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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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 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는 매일 울면서 다녔어. 회사 일보다는 출퇴근 때문에. 아침에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아현역에서역삼역까지 신도림 거쳐서 가 본 적 있어? 인간성이고 존엄이고 뭐고 간에 생존의 문제 앞에서는 다 장식품 같은 거라는사실을 몸으로 알게 돼..

중년 남자들이 빙고를 부르는 이유는 다들 너무 힘들어서 아닐까. 다들 이 땅이 너무 싫어서 몰래 이민을 고민하는거지. 그걸 억지로 부정하고 자기 자신한테 최면을 걸고 싶은거야. "모든 게 마음먹기 달렸어." 라고,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라고. 그런데 이민을 가면 왜 안 되지?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

홀짝홀짝 맥주를 마시며 어린 시절에 읽었던 동화를 떠올렸어, 의좋은 형제보다 내가 백배는 더 좋아했던 동화를어쩌면 동화는 아니었는지도 몰라. ‘디즈니 그림 명작 전집‘의한 권이었으니까. 할머니가 폐지와 함께 주워 온 책이었어. 나는 그 책을 문자 그대로 종이가 닳을 때까지 읽었지..
추위를 싫어한 펭귄‘이라는 제목이었어. 표지에는 펭귄 한마리가 부루퉁한 표정으로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피워 놓고불을 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지. 펭귄이 털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두르고 벙어리장갑을 끼고 있어. 뒤로는 그 펭귄이 사는이글루가 한 채 보이고, 주인공 펭귄 이름이…… 파블로! 파블로였어.
파블로는 펭귄이지만 추위를 싫어했어. 평소에는 이글루안에 틀어박혀서 난로를 피우고 사는데, 친구들이 억지로 밖으로 불러내지.

그랬다가 물에 빠져서 몸이 꽁꽁 얼어서 집으로 돌아와. 커다란 얼음에 갇힌 파블로를 친구들이 난로 위에 올려서 녹이지.
파블로는 따뜻한 열대지방으로 떠나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해, 처음에는 아마 난로를 짊어지고 스키를 탔을 거야. 하지만 또 얼음 기둥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 다음에는 몸에 핫 팩을 두르고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 열대를 향해 걸어가. 그러나 이번에도 실패.
마지막에는 자기 이글루와 집 주변 얼음을 통째로 잘라 얼음 배를 만들어. 항해는 처음에는 순조로운 듯하지만 점점배가 녹기 시작해. 나중에는 아주 작은 얼음 조각밖에 남지않지. 그 얼음 조각이 녹아 사라지는 순간 파블로는 펄쩍 뛰어 자기 욕조에 들어가서는 그 욕조를 새로운 배 삼아 항해를 계속하지.
파블로는 결국 하와이처럼 생긴 섬에 도착해,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파란 바다 앞에 모래사장이 있고 야자수가 있고 거북이가 다녀. 마지막 장면이 이래. 파블로가 선글라스를쓰고 야자수 사이에 해먹을 쳐서 그 위에 누워 있는 거야. 음료수를 마시고 부채를 부치면서, 그 아래 이런 멋진 글귀가있었어.
"다시는 춥지 않을 거예요."

"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 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 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

한국에서는 딱히 비전이 없으니까. 명문대를 나온 것도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엔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돼.

당시에 나는 다른 한국인은 한 명도 없는 셰어 하우스에서 살았는데, 거긴 정말 최악이었어. 거실에 커튼처럼 천막을치고 작은 공간을 만들어 거기에 침대를 놓고 살았거든. 막상살아 보니 방에서 사는 것과 거실에서 사는 게 크게 달라. 거실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그대로 들어왔고, 누군가 불쑥 천을 ㄷㄹ추고 안으로 들어올것 같은 두려움에 늘 시달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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