랬다가 물에 빠져서 몸이 꽁꽁 얼어서 집으로 돌아와. 커다란 얼음에 갇힌 파블로를 친구들이 난로 위에 올려서 녹이지.파블로는 따뜻한 열대지방으로 떠나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해, 처음에는 아마 난로를 짊어지고 스키를 탔을 거야. 하지만 또 얼음 기둥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 다음에는 몸에 핫 팩을 두르고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 열대를 향해 걸어가. 그러나 이번에도 실패. 마지막에는 자기 이글루와 집 주변 얼음을 통째로 잘라 얼음 배를 만들어. 항해는 처음에는 순조로운 듯하지만 점점배가 녹기 시작해. 나중에는 아주 작은 얼음 조각밖에 남지않지. 그 얼음 조각이 녹아 사라지는 순간 파블로는 펄쩍 뛰어 자기 욕조에 들어가서는 그 욕조를 새로운 배 삼아 항해를 계속하지.파블로는 결국 하와이처럼 생긴 섬에 도착해,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파란 바다 앞에 모래사장이 있고 야자수가 있고 거북이가 다녀. 마지막 장면이 이래. 파블로가 선글라스를쓰고 야자수 사이에 해먹을 쳐서 그 위에 누워 있는 거야. 음료수를 마시고 부채를 부치면서, 그 아래 이런 멋진 글귀가있었어."다시는 춥지 않을 거예요."
"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 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 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
한국에서는 딱히 비전이 없으니까. 명문대를 나온 것도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엔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돼.
당시에 나는 다른 한국인은 한 명도 없는 셰어 하우스에서 살았는데, 거긴 정말 최악이었어. 거실에 커튼처럼 천막을치고 작은 공간을 만들어 거기에 침대를 놓고 살았거든. 막상살아 보니 방에서 사는 것과 거실에서 사는 게 크게 달라. 거실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그대로 들어왔고, 누군가 불쑥 천을 ㄷㄹ추고 안으로 들어올것 같은 두려움에 늘 시달렸어.
한국이 싫다고 해외로의 이주 도피? 진정한 탈출일까?요즘 한국 사회는 경제력을 가진 부모가 있거나 소위 스카이 출신이나 해외 유학파의 학벌, 빼어난 외모, 신이 주신 운동 능력 중 한가지라도 가지지 못한 이들이 살아가기엔 너무 힘든 세상이 되었다. 자본주의 세습을 통해 가진자의 자식들은 어릴적부터 부모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며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예술적 기질을 극대화 시킨다. 소위 보통사람들과의 유리천장이 생기는 것이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이러한 사회에 불만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인다고는 하지만 현실에 체념하고 수긍한체 하루하루를 보낸다. 노력한만큼 공정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가 아니기에 절망과 타협이 익숙하다. 노력한만큼의 대가가 없는 세상, 한국이 싫어서 한국을 떠난다면 과연 행복한 걸까??이 책은 한국이 싫어 호주로 떠난 계나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처한 이시대의 싱황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것을 여러가지의 에피소드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난 한국이 싫기도 하지만 한국이 좋다. 특히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가 인천공항의 자동 입국 심사대를 통과할때, 그 뿌듯함이란.. 비단 인천공항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장점은 수없이 많다고 생각한다.(it강국이기에 어딜가도 깡시골에서도 lte 다 터진다.)우리의 현실을 도피하기 보단 장점을 극대화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영리하게 살아가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장금아. 사람들이 너를 오해하는 게 있다. 네 능력은 뛰어나것에 있는 게 아니다. 쉬지 않고 가는 데 있어. 모두가 그만두는때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시작하는 것. 너는 얼음 속에 던져 져 있어도 꽃을 피우는 꽃씨야.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네 능력은 뛰어난 것에 있는 게 아니다. 쉬지 않고 가는 데 있어"라고 격려해주면서도, 끝에는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라며알아주는 마음. 우리 서로에게 이것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누구는 세상으로부터 전면적인 인정, 사랑, 존경을 받고 싶어하고 누구는 세상에 전면적으로 헌신하고 싶어하지만 누군가는 광장 속에서는 살기 힘든 체질이기도 하다. 그걸 죽어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레고에는 여러 모양의 조각들이 있는 거다.
개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인 집단이 거꾸로 개인의 행복의 장 대가 되어버리는 순간, 집단이라는 리바이어던은 바다괴물로 돌 아가 개인을 삼킨다. 집단 내에서의 서열, 타인과의 비교가 행복의 기준인 사회에서는 개인은 분수를 지킬 줄 아는 노예가 되어 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사다리 위로 한 칸이라도 더 올라가려고 아등바등 매달려 있다가 때가 되면 무덤으로 떨어질 뿐이다. 행복의 주어가 잘못 쓰여 있는 사회의 비극 이다.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 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 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정답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어사 박문수나 판관 포청천처럼 누군가 강력한 직권 발동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악인을 엄벌하는 것을 바란다. 정의롭고 인간적이고 혜안 있는 영웅적 정치인이 홀연히 백마 타고 나타나서악인들을 때려잡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링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한국사회는 이런 사회다.실제 하는 일, 봉급도 중요하지만 남들 보기에 번듯한지‘ ‘어떤급인지‘가 실체적인 중요성을 가진 사회인 거다.
‘갑질‘의 심리 역시 수직적 가치관의 사회에서 쥐꼬리만한 권력이라도 있으면 그걸 이용해 상대에 대한 자신의 우위를 확인하려는 수컷 동물 사이의 우세경쟁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내가누군지 알아?"가 이렇게 자주 튀어나오는 사회가 있을까. 이런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타인에 대한 관용 부족으로 이어져 약자혐오와 위악적인 공격성을 낳는다. 약자는 자기보다 더 약자를 찾아내기 위해 필사적이다.
우리가 더 불행한 이유는 결국 우리 스스로 자승자박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그가 가장 많이, 반복해서 한 말은 의외로 소박한 것이었다.훌륭한 사람이 되기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이다.
북유럽, 서유럽, 북미의 행복도가 높은 데 비하여 한국, 일본, 싱가포르의 행복도는 이상할 정도로 낮게 나타나는데, 그 원인을 개인주의적 문화와 집단주의적 문화의 차이로 분석한다.
타인과의 비교에 대한 집착이 무한경쟁을 낳는다. 잘나가는집단의 일원이 되어야 비로소 안도하지만, 그다음부터는 탈락의공포에 시달린다. 결국 자존감 결핍으로 인한 집단 의존증은 집단의 뒤에 숨은 무책임한 이기주의와 쉽게 결합한다. 한 개인으로는위축되어 있으면서도 익명의 가면을 쓰면 뻔뻔스러워지고 무리를 지으면 잔혹해진다. 고도성장기의 신화가 끝난 저성장시대, 강자와 약자의 격차는 넘을 수 없게 크고, 약자는 위는 넘볼 수 없으니 어떻게든 무리를 지어 더 약한 자와 구분하려든다. 가진 것은이 나라 국적뿐인 이들이 이주민들을 멸시하고, 성기 하나가 마지막 자존심인 남성들이 여성을 증오한다.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그가 믿었을지 알수 없는 천국에서의 명복을 빌기보다 "당신의 아들이어도 좋고,엄마 오빠 강아지 그 무엇으로도 다시 인연을 이어가고 싶지만,만일 내가 택할 수 있는 게 주어지고 우리가 윤회를 통해 다음생에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면 나는 다시 한번 당신의 남자친구가 되고 싶고, 다시 한번 당신의 남편이 되고 싶다"는 아내를 향한 그 의 절절한 유언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할 따름이다.
인지, 판단, 차별적인 감정, 정신 활동, 도덕적 선호 등 인간의 능력은 선택을 통해서만 발휘될 수 있다. 관습에 따라서만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선택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는 최고를 가려내고 구하는 훈련을 도무지 할 수 없다. 정신과 도덕도 근육과 마찬가지로 사용해야 좋아진다.(...)세상이 혹은 자기 몫에 해당하는 세상이 자신이 인생 진로를 대신 선택하게 내버려 두는 사람은 유인원처럼 흉내 내는 능력만이 필요할 뿐이다. 자기 계획을 자기가 선택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 할 수 있다.
공리주의를 주창한 위대한 두 인물을 비교하자면, 밀은 보다 인간적인 철학자였고, 벤담은 보다 일관된 철학자였다.
실제로 미국의 상위 1퍼센트가 미국 전체 부의 3분의 1을 소유하는데, 이는 하위90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액수다.또한 상위 10퍼센트 가정이 미국 전체 소득의 42퍼센트, 전체 부의 71 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규제 없는 시장을 옹호하면서 정부 규제에 반대하는데, 이는 경제 효율성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 때문이다. 이들의 핵심 주장은 우리 개인에게는 자유라는 기본권이 있으며,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한, 우리는 자신의 소유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아나키,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 Anarchy, State and Utopia (1974)란 책에서, 로버트 노직 Robert Nozick은 자유지상주의 원칙을 철학적으로 옹호하며, 분배정의라는 익숙한 개념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개인에게는 "워낙 강력하고 광범위한 권리가 있어서, 국가가 할 일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의문이다"라는 주장으로 시작한다. 그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오직 계약의 이행을 강제하고, 사람들을 폭력과 절도와 사기에서 보호하는 제한적인 기능만 수행하는 최소 국가만이 정당화될 수 있다. 이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일을 한다면, 어떤 일도 강요받지 않을 개인의권리를 침해할 수밖에 없으며, 그런 국가는 정당화될 수 없다."다른 사람을 돕는 행동은 남에게 강요해서도 안 되고 남으로부터 강요받아서도 안 된다.
노직은 현재의 경제적 지위를 얻는 것에 기여한 초기 소유물의 정당 성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과세(내 수입을 가져가는 행위)를 도덕적으로 강제 노동(내 노동을 가져가는 행위)과 노예제(나에 대한 내 소유권을 부정하 는 행위)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본다.
반면 시장 회의론자들은 (...) 이들은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이 겉보기처럼 항상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돈으로 거래할 경우 타락하거나 질이 떨어지는 재화와 사회적 행위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자유지상주의나 공리주의 논리로 생각할 경우, 병역을 배분하는 최선의 방법은 지원자들로 꾸리는 모병제이고, 그다음이 남북 전쟁 당시의 혼합형 제도이며, 징병제는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선택이다.하지만 이러한 주장에는 최소한 두 가지 반박이 가능하다. 하나는 공정성과 자유가 침해된다는 반박이고, 또 하나는 시민의 미덕과 공동선을해친다는 반박이다.
가난과 경제적 어려움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군 입대 말고 다른 대안이 없을 수 있다. (...) 미국 사회에서 기회 불균등이 지속되는 한, 시장을 통해 병역을 배분하는 것은 대안 없는 사람들에 대한 부당한 처사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배심원을 고용하지 않고 징발하는 이유는 법정에서 정의를 집행하는 행위를 모든 시민이 함께 나눠야 할 책임으로 보기 때문이다.(...) 배심원 활동은 단지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에 그치지 않는다. 배심원 의무가 늘 의식을 고양시키지는 않겠지만, 모든 시민이 그 책임을 수행해야 한가는 생각은 법정과 사람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병역을 시민의 의무로 본 가장 유명한 발언 가운데 하나는 제네생의 계몽주의 정치 이론가 장 자크 루소 Jean-Jacques Rousseau 의 말이다. 그는 『사회 계약론 The Social Contract』(1762)에서 시민의 이미거래되는 물건으로 바꾸는 행위는 자유를 증진시키는 게 아니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공공의 업무를 시민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로 여기지 않게 되면,그리고 그것을 사람이 아닌 돈으로 해결하려 들면, 국가의 몰락이 가까워 온다. 전쟁터로 진군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그들은 군대에 돈을지불하고 집에 머무른다. (.……) 진정으로 자유로운 국가라면 시민은모든 일을 직접 하지, 돈으로 해결하지 않는다. 돈으로 의무를 면제받으려 하지 않고, 의무를 직접 이행할 특권을 얻기 위해 오히려 돈을 지불할 것이다. 나는 사회 통념과 달리, 강제 노동이 세금보다 자유에 덜위배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으므로 물건처럼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시각은 (존중받아야 하는) 인간과 (언제나 사용될 수 있는) 물건의 차이를 강조하면서, 이를 근본적인 도덕적 차이로인식한다. 이러한 견해를 가장 강하게 펼친 사람이 다음 장에서 살펴볼 이마누엘 칸트다.
인도의 대리 출산과 앤드루 카네기가 남북전쟁에서 자기 대신 싸울 군인을 고용한 사례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사례에서 옳고 그름을 생각하다 보면 정의에 대해 둘로 갈라져 경쟁하는 두 가지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자유 시장에서 우리가 하는 선택은얼마나 자유로울까? 세상에는 시장에서 취급하는 것이 영예롭지 못하며 돈으로 살 수 없는 미덕과 고귀한 재화가 존재할까?
칸트는 이렇게 말한다. "선한 의지가 선한 까닭은 그것이 어떤 효과나결과를 낳기 때문이 아니다." 선한 의지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든 그렇지 않든 그 자체로 선하다. "비록 (.....) 이 의지가 원래 의도를 실천할 힘이 매우 부족하다 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를 얻을 수 없다 해도 (......) 그것은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 보석처럼 빛날 것이다."
현재는 자발적 구매자들이 자유롭게 시장에 들어가 자발적 판매자를 만나고,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정상적인 자유 시장 상황이 아니다. 비상 상황에서 압력을 받는 구매자들에게 자유는 없다. 안전한 숙소와 같은 생필품의 구매는 강제되고 있다.
여기는 미국입니다. 우리는 부를 폄하하지 않습니다. 성공한 사람을 탐탁하지 않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성공은 보상 받아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분노하는, 또한 마땅히 화를 내는 이유는경영진들이 실패하고도 포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돈이미국 납세자들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부진한 작황이 날씨 탓이라면, 날이 좋을 때의 풍요로운 수확 역시 유능하고 부지런한 금융인, 증권 거래인, 월스트리트 경영자들 덕분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때로 도덕적 추론을 타인을 설득하는 수단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도덕적 추론은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분별하는 수단이자, 우리가 어떤 신념을 왜 믿는지 이해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 책의 목적은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알려 주는 정치 사상사를 다루는 데 있는 것이아니라, 독자들로 하여금 정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정립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도록 만들어, 자신이 무엇을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도록 하는 데 있다.
도덕은 목숨을 숫자로 세고, 비용과 이익을 저울질하는문제인가, 아니면 어떤 도덕적 의무와 인권은 기본적인 것이어서 그러한 계산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인가? 그리고 어떤 권리가 그토록 기본적인 것이라면, 타고난 권리든, 신성한 권리든, 빼앗을 수 없는 권리든, 정대적 권리든 간에, 그것을 어떻게 가려낼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들이 기본 권리인 이유는 무엇인가?
영국의 도덕 철학자이자 법 개혁가인 제러미 벤담은 공리주의 원칙을 만들었다. 공리주의의 핵심은 간결하며 직관적으로 이해 가능하다.도덕의 최고 원칙은 행복의 극대화, 즉 쾌락의 총량이 고통의 총량보다많게 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벤담에 따르면, 공리 utility‘를 극대화하는행위는 무엇이든 옳다. 그가 말하는 ‘공리‘란 쾌락이나 행복을 가져오고 고통이나 불행을 막는 일체를 의미한다.
모든 도덕적다툼은 알고 보면 쾌락을 극대화하고 고통을 극소화하는 공리주의 원칙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둘러싼 이견일 뿐, 원칙 그 자체에 대한이견이 아니다.
오멜라스 사람들은 아이가 그곳에 있음을 모두 알고 있다. (……) 그아이가 왜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 자신들의 행복,도시의 아름다움,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정, 아이들의 건강, 학자들의지혜, 장인들의 기술, 그리고 심지어는 풍성한 수확과 온화한 날씨조차 전적으로 그 아이의 혐오스러울 만큼 비참한 처지에 달려 있다는사실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 물론 아이를 그 지독한 곳에서 밝은 햇살이 비치는 바깥으로 데리고 나온다면, 아이를 깨끗하게 씻기고 잘 먹이고 편않게 해준다면, 그것은 정말로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한다면 당장 그날 그 시간부터 지금껏 오멜라스가 누렸건 모든 행복과 아름다움과 즐거움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계약인 것이다.
과연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일까? 벤담의 공리주의에 대한 첫 번째 반박, 즉 인간의 기본권 존중을 내세우는 사람은 아무리 도시 전체가 행복해진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라고 말한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라 하더라도 죄 없는 아이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잘못이다.
아마도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상호 작용 철학 강의로 기록될 노천극장에서의 강의에 참여했다는 사실에 황홀했다. 하지만 내가 가장 큰 감동을 받은 이유는따로 있었다. 내 생각에, 아마도 서울의 따뜻한 봄날 저녁 야외에 모였던 대중의 생각은 고대 아테네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느꼈던 생각과 비슷했을 것이다. 이견을 가진 사람들이 정중하고 예의를 갖춰 나눈그 대화는 민주주의 시민정신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